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무신불립(無信不立),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의 삶에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비타민님 2015. 9. 4. 21:31



어제 중국의 70주년 전승 기념 행사를 보며 일본의 침력과

민족의 살인마 김 일성의 육이오 사변을 생각해 본다.

19세세 초에 열강의 식민지 정책과 청 왕조의 무능과 부패로

중국은 잠자는 사자가 아닌 잠자는 돼지로 불리는

수치의 역사 이기고 전 세계에 당당히 국력을 과시함을 본다.

이번 행사에서 그들은 무신불립(無信不立) 표어를 걸고 있어

오늘은 이에 대한 포스팅을 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소진열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은 제()나라 왕을 설득하여

()나라의 10개의 성을 되찾아 돌아와서 연나라 소왕을 만났다.

 

   그런데 소왕이 복직시켜 주지 않자,

소진은 왕이 자신을 신임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고

찾아가 미생(尾生)을 예로 들어 설득하였다.

 

   “미생은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자는 오지 않고 물은 밀려 들어오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다리 기둥을 끌어안고 있다가 죽었습니다.

성실하기로 이와 같은 자가 있다 한들,

폐하께서는 어떻게 그를 천리 밖 제나라로 보내어

강한 병사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왕이 “그대가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자,

다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먼 곳에 가 있는 동안

그의 처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정부가 걱정을 하자,

그 여자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독주를 준비해 두었어요’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자,

처는 첩에게 술잔을 들려 남편에게 권하도록 했습니다.

첩은 술에 독약을 탄 사실을 말하자니 처에게 쫓겨날 것이 두렵고,

말하지 않자니 주인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넘어지는 척하며 술을 엎질렀는데,

주인이 크게 노하여 채찍을 50대나 쳤습니다.

 

   한 번 넘어져 술을 쏟은 첩의 계교는 주인과 처를 모두 살린 것이지만,

 매는 면할 수 없었습니다.

충성을 다하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 허물을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에 연나라 왕이 수긍하고, 다시 관직을 주고 더욱 후히 대접하였다.

 

   결국 소진은 미생의 신의[尾生之信]의 이야기보다

첩의 슬기로운 행동 이야기로 다시 인정을 받은 셈이다.

 

   미생의 이야기는 <장자> <전국책> <회남자> 등에도 나온다.

<전국책>에는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에 불과할 따름이라 하였고,

<회남자>에서도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장자>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이로 보면 ‘미생지신(尾生之信)

소진만이 철두철미한 신의를 강조했을 뿐이고,

다른 기록에서는 모두 우직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작은 신의나,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특히 장자의 비판은 매몰차도록 매섭다.

 

“(이런 인간은) 책형(磔刑)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나,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

쓸데없는 명목(名目)에 구애되어 소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여

본연의 삶을 생각지 못하는 놈이다.…

미생이 물에 빠져 죽은 것은 신의의 우환(憂患)이다.”

 

   여기서 장자가 미생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공자를 미생에 빗대어 비판하고자 한 것이 본뜻이다.

공자의 사상과 주장이 옳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의 여건과 상황에 맞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큰 도둑인 도척(盜跖)이 근엄한 공자와 대화를 하는 형식으로 엮은 것 자체가

그런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래서 도척의 입을 빌어 그렇게 비평한 것이다.

 

   그런데, <논어>의 안연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식량과 군비와 신의’의 중요성을 말했다.

부득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는가 묻자

‘군비’라고 했고, 또 하나를 더 버려야 한다면에는 ‘식량’이라 대답했다.

왜 그런가의 질문에는, “자고로 죽음이란 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이 믿지 않으면 존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無信不立]”라고 대답하였다.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죽고, 전쟁이 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따라서 식량과 군비 확보는 국가 지도자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기본 임무이다.

 이를 소홀히 하면 스스로 괴멸하거나 침략에 패망하게 된다.

 

   그러나 식량과 군비의 마련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신뢰를 잃으면 둘 다 이루기가 어렵다.

신의가 존중되면 비록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죽는 자가 생겨도,

전쟁이 나서 사망자가 늘어나도, 국민은 국가를 믿고 단합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의가 국가 존립의 기본이 된다는 뜻이다.

 

   신의가 없으면 개인도 국가도 존립하기가 어렵다.

특히,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사회풍토에서는

신의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원칙대로만 영위되지 않는다.

이론과 실제는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원칙만을 고집하거나,

원칙은 이론일 뿐이라며 현실만을 내세울 수도 없다.

둘 다 고려하고, 양면을 절충해야 한다. 이를 잘 조절하는 일이 현실 정치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의 삶에 매우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무신불립’만 내세우다가

‘미생지신’의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인의를 강조한 공자나 맹자 같은 성현이

제왕들에게 쓰임을 받지 못한 까닭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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