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은 어떤 경우일까요? 그렇습니다.
감정이 지성과 의지를 앞서거나 압도한 상태입니다.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감정(못마땅함, 미움......)이
과연 올바른 가치기준에 따른 판단(지성)에 의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점검해 보려는 의지적 태도 없이
그 감정을 곧바로 터뜨리는 경우인 것입니다.
내 속에서 순간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그 미움이나 분노가
과연 진정한 의분인지,
아니면 단지 내 생각과 틀리기 때문에 생겨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분노인지를 신중히 살펴 볼
의지력이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즉각적으로 터뜨리는 분노의 반응이
(잘못 된 감정에 의한 분노일 수도 있는데)
그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가 될 지에 대해선
손톱만큼도 생각지 않는 지독한 이기적 태도,
자기 중심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말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는요, 화끈해서 그 자리에서 다 까발리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다 이야기해 버리지만
뒤끝이 없는 사람입니다.
괜히 겉으로 안 그런 척 하지만
속으론 꽁-하게 있는 사람들보단 훨씬 낫지 않아요?
그리고 나의 타고난 성격이 그러니까 어쩌겠어요?
나를 이해하시라고요. 공연히 상처 받지 말고!"
이런 사람들의 말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과
'난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나로 인해 상처 받지 말라.'는 말입니다.
뒤끝이 없다는 말은 뒤에 두고 두고
어떤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의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또 이들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성격은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오늘 '못된 소리'를 퍼부어 놓고도 하룻밤 지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입장에서는 '뒤끝이 없을 수' 있는 지는 모르지만
그 상대방은 전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울컥하는 마음에서 상대방의 팔을 잡아 비틀고는
순간적으로 칼을 꺼내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러놓고는
그 다음 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을 찾아와서
"어?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글쎄......난 지나간 일은 별로 신경 안 쓰는 체질이라서......
그리고 어제 그 까짓 일로 이 지경이 되다니 이게 뭐야?
내가 분명 상처입지 말라고 그랬잖아?
자자, 어제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고,
잊어버려"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 사람은 칼을 순간적으로 꺼내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러 놓고도
하룻밤 자고 나면 '나는 어제 일은 기억하지 않는 성격이다.'라고
태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어제 그 사람이 휘두른 칼에 옆구리를 찔린 사람은
오래오래 그 상처로 고통을 겪고 신음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혹은 그 상처로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칼보다 덜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칼보다 감정적인 말 한마디가
더욱 치명적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나는 대신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라는 말은
자기 행위에 대한 합리화요 변명일 뿐입니다.
'내 성격이 원래 그래서 그런 걸 어떡해?'라는 말도
상대방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르는
자기 중심적(이기적)인 태도
즉 미성숙한 자기 인격에 변명일 뿐입니다.
앞 뒤를 가리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솔직'한 것이나 '정직'한 것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나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신중히 하고 조금 더 인내한다고 해서
'위선'이라고 말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진정한 善' 혹은
'진정한 義'를 드러내고 밝히기 위한 기초적 태도입니다.
즉흥정인 감정 표출이나 상대방에 대한 공격은
'정직, 솔직’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절제력(의지)박약'과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력(지성)의 결여'를 의미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충동적입니다. 나는 보다 신중하지 못합니다.
나는 다른 이들을 좀 더 배려해줄 줄 모르는,
모나고 미성숙한 인격 소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