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신 주님과 믿음
우리들은 인생 길을 가면서 성공과 승리의 인생을 살고자
많은 노력을 합니다.
문제의 제기는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것 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성공의 기준을 소유와 학력에 둡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재력과 권세를 소유하며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 성공했다고 말을 합니다.
사법 고시에 합격하여 판검사가 되거나 고급 공무원이 되면 출세했다고 합니다.
또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또 안정되고 보수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실력을 인정을 받아 진급을 계속하면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는 공동체의 성도 수가 많으면 목회에 성공하고
자신이 설교를 잘한다는 망령된 말도 합니다.
필자는 묻습니다..
여러분들! 위에 열거한 성공이 과연 전능하신 창조주와 비교할 수가 있나요?
요즘 세상은 무엇을 하든지 전문분야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여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공의 기준의 기준이란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공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 기준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배자의 심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기준은 상대적이고 한계적이어서
참된 성공의 기준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고
또 노년에는 허무를 느끼며 비참한 패배감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나 가난한자나, 권세자나 피지배자나, 고귀한 자나 천한 자나,
아름다운 미인이나 추한 자나, 지혜자나 우매자나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장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전 2:15,16절)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 비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실패의 인생을 산 것입니다.
또 신학을 전공하고 성경을 줄줄 왼다고 해도 실천이 없는 말 많은 믿음이면
이웃 사랑은 커녕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 실패한 성직자일 뿐 입니다.
아무리 인생 여정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인생 자체를 실패한다면
그것은 비참한 최후의 패배자 입니다.
이와는 달리 주님을 따르며 말씀 한 가지라도 겸손히 손수 실천하며
기쁨의 감사 생활을 하면서 겸허하고 성실하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이 승승장구하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의 은총을 입고 죄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환난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심판을 이기는 승리의 삶이 될 것 입니다..
신문 지상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재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하루 아침에 명예를 실추시키며 쇠고랑을 차는 것을 봅니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정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환락과 방탕으로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를 볼 때 유혹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가 승리의 인생을 살려면 일하지 않고 얻는 재물의 유혹, 정욕의 유혹,
권세와 인기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세상을 정복한 영웅들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줄리어스 시저는 "나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승승장구 승리하였지만 심복인 부루터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숍 우화의 작가인 이숍은 노예로 태어나 그의 지혜로 주인을 구하고
노예 해방 증서를 받아 자유인이 되지만 그리스 델피 신전에 들려서
우매한 제사장들의 짓을 비웃다가 제사장들이 몰래 이숍의 짐에 제물기기을 넣고
도둑으로 몰아서 절벽에서 던져지는 죽음을 맞이 합니다.
지혜자도 겸손치 못한 말의 실수로 죽음을 당합니다.
이숍이 부활했다는 역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막 트웨인(Mark Twain)은
부와 명예와 절세의 미인인 아내와 딸들을 두고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당시 청소년들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막 트웨인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만일 내가 다시 인생을 산다면" 라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후회함이 없는 인생, 진정으로 승리의 인생을 살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주님의 보혈의 공로에 힘 입어서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파멸과 패배에서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패자나 패배자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슬프고 비참한 일입니다.
필자도 대학 입시에 떨어져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한 패배자의 심정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번 운전 시험에 떨어지자 견디지 못하여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험에 떨어져도 비참한데
우리 인생 자체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패배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스럽겠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세상 사는 동안 죄와 죽음의 권세에 패하여 헛돤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하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죄와 죽음의 사슬을 끊어 주심으로
이제는 주 안에서 영혼이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작별 메시지를 전하시면서
제자들로 하여금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절)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승리가 너무 감격스러워서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사도 바울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절)
믿음으로 사는 자만이 진정으로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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