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는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찬송을 부르시길 바람니다.=
내 생각엔 찬송이 인터넷에 오르면 주님께 바친 것으로 보는데,
음원이 저작권이 있어서 부득히 저작권 해당없는 연주를 플래시로 합니다.
욕심과 죄 그리고 사망
필자는 몇년 전 빈민촌민 50대 중반의 개신교인을 알게 되고
이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나 결국 위선자임을 알고
도움을 중지한다.
이 사람은 입은 예수를 말하나 평생에 여자 넷을 거치고
낳은 자식 11명 중에 9은 거두지도 않고 하루종일 여자만 바라본다.
추한 여자 관계 뿐이 아닌 좀도둑 근성도 가진 자이기도 하다..
하는 일은 범법자나 도둑 같은 자들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필자는 두번이나 간곡한 경고를 하지만 “마이동풍”이다.
이 사람은 나와 결별 후에도 여전히 이런 삶을 계속하다가
56살의 삶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빈민이라고 전부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동정의 연민을 더 갖지 않는 마음을 준비한다.
빈민 뿐만이 아닌 정치인들과 종교인들도 이 사람과 같은 무리가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필자도 세상 재물에 대한 욕망은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은혜로 70이 넘도록 큰 죄악에 빠지지않고 산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욕심이 있지 않을까.
내 앞에 귀중한 보물이 있는데도
아무 사심 없이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욕심은 선한 방향으로 사용되면
자신의 발전이나 세상 문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수도 있다.
학생이 자기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 하려고 열심히 하는 선한 욕심은
실력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기보다 잘하는 친구가 미워서
시기하고 질투하여 방해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되면
이런 욕심은 평화로운 친구관계를 깨버리게 되어
결국엔 자신에게도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게 아닌가.
지나친 욕심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랑이라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
평상시에 적대시하거나 무관심한 관계에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친절을 베풀어 친한 관계를 위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정치인들의 행태속에서 흔히 본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갖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다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 때 얼마나 많은 배신을 하고 있는가.
친절과 관심과 동지라는 위선의 가면을 쓰고 나타났던 욕심이
자기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갑자기 시기와 미움과 분노와 파괴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스스로 만든 욕심의 늪에 빠져
이성을 잃어버리고 감정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죄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험악한 죄 속을 향하여 질주하게 된다.
해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본색을 드러내고 험악한 정치공작을 하기 위하여
없는 말을 꾸며대며 분주하게 날뛰게 되는 데
이는 모두가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보복심리에서 생겨나는 연약한 몸부림이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말 바꾸기에 여념이 없는
오늘 우리사회의 정치인들의 모습들이 이를 잘 반영해 준다.
매스컴에 오르내리지 않아서 그렇지
물질이 관련되고 복잡한 이권이 개입된 시장경제의 환경 속에서는
욕심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 더 많은 추행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욕심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되는
종교인들에게도 세상사람과 별 다를 게 없다는 점이다.
요즈음 성적인 스캔들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세인의 입에 크게 오르내렸던
한국개신교 단체의 지도자급의 권좌를 두루 지낸 분이
자기 옆에서 측근의 사람으로 있던 분을
나쁜 사람이라고 고소 고발하여 법정에 선다는 말을 들을 때,
그 분들 마음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이 정말로 종교지도자들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며
평생을 구도자의 길을 걸어온 분이라고 볼 수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분들의 교회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교회라는 점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수준을 가늠하게 되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위선의 탈을 쓰고 정치적 밀월관계를 맺다가
그것이 안될 경우 상대편을 무너뜨리려고 간계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신앙은 나의 의를 구하며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게 아닌가.
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흉악한 욕심을 같은 동지라는 가면으로 바꾸어 쓰고
위선적인 행동을 일삼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정체가 밝혀질 것을 두려워하여
더 많은 노력을 기우려 자신을 감추려고 더 두터운 위선과 가면과 몸짓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는 잠시 왔다가 가는 이 짧은 일생동안에
아름다우며 평화적인 일에 많은 관심을 갖지 못하고
평생 나쁜 공작을 꾸미기 위하여 망령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해서 결국엔 그의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게된다(약1:15).
여기서 사망이라는 말은 실존적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또 다른 위선의 탈을 쓰고
분주히 많은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제론 점점 더 외로운 인생의 외톨이가 되고 만다.
해서 스스로 피곤에 지치고 괴로움과 고독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런 분들도 용서하고 사랑하길 원하신다.
성서역사는 오히려 그런 분들을 변화시켜
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건을 자랑스럽게 보도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걸어오신 것도
연약하고 불쌍한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새 생명과 소망을 주시려는 게 아니었던가.
우리가 지금 욕심에 빠진 것이 문제가 아니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회개하지 않음이 문제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 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1:1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새번역,갈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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