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금송아지 목장을 하던 친구들이 여기선 너무 설쳐?... 학력도 귀똥차 일류대 짝퉁 출신으로 10년을 살아도 우리 말만 하는 애국자들? 부패한 관리와 경찰에게 상납을 강요 합리화하는 자칭 교민 단체장들?... 이런 후손들에게 조상님들 더 이상 부끄럽게 하지말라는 글을 올려 본다.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그러한 말을 할 권리를 나의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사상가인 볼테르의 명언입니다
이른바 표현의 자유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는거죠 권위적인 대화법이 주로 사용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뭔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담니다. 어쩜 나이 들 수록 참고로 알리는 내가 사는 곳의 현실을 소개합니다. http://www.iacea.com.ar/bbs/zboard.php?id=freeboard 현지 한인 넷 입니다. 관용은 거리가 멀고 집단의 이해 관계와 이악함이 넘치며, 인간의 가치와 윤리를 상실한 비열한 모습을 보임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 좋은 점과 싫은 점들로, 흑백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일들은 이제 그만 내려놓자. 모든 기준을 모 아니면 도로 나누어 네 편과 내 편, 선과 악, 옳고 그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는 그런 마음들은 이제 그만 내려놓자. 모든 것이 자신의 사랑해야 할 모습이며, 스스로 쌓아올린 결과임을 받아들이고 껴안아 주자. 더 이상 스스로 맥 빠지도록 비난하기를 그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작은 일에도 칭찬을 시작하도록 하자.
***모신 글을 소개합니다***
주어진 본성에 따라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말은 간단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회와 문화가 저마다 차이를 갖기 때문에 그 내용은 간단하지 않다.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 이후의 인간관이 분명 달라지고, 서구와 동구, 문명사회와 비문명사회, 특정 종교와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독특한 삶의 가치와 형태들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를 넘어서는 인간의 공통된 윤리적 요청이 있다면, 그 가장 체계화되고 뿌리가 깊은 양식은 종교의 형태로 구현되어 있지 않을까?
볼테르는 이 종교의 보편적 가치와 윤리가 붕괴되어 가는 시대에 다시금 인간성의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종교와 국가, 자유와 맹신, 편협한 독단과 관용의 대립 지점 한가운데서 진실을 파헤침으로써, 왜 관용의 미덕이 필요한가를 역사적 방법에 따라 설득해 낸다.
이 책의 논지에서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1761년에 있었던 장 칼라스 재판 사건이다. 가톨릭의 권위를 정점으로 한 앙시앙레즘이 지배하던 프랑스 전 사회가 프로테스탄트 교도인 장 칼라스를 처형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경과와 내막을 파헤친 볼테르는, 종교적 광신과 불관용이 평범하고 성실한 한 시민과 그의 가정을 무참히 학살한 사회 현실에 분개하며 정의와 진실에 바탕을 둔 공평한 판결을 촉구한다. 볼테르는 책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도교와 로마의 관계, 유대인의 종교 전통, 예수의 가르침, 그리고 가톨릭과 종교전쟁의 역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관용의 보편적 가치를 명쾌히 드러난다. 또한 신앙의 자유,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 가톨릭 교회의 격렬한 교리 논쟁이 불러온 재앙의 의미 등을 깊이 있게 고찰함으로써 과연 인간에게 종교 또는 신의 섭리란 어떤 것이며, 나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흔히 기독교 중심의 문명사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를 종교적 박해로 설명하지만, 엄밀한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기독교 초기의 로마 제국은 사회의 질서와 관습, 또는 로마의 전통 종교를 위협하지 않는 한, 기독교를 인정하고 그 신도들을 사회의 구성원들로 받아들였다고 볼테르는 강조한다.
유대교의 가혹하고 엄한 율법이 이교도들의 신들에 대한 유대인의 숭배 행위를 금지하긴 했어도, 구약성서 속에서는 용서와 관용의 모습이 드러남을 밝혀낸다.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형제를 돌보고 사랑하라며 가르치다가 반대 세력에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단죄하지 않았다. 이 모든 관용의 오랜 전통을 망각한 채, 프랑스 사회는 가톨릭의 도그마에 붙들려 크나큰 희생을 치른 종교적 맹신의 비극적 결과를 생생히 증거한다고 주장한다.
볼테르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가 종교적 불관용에 앞서야 하며, 이것이 억압당하는 순간 종교는 광신으로 돌변하여 인간을 짓밟는 도구가 되어버리고, 신의 섭리를 오히려 거스른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광신의 팽배는 그로 하여금 교회의 순교자 전설에 대한 진실성에 대해서도 반박하도록 이끌었고, 신앙의 자유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혀주었다.
볼테르는 신앙의 자유와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태도를 보편적 가치로 끌어올리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서구인 흘려야 했던 피의 대가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 ‘관용’이 자리 잡고 있을 때 이 가치는 보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볼테르는 결국 사회의 광기와 불관용에 희생된 장 칼라스의 불행을 프랑스 사회에 고발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가 누명을 벗고 위기에 처한 나머지 가족의 삶이 구제받는 결과를 확인하게 된다. 당시 사회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제시한 관용의 중요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는지 생생하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아직 형식적이지만 종교적 문화적 다원성에 대한 인류의 합의, 종교와 학문 간의 대등한 위치 등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아버지라 불리는 볼테르의 관용론에서도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는 자유와 이성이라는 가치와 역사 속에 존재해 온 관용의 전통을 한데 아울러 자기 사상의 일부로 제시한 사람이라 하겠다.
종교적 차원에서 그의 사상을 돌이켜볼 때, 진리에 대한 겸손한 인간의 자세에서 사회의 윤리적 토대가 시작된다는 교훈을 끌어낼 수 있겠다. 아직도 종교적 갈등이 국제관계의 긴장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둘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 뿌리 깊은 종교 분쟁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세계의 일부 지역, 중국의 소수 민족 탄압 등은 종교적 불관용과 정치적 명분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이다.
국가 영역에서도 관용의 가치는 여전히 절박한 상태이다. 이민의 증가, 끊임없는 세대 간 갈등, 경제 양극화의 심화, 통치 집단과 시민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 등이 그러하다. 한국 사회 또한 반세기 이상의 소모적 이념 갈등과 정치적 분열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다가, 민주주의 정착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현 시점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관용의 의미, 이른바 톨레랑스의 가치에 관한 어느 논자의 저서가 오래 전 선풍을 일으킨 바 있다. 거기에 덧붙여 관용의 역사적 가치와 보편성을 성찰하는 데에는 볼테르의 『관용론』이야말로 필수적인 가르침이 아닐까 한다. 또한 오늘날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신앙에 자기 영혼의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고 종교의 의미를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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