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대화법을
부러워할 때가 종종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대선후보끼리 불꽃튀는 토론을 벌이거나
영국에서 총리와 정치인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번갈아 가며 논쟁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자 한다.
효과적인 언변을 통하여 논거를 가지고
상대방의 지성과 감성에 호소한다.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가 아닌
그가 한 말이 얼마나 합당한지를 따지는 방법이다.
지식뿐만 아니라 품격이 필요하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토론장에 나온
"검투사"는
자신의 주장이 어떠한 것인지
그 논거는 얼마나 타당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 주장의 허와 실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용맹스러움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에 나아가 초전박살이 나기 십상이다.
말을 달려 창과 방패로 판가름을 내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무장으로서 명예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무릎꿇는 멋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용감하고 멋있는 “토론 검투사”를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자신있게 나를 밝히고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진정한 검투사가 드물다.
토론회가 열리기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대화만 열려 있으면 무얼 하는가.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토론이
아닌
밑도 끝도 없는 자기주장이 있을 뿐이다.
설득과 설득됨이 없으니 그야말로 “백날토론”일 뿐이다.
검투장이 있고 구경꾼이 있다 한들
좋은 검투사가 없으니 무슨 재미가 있단 말인가.
각종 토론회를 보면서
좋은 검투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토론을 망치는 말법(검법)
토론을 망치는 적들의 말법을 생각해 보자.
토론이라는 “검투장”에 나와서 구경꾼을 실망시키고
분노시키는 저열한 “토론의 검법”을 적어보자.
토론의 적들이 이런 야비한 검법을 변화무쌍하게 구사할 때
용감하고 품위있는 “토론 검투사”들은 좌절하곤 한다.
적들이 의도를 가지고 휘두르는 검법(말법)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토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
각 검법마나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이성과 합리성에서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우선 폭력이나 거짓말이나 욕설에 관한 것은
애초부터 토론이 아니니 제외하자.
고장난 라디오 검법
청산유수로 말을 잘 하는 “토론 검투사” 중에는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떠드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 말은 말이 아니라 소음에 가까운 소리다.
사실인지 아닌지,
맞는지 틀리는지,
상대방에게 칭찬이 되는지
자신에게 욕이 되는지를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냥 “그때 그때 달라요” 식으로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말을 쏟아놓을 뿐이다.
금과옥조같은 "고장난
라디오"를 들어
보시라.
이런 “고장난 라디오”는
“무작정 우기기” 검법과 더해지면
이성과 합리성은 사라진다.
사실과 논리가 아닌 오직 “말빨”이 난무하게 된다.
긴장감있고 생산성있는 토론을 기대한 관객에게
한없이 실망과 좌절과 짜증과 분노를 안길 뿐이다.
국어책 읽기 검법
토론을 하겠다고 나온 사람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모르고
더듬거리는 것은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꼬맹이가 코흘리면서
가슴에 손수건 달고 검투장에 아장아장 걸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기껏 할 수 있는 짓이
국어책을 더듬거리며 읽고 또 읽는 것이다.
남이 써준 쪽지를 뒤적거리거나
아까 다 못읽은 데가 어딘지를 열심히 찾을 뿐이다.
자기 말이 아니니 쉽게 더듬고 발음이 샐 수밖에 없다.
기계적으로 원고와 카메라를 왔다갔다 하는 시선이 바쁘지만
초점을 상실한지 오래다.
듣는 사람이 이리도 답답하니
자기도 모르는 소리를 그저 읽어야 하는 자의
깊은 고뇌와 비애를 말하여 무엇하리...
옆에서 뭐라 흘리듯 수근대도 서럽게 왈칵 눈물을 쏟을
판이다.
이런 “국어책 읽기”가
구경꾼의 흥미를 빼앗고 토론을 힘빠지게 만든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빈껍데기 아닌가.
쇠귀에 경읽기 검법
이 검법은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거나
남의 얘기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얘기만 녹음 테이프마냥 반복할 뿐이다.
토론이 상대방과 말로 다투는 것이라는
기본을 모르는 검투사다.
