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그리스도인과 일상 언어 (야고보서 3:1~12)

비타민님 2015. 11. 24. 18:21

필자가 사는 아르헨티나는 봄 풍경의 화창한 날 입니다.


유태인의 탈무드엔 말과 혀에 대한 가르침이 많습니다.

화살은 한번에 사람을 죽이지만 세치의 혀는 수만의 사람을 죽일 있다..

험담은 세사람을 죽인다. 말하는 당사자,대상이 사람,

그리고 이말을 듣고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흔히 복음송이라고 하는 노래를 들으면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기를 원하네...” 시작을 합니다..

30 전의 일입니다..어느 얼굴을 알고 지내던 또래의 얼간한 떠벌이가

목사가 되어서 필자를 방문하는데,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목사란 주일 설교를 잘하고 설교 제목은 자신이 가진 설교 백과에 있으니

잠간 읽고 적당히 내용을 바꾸면 되고 평일엔 놀러 다닌담니다..

그럼 화제를 바꿈니다.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들이를 갔습니다.

한참 걷다 피곤해진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영감, 업어 없어?

할아버지는 업어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나중에 잔소리 들을 것이 귀찮아서 할머니를 업어 주었습니다.

업혀 가던 할머니가 미안해 하면서 물었습니다.

“나, 무겁지? 그러자 할아버지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습니다.

“그럼, 무겁지! 할머니가 되물었습니다.

 “왜?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그렇지...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할멈, 다리가 아파. 업어 .

때의 일도 있고 해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었습니다.

잠시 미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나, 무겁지?”하면 자기가 말을 따라 같아서

“나, 가볍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

. 그러니까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 코람대오의 삶에서 돌이킬 없는 것이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가지가 바로 화살, 잃어버린 기회, 내뱉은 말입니다.

일단 화살이나 입에서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높히는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 말에 직업을 나타내는 말에 의사 변호사 박사 또는 선생이라고 해서

존경 받는 접미사가 붙은 말과는 대조적으로

지게꾼..농사꾼..미쟁이,바람쟁이..라는 접미사가 붙는 직업도 허다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분명 있습니다..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목사라는 칭호는 분명 존경 받는 직업이고

선생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인 목사는

실수로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심판을 받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3:1)

여기서 선생은 가르치는 자라는 뜻으로 랍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랍비는 존경 받는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당시 랍비는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랍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은사와 감화를 받은  초대 교회의 교인들도

믿음 공동체 안에서 랍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랍비와 같은 대우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선생이나 지도자를 존경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없이 모두들 선생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복음을 들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람들로부터 거기 걸맞는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이런 현상이 오늘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없이 배우려고는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했으니

믿음 공동체 안에 갈등과 대립과 반목이 생겼습니다.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과 거룩해야 교회 안에 싸움과 다툼이 그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선생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는 많이 선생 되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가르침을 통해서

교회와 사람을 섬기는 일에 앞장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생이란 교회에 필요한 직분이요 매우 중요한 직분임니다.

그러나 그만큼 책임도 큽니다.

그리고 책임이 크다는 것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실 좋은 교회 공동체는 선생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종이 많은 교회입니다.

지배하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말입니다.

자기 얼굴을 홍보하려는 사람이 많은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없습니다.

겸손하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가

진짜로 좋은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을 같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것은 죄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뜻은 성숙하고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을 의사들이 종종 입을 벌려 보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의사가 안을 보면

환자의 건강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할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구원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 사람의 영혼 건강 상태를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는 혀를 다스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능히 몸도 굴레 씌울 있다고 합니다.

굴레는 재갈과 함께 말을 통제하는 도구입니다.

아무리 크고 거친 말이라도 재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우면 맥을 추게 됨니다,

계속을 합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3:4)

아무리 배라 할지라도 지극히 작은 키로 조정할 있습니다.

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어렸을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칫덩어리였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때마다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고 합니다.

“저 아이가 커서 도대체 뭐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의 할머니만은 달랐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어.

너의 개성만 살리면 장차 크게 거야.

마디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격려와 칭찬의 마디가 사람의 일생을 이렇게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직까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을 전합니다.

 

코람데오의 삶이란 단지 나의 입술과 혀로 주님을 찬양하면서

거룩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구원의 주님을 찬양하고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닮아가는 거듭난 삶을 통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