♠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새로난 사람으로서의 거듭남 삶

비타민님 2013. 4. 7. 10:22

 

 

당신이 할 수 있는 위대한 2가지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는 것과

행위자가 아니라 주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2013 46일 조국을 떠나 사는 이곳에는 홍수로

많은 이재민이 나고 아름다운 도움의 손길을 본다..

썩은 정부의 손이 아닌 이웃의 손이 성당에서 이루어진다.

 

내 블로그의 한 구독자이신 형제님은 이런 소식을 전한다.

이곳은 북한의 위협으로 모든것이 불황이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부관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것만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무질서와 이기주의로 살고있습니다.

어찌해야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할찌 막막합니다.

베풀며사는 삶. 남을 도와주며 사는 삶.

이런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간구합니다.

님께서도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샬롬!”

참으로 마음이 아픈 간증을 하고 있다현지 내가 사는 곳도

별반 한국과 차이는 없다.

구제품 실은 트럭이나 집에서 구호물품을 강탈한다거나 .

이런 와중에 주님의 공동체에서 싸움질하는 일들….

자기 자랑만 늘어 놓은 현지 한인들의 골프 모임향우회..

이 사람들은 다 휼륭한 종교인들이지만

분명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니다.

좋은 글을 찾아 보다가 정리해서 이 글을 올린다.

********

우리()는 누군가?

오늘 우리가(내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意味)하는 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이런 물음을 끝없이 자신에게 던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노력이다.

 

아직도 우리는 착각(錯覺)과 허위의식(虛僞意識)속에서

자기분실(自己紛失)과 자기실종(自己失踪)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이 얼마나 멍청하고 비통한 일 일가.

 

솔로몬의 전도서의 시작이 생각이 난다

늦은 결혼을 하고 아내가 임신을 햇을 때에

나는 각고하며 저축한 돈을 어머니의 실수로 다 잃는다.

그러나 나는 재기를 했고 한인 사회에 떻떻한 사람이다.

 *************************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얻어도 돈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고 만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

 

전도서는 외경으로 기원전 2세기

유대 사회(社會)를 잘 반영(反影)해 주는 책이다.

당시 Hellenism(그리스화 정책, 요즘 말로 하면 세계화)의 영향으로

유대 人들이 많은 혼란을 겪던 격동과 혼란의 시기에

신앙의 위기를 느껴 민족문화의 전통을 지키며

이를 극복하기 쓰여 진 것이

'Wisdom of Ben Sira‘ 라 불리는 집회서(集會書)라고 한다.

 

이 책에서 모두 우리가 찾아야 할 참 지혜는

아테네가 아니고 예루살렘에 있음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아테네는

바빌론과 같은 인간의 지혜(성공의 기술로서의 지식)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집회서는

그리스 文化의 매력에 끌려 절충주의(折衷主義)의 입장을 취하거나

Hellenism에 빠진 유다 인들에게 그 허구를 밝히고(2,12; 41,8),

 

“참 지혜는 오직 이스라엘에만 있다”는 것을

51장 가운데 43장에 걸쳐 역설한 것이

예수 밴 시라의 지혜서(집회서)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지혜)에 의존하는 것이

바로 지혜서가 말하는 겸손(謙遜)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자세에 관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이 말씀을

自身을 스스로 낮추는 것이라고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밴 시라의 지혜서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겸손이 아니다.

 

왜냐면 겸손은 자기 비하나 비굴, 계산된 어떤 위선이 아니라

그것은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자기 비움과 따름이기 때문이다.

 

기원 전 2세기 예수 밴 시라(집회서)가 살던 또 예수님 時代에도

오늘 사회처럼 온통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성공과 부의 축적에,

부와 지식과 권력이 우리의 행복과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착각하고

이를 얻기 위해 온통 모두 여기에 몰두했다.

 

그러나 인간이 성공의 기술로서의

온갖 지혜(‘호크마’)를 다 터득하고,

또 그것으로 돈과 권력을 얻는다고 해도

그 것들은 때와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불의한 사고(전쟁과 재난,

천재 지변)나 병고,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다가오는 노쇠와 죽음 앞에

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력한 것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에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는 것은

그야 말로 “미친 짓”(‘호레로트’)이고

어리석은바보 같은 짓”(‘시크루트’이며

‘하벨 하베림’(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것이

오늘 지혜서 독서와 복음의 내용이다.

 

Socrates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덕( '아레테', virtue)이라 했고

謙遜(πραυς'프라우스' 야생마를 야성을 죽이지 않고

경주마로 조련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자기의 분수대로 처신하는 것이 덕이고 겸손이라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들도 논어에서

 

스승을 평해서 “자 석 부정이면 불좌 러시다.

(, 席不正이면 不座러시다)”라고 했다.

 

여기서 석()이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가 서야할 삶의 ‘터’다.

그리고  부정(不正)이란 바르지 않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을 말한다.

 

오늘날 복음이 있는 곳에서 보이는 것이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높은 자리, 좋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그러기에 세상에 암투가 있고, 거짓과 위선(僞善)이 생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 때문에 다치고,

심지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그르치게 하고

고통을 주는 것을 우리는 늘 보고, 체험하고 있다.

그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 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지 해변가에 한 50여 가구 모여 사는 한인들이 교회가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교인과 목사가 링에서 게임을 해서

목사가 90% 교인을 다운 시켜 공동체를 차지했다는 풍문이다.

분명 간교한 마귀의 노름에 팔린 자는 있으리라..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그가 서야할 자리가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가족 관계로부터 시작해서

공동체 안에서의 자리와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자는 먼저 그 자리에 합당한 사람,

자신의 자리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러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도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신앙인이란, 이상한 재능, 놀라운 기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 삶의 자리에서 그 의미를 찾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명 의식이다)

그 자리에 합당한 주님의 도구로서의 역할,

즉 자신의 소명(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말하고 있는

지불리지리자(知 不利之利 者). ,

이득(利得)이 되지 않는 것에서 이롭게() 되는 것을 보고

불리지리(不利之利)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는 주부.

이것이  집회서와 주님의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겸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오늘의 신앙인이고, 바로 새로난 사람이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사람으로서

오늘 우리가 내가 서 있어야할 각자의 자리를 찾고 이를 지켜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학생은 학생으로, 의사는 의사로서, 학자는 학자로서.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언론인은 언론인으로, 예술인은 예술인으로

 

모두 자기의 자리를 찾아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회가

우리 모두가 이루어야할 새로난 사람들의 사회(공동체) 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사회가 이루어야 할 민주화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 보면 잘 못 살게 되고

잘 못 살게 되면 결국 모두 헛살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득이 되지 않는 것에서

이롭게 되는 것을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알파가 오메가가 되고, 오메가가 알파가 되는 길이다.

오메가(꼴찌)가 되는 삶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무모한 삶이다.

그것은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삶이다.

 

때문에 겸손한 사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 이라고 생각을 한다.

 

오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땅에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 하늘 과 새 땅“

새로난 사람들의 공동체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새로난 사람으로서의 거듭남 삶을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으세요 ‘나는 이 몸이 아니고 이 마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배경 찬송:성령이여 강림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