애초부터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적어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나온 검투사들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인 줄을 알면서도 등떠밀려 나와서
적어 준 말만 해야 하는 비참한 검투사도 있다.
조직의 쓴맛을 피하거나
미래를 위해 기꺼이
"총대를 메는"
것이다.
어쨋든 이런 토론의 적들은
상대 검투사가 어떠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누가 질문을 해도 상대가 비판을 해와도 비판과 무관하게
똑같은 자기주장을 되풀이할 뿐이다.
어차피 자신의 주장(논리와
증거)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다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정신이 없는 것이다.
국어책을
"버벅거리다"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무조건 반사로 좌우를 살펴보지만 읽는 것에 눈이 팔렸으니
초점이 있을 까닭이 없다.
사실 그것만 해도
머리를 대신해서 손발과 눈입이 바빠죽을 지경이니
귀가 어디 열리겠는가.
남이 무슨 말을 하든 알아들을 능력도 여력도 없다는 소리다.
이런 검법이 춤을 추면 대화는 멈추게 되고
토론은 “백날토론”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쇠귀에 경읽기 검법”은 의외로 효과가 좋다.
상대 검투사들의 불타는 전의를 무참히 꺾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도 어이가 없기 때문이다.
토론을 해봤자 인건비도 못건지는 짓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게임도 흔한 판에 헛발질 인형과 무슨 재미로
싸운단 말인가.
이쯤 되면 본전 생각난 구경꾼들이
깡통이나 소주병을 던질 차례가 된다.
사오정 검법
"사오정 검법"은
상대가 묻거나 비판하는 것과는 전혀 엉뚱한 답을 늘어놓는
것이다.
기상천외한 내용으로 상대의 허를 찔러 예봉을 꺾는 비법이다.
그것도 태연하면서도 아주 진지하고 길게 말하는 모습이
한마디로 예술이다.
사오정검법은 다양한 변종이 가능하고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적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검법이다.
주옥같은 동문서답으로는
"아침에 출근해서 결재하고
시간이 나면 국회에 나온다"
"정책과 인물이 좋아서
대구에서 당선되었다"
등이 있다.
아메바식
"모로쇠"검법은
사오정검법의 변칙사용이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난 정치인이 아니라
경제인이오."
검투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잠시 멍하다가
동시에 기가 막힌 얼굴이 된다.
"그런 걸 왜 나한테 묻냐"며
야단을 치는 모로쇠 검법은
국어책 읽기 검법과 종종 같이 사용된다.
방귀뀐 넘이 화를 낸다고 무조건 반사로 버럭 소릴 지르는
것이다.
토론할 능력이 없는 자가 멍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검투장에 나와서 솜사탕을 빨고 자빠져 있는 셈이다.
무작정 우기기 검법
무작정 우기고 보는 검법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이 주장하는 말을 맞다는 증거로 그럴듯하게 둘러대어
상대 검투사를 속여먹는 검법이다.
공부가 부족하여 사실을 모르거나,
상식이 부족하여 사리분별을 못하거나,
귀가 엷어 남 얘기를 자기 얘기인듯 말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음흉하게 불리한 것을 숨기고 유리한 것만 부각하여
사실을 이곡理曲하는 자들이 큰 문제다.
“그때 그때 달라요”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심보다.
상대방이 인터넷에 올린 패러디는 인면수심이고
내가 올린 패러디는 예술이라고 우긴다.
이런
"우기기 검법"은
상대 검투사를 속이고
관객을 속이는 음흉한 반칙이다.
구경꾼들이 어리석을수록 효과가 커진다.
말꼬리잡기 검법
(말똥침 검법)
꼬마들마냥 말꼬리잡아 말잇기는 그야말로 몸풀기이다.
쉽게 말해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물론 교묘하게 자르고 붙여서
제멋대로 말만들기를 하는 고난도 기술도 종종 사용된다.
“시대가 낳은 미숙아”라는 말에
"미숙아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야..."라고
쏘아붙인다.
