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자식의 은혜’라고 했다. 나도 첫애의 은혜로 엄마로 태어날 수 있었다. 엄마된 그 흥분과 감동과 감사와 충격으로 퇴원 날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뭘 잘했다고 이런 축복 받았나 싶었다. 둘째를 낳고도 너무 기뻐서, 엄마됨의 무거움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물론 임신이라는 사실도 기쁜 충격이었지만, 실감은 아기와 첫 대면부터였다.
괜히 경건해지고 몸가짐이 달라지며, 처음 안아볼 때는 두 눈이 감기도록 경건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간의 다섯 감각 중 시각이 차지하는 비율이 87%나 되고 청각은 6% 그리고 나머지가 미각과 후각, 촉각의 몫이라니까, 눈으로 확인해 믿어지는 것은 경건하다 못해 신과 같은 거룩함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서양 속담은 ‘보는 게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고 했을까?
준비 없이 부모가 돼서 느낌이 벙벙했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떤 아빠는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아빠가 됐다고 소리 질러 자랑했다고도 하고, 아기를 안아보는 감촉에 눈물이 핑 돌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안고 있던 아기를 떨어뜨릴 뻔했다고도 했다. 어떤 이들은 자원해 직장 동료 전원에게 점심 사느라 마이너스 월급이 돼, 늘 ‘비싼 녀석!’이라고 농담한다고도 했다. 한동안 그런 흥분으로 상사에게 혼나고도 휘파람이 나오더라고. 둘째, 셋째를 얻으면서 책임감에 고개가 더 숙여지고 더 성실하게 근무하게 됐다고도 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단편소설 얘기다. 태평양전쟁 중 공군 조종사인 주인공이 첫아들을 낳았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조종석에 앉아서 뜯어 읽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일본군 가미카제(神風)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았다는 비극적 내용도, 내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더욱 생생히 떠올랐다. 나도 첫애를 낳고서야, 신의 존재를 느꼈고, 길 가장자리로 뻗어나온 잡초 한 줄기도 고귀한 생명으로 느껴졌고, 모든 생명에서 그 존엄성이 느껴지는 듯 경건해지곤 했었다.
그뿐 아니라, 키워주신 부모님의 마음까지도 헤아리게 된다고.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고 부모 사랑은 ‘치사랑’이라, ‘자식 낳아 키워 봐야 부모 마음 안다’던 어른들 말씀대로 치사랑 못한 불효를 통감하며, 부모 마음이 내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이었을 거라고 절감하는 것도 불효해주는 자식의 은혜란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고, 어머니는 강하나 싱글맘은 더 강했던 때가 6·25 전쟁 직후였다. 그 무수한 전쟁 미망인들을 살아남게 한 힘…. 등에 아기를 업은 채 채소 함지를 이고 다니던 전쟁 미망인들에게서 무한히 기쁜 희생과 보람이 솟구치게 한 자식의 은혜란 그렇듯 가혹하고도 놀라웠다. 자식 둔 엄마라서 황소처럼 일했고, 기꺼이 황소가 됐다고. 그래서 모든 어머니는 성모(聖母)님이시다. 우리 고대사에 시조들의 어머니를 성모로 숭앙한 까닭이다.
아버지에게도 자식은 최선의 교사(敎師)란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자식이라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해 인간이 됐다는 농담 같은 진담도 듣곤 한다. 직장에서의 어떤 수모도 참아내게 하는 그 힘도, 토끼 같은 자식을 둔 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반어적 표현으로 자식 가진 바보들이 곧 부모들이다.
어떤 부자가 죽으면서 유언했다. 강보에 싸인 아들이 자라서 바보가 되거든 재산을 넘겨주라고. 늙은 집사는 주인의 유언이 무슨 뜻인지를 고민하다가, 어느날 젊은 주인이 제 아이를 등에 태우고는 기어다니면서 히히힝~ 말 흉내를 내고, 등에 탄 아이가 더 빨리 달리라고 두 발로 옆구릴 걷어찰수록 더 좋아하는 것을 보는 순간, 저런 게 바보 아닐까 해서 유언을 집행하곤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탈무드’ 얘기도 잘 알고 있다.
자식 덕분에 바보가 되는 아버지의 행복, 생애를 송두리째 바치고도 보람을 느낀다는 세상 모든 부모들. 세상과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이 부모됨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바로 그런 자식의 날인 5월 5일, 그런 부모의 날인 5월 8일, 정신적인 부모인 스승의 날인 5월 15일! 그래저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자식이 원수고 부모가 문제인 가정도 많지만, 온전한 가정이 있을 수 있는가? 가정이야말로 그 어떤 굴욕도 치유해 새로운 사기(morale)를 회복시켜 주는 최선의 병원이자 안식처인 것을.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식 낳아 키우며, 자식의 힘으로 부모로 깊어지고 인간다워지면서, 가정을 지키며 인간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느라 애쓰는 한 생애를 살아내는 것이 승리하는 삶 아닐까.
젊은 날 웅대했던 꿈과는 너무 다르게 늙어가도, 자식의 은혜로 부모가 돼서 부모님의 은혜도 더듬어 뉘우치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감동적인 영예요 평범하지만 큰 성공이라면 결혼과 부모됨이 선택적인 시대에 구식일까, 초록(草綠)이 동색(同色)이기 때문일까? 남들이 나를 할머니라고 하면 화가 나도, 내 손주들이 부르면 부를수록 기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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