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우정, 인간관계의 최고 이상형(모신 글)

비타민님 2014. 8. 23. 06:49

원하는 이미지를 틀릭해 보세요!  행복 사랑 비타민을 드림니다.

 

오무(五無)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무도(無道) 무능(無能)을 말 하는 것 입니다.

비타민은 상대가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해도 오무(五無)의 사람은 친구로 사귀지 않습니다.


어느 날,절친한 친구가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에 쫒기다가

내게 찾아와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다른 친구는 내게 국가 반란음모에 가담할 것을 간청한다.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정치적 동지였으나

어떤 계기로 각기 다른 정치 세력으로 갈라섰을 떄,

친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결코 명예롭지 못한 일이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그럴 가치도 없는 자에게 간청하고 애원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로마 공화정 떄 정치인이자 뛰어난 문필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기원전 44년에 쓴 <우정론>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있다.

물론 우정의 문제들에 대해 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키케로도 우정에 관한 담론을 시작하면서,

호민관 술피키우스와 집정관  품페이우스가

서로 가장 아끼던 친구였지만

어느 날 불구대천의 원수가 괸 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고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를 먼저 예로 든다.

그만큼 진정한 우정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전 역사를 통해 우정의 범례로서

지속적으로 기억되는 친구들은

기껏해야 서너 쌍밖에 안 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먼저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그가 여기서 "선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행동에서

"성실과 정직 그리고 공정성과 아량을 보여주는 사람들,

탐욕과 방종 그리고 파렴치한 행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굳건하게 소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을 주로 의미한다.

 

이런 미덕을 가진 사람들사이에서 우정이 싹트는 것이다.

"미덕이 우정을 낳고 지켜주니,

미덕 없이 우정은 어떤 경우에도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관계 때문에 맺어진 인간관계는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우정은 친구 사이에서 서로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그렇다고 우의가 이익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미덕을 갖춘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미덕을 볼 줄 알고

그것에 끌리는 법이다.

<우정론>에 화자로 등장하는 라일리우스와

그의 평생지기 스키피오의 우정도 서로 필요해서 시작된 게 아니다.

서로의 미덕을 찬탄한 까닭에 서로 좋아했고

 서로를 더 잘 알게 될수록 우의도 깊어갔다.

이익은 그에 따라온 것이다.

 

 그러면 미덕과 선행을 전제로 할 때,

친구를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해주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키케로는

우정의 제1법칙으로서 "도의에 어긋나는 것은 요구해서도 안 되고

요구받더라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말해,친구에게 옳지 못한 것은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친구에게는 옳은 것만 행해야 하고

이때에는 굳이 친구가 간청하지 않더라도 먼저 나서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친구를 위해서 죄를 범했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불한당들 사이의 의리와 협력은

우정이란 미명으로 비호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키케로도 설명하듯이,

라틴어로 우정(amicitia)과 사랑(amor)

모두 사랑하다(amare)라는 말에 서 유래한다.

그것은 매우 감성적인 것이다.

우정이 라는 말도 ''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키케로는 친구를 선택하고 우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지혜로운 판단을 중요시한다.

다시 말해, 높은 수준의 이성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 사이에서는 "사랑하고 나서 판단하지 말고,

판단하고 나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는 핵심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정은 사랑의 윤리적 형태'라는 정의를 끌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정은 감성과 이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윤리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감성과 이성의 완벽한 조화, 그것은 인간관계의 이상형이다.

키케로는 우정에서 인간관계의 최고 이상형을 본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우정을 이룬 사람들은

역사에서 몇 쌍 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우정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선하고 복된 삶을 위해서

지향해야 할 인간의 과제라는 것이다.

키케로는 우정을 논하면서,

사실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한겨레/200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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