상대를 끝없는 허무 계곡으로 떨어뜨리는 동시에
감정을 흩으려 집중력을 일시에 떨어뜨리는
비열하고 교묘한 검법인 것이다.
또한 멋진 검투를 기대하던
사람들의 불쾌지수를 하늘높이 솟구치게 하는 짓이다.
본인은 이겼다고 쾌재 를 부르겠지만,
무차별한
"똥칠"에
적군 아군할 것 없이 구역질을 해댄다.
"고등학교도 못나온 년이
국모가 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면 안되겠죠?"도
마찬가지다.
현충일날 엄숙하게 묵념하는 친구 뒤로 슬쩍 돌아가서는
처절하게 똥침을 날리는 추잡한 짓이다.
떼쓰기 검법
"떼쓰기"는
주로 궁지에 몰려 막판에 판을 깨야 할 때
토론의 적들이 애용하는 검법이다.
다른 검법과 마찬가지로
논리와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쉽게 말하자면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엄마에게 까까사달라고 뗑깡부리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의석도 없는 당은 빼주세요",
"탄핵얘기 안해야 대화할래요"
등이다.
이 검법은 수세에 몰릴 때 주로 사용하기는 하나
가끔씩 공세때에도 미인계 일환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물론 얼굴과 몸매를 과신하거나 착각하여
장돌세례를 받는 적들도 가끔씩 보인다.
적당한 어리광과 앙탈이 몸에 좋은 줄을 모르고
끝간데 없이 떼를 쓰다가 쪽박을 찬 경우이다.
쫑내기 검법
눈치가 있는 토론의 적들은 뭔가 썰렁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무리 궁리를 해도
뭔가
(논리에 맞든 안맞든)
할 얘기가 없거나,
상대 검투사가 재수없게 생겼다거나,
구경꾼들이 광적인 호응을 안해주거나,
짜증나게 모르는 것을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지면
마지막으로
"쫑내기 검법"을
휘두른다.
이판사판이니
공사판에서 한번 붙어보자고 최후통첩을 하는 것이다.
합리와 논증과 무관한 얘기다.
"버럭질"하는
모로쇠 검법과 함께 사용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손석희의 집요한 질문에
"지금 저하고 싸움하자는
거예요?"
쏘아댄다.
구석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똥통을 상대방 코 앞에 들이대고
"모"
아니면 "도"를
외치는 것이다.
더이상 쪽박쓰기 싫으니 토론을 회피하려는 술책이다.
이쯤 되면 품격있는 검투사는 대개 물러나게 되어 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어디...
이 검법은 의외로 효과가
좋지만,
잘못하면 똥물을 혼자 뒤집어쓰는 수가 종종 있다.
고시 검법
건전한 토론을 가로막는 검투사들의
"고시검법"은
전문가나 권위있는 듯한 말씨와 표정으로
심각하고 점잖게 얘기를 하는 것이다.
뭐는 이렇고 뭐는 저렇고 의견을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고시생마냥
교과서 이곳 저곳에 나온 얘기를 짜깁기 할 뿐이다.
알맹이가 없는 추상적인 내용만 나열할 뿐이다.
물론 앞뒤가 맞을 수도 있고 안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안중에 없다.
그저 교과서에 나온 얘기니까 토를 달면 안된다는 것이다.
너도 맞고 나도 맞는다면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양비론은 그래도 동어반복적이거나
자명한 말을 장황스레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 낫다.
맞는지 틀리는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구분없이
사전씹어먹듯이 돌돌돌 왼 것을
근사하게 분위기 잡고 풀어놓는다.
물론 구구절절 하품나는 소리다.
예컨대,
“안먹으면 죽는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식이다.
검투장에서 칼쌈을 한다던 자신은
갑옷도 칼도 없이 런닝셔츠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와서
검투사는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승부를 내야 한다며
두 손 불끈 쥐고 처절하게 외치는 것이다.
“완전군장”차림으로 검투장에 들어선 다른 검투사들은
그저 얼떨덜 할 뿐이다.
다음 회에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