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 : 21 - 28)
가나안 사람이란 율법도 하나님도 없는 이방인들입니다.
그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서
귀신들려 고통을 받는 딸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시는
칭찬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의 기도를 통하여
큰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주님과 일 대 일의 인격적이고 진실한 만남을 통해 간구합니다.
1. 큰 믿음이란 무엇인가?
큰 믿음이란,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는 믿음을 말합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에게는 흉악히 귀신 들린 딸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어머니는 자기 딸이 측은하고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런 자기 딸을 고침 받으려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들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자신의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이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 여인이 주님을 찾은 태도에서 이런 믿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부를 때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습니다.
이 여인이 말한 주란 구약 성경에서 주로 주종 관계에 있어서의 하나님, 신약에서는 만물의 주되신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세 가지 명칭이 있습니다.
하는 데오스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하나님의 칭호입니다.
다음에 예수님이 자주 사용하신 파테르인데
이 말은 아버지란 뜻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이 사용한 큐리어스란 칭호로
이것이 "주"인 것입니다. 가나인 여인은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메시야에 대한 대명사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이 여인의 호칭은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신앙 고백으로
이것은 마치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방불케 하는 것입니다.
-데오스 -
구약의 ‘엘’과 ‘엘로힘’의 번역어로서
신약에서는 이 낱말을 사용하여 ‘나의 하나님’ ( 헬: qeov" 데오스 ),
‘우리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구약시대 ‘신정국가의 하나님’이,
성도 개개인과 친밀한 교재를 하는 하나님으로 계시에 있어서
진보된 표현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퀴리오스-
구약의 ‘아도나이’, ‘여호와’에 대응하는 명칭으로서
‘주’( 헬: kuvrio" 퀴리오스 )로 번역되며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스도에 대하여도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쿼바디스"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란 뜻입니다.
-파테르-
‘아버지’ ( 헬: pathvr 파테르 )로 번역되는 이 명칭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인 하나님에 대응되는 명칭으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성도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이 여인이 외친 첫마디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호소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에 호소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여인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해야 합니다.
이 여인은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고 아뢰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 내용이 분명해야 합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인 것입니다.
2. "주여 옳소이다"고 하는 기도
이 여인은 자기 딸을 고침 받으려는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응답 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어려운 여러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이 여인은 이런 고비를 믿음으로 넘겼습니다.
오랜 시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 편에서 내려 주시기 때문에
그 시기와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이 더디다고 포기하는 기도는
큰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가나안 여인은 주님이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드디어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권면에 따라
단 한마디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응답이라기보다는 절망적인 거절이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이방인에게도 미친다는 믿음을 기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말씀에 위축되어 물러간 것이 아니라
한발자욱 더 앞서 갔습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그녀의 기도는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3) 그러나 이 여인은 모욕적인 말로 기도를 거절당했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도와 달라는 이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태도는
이 여인에 대한 최종적인 기도 응답의 관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자비를 바라는 자신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이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칭찬을 받은 것은
"옳소이다"고 말한 그의 태도에 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옳소이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믿음으로 주님께 나가는 자들에게 우리 주님으로 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고 하는 칭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 가나안 여인의 기도를 본 받아야 합니다.
그는 주님께 찾아 나온 후
한번도 후회하거나 주님 곁을 떠난 일이 없었습니다.
응답이 없었지만 간구를 중단한 일도 없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오늘도 주님이 찾고 있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하고
믿음없는 이 세대에 우리를 드러내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두로에 있는 여인의 큰 믿음을 이 시대에 우리가 본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