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병없이 산다면 좋은 일이긴 하다.
또 병이 난다면 쉽사라 고치는 만병 통치약이 잇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러한 염원에 부응한 약초꾼들이 많고
또 약에 좋다면 양잿물도 마실 심산인 사람들도 본다.
서양 역사를 보면 역시 만병 통치약이 있었다.
병 없이 오래 살고픈 가냘픈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을 부추기는 사항이다.
질병과 건강에 관련된 사항으론 개신교의 신유의 은사가 있는데
병 고침을 받았다는 사깃꾼들의 조작도 종종 신문 지상에 나던 시절이 있엇다.
무지함과 사깃꾼 종교인이 만들어낸 만병 통치 종교가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다.
서양 의학에도 우리의 한방 의학과 흡사한 단기과정 학문이 있다.
그리스에서 유래한 의료에 관한 학문이라고한다.
오늘날 그리스 의학 하면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리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훨씬 더 친숙하고 신뢰가는 존재였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는 자신처럼 질병과 건강에 관계된 일을 하는 딸이 둘 있었다.
맏딸 히게이아(위생을 뜻하는 영어 hygiene의 어원이다)는 위생의 여신이었으며
작은딸 파나케이아(만병통치약이라는 뜻의
영어 panacea의 어원이다)는 약의 여신이었다.
약의 여신 panacea
그런데 동생인 파나케이아가 언니보다 지위도 높고 인기도 훨씬 좋았다.
이미 고대시대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위생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을 지키려 하기보다는
신이나 만병통치약에 자신들의 건강을 맡기려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폰투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기원전 132-63년)는
독살에 대해 광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노예와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독약과 해독제에 대한 실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만들어낸 해독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미트리다티움으로 불렸다.
미트리다티움은 그때부터 만능해독제 또는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이후로 더욱 나은 만능약을 만들려고 많은 사람이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기원 1세기에 네로 황제의 시의 안드로마쿠스는
미트리다티움에 독사의 살코기를 첨가하였는데,
그러한 처방을 그때부터 ‘테리악’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며 여러 성분이 테리악에 추가되었다.
근대초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황제로 군림하던 갈레노스(기원
130-200년)는
테리악의 성분을 70가지까지 늘렸으며 중세에는 100가지를 넘어섰다.
교양있는 사람이나 무지한 사람이나 모두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에 테리악을 썼다.
이렇듯 서양사를 통해 테리악의 역할은 지대하였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이성이 눈뜨고 과학이 발전함으로써
테리악은 점차 위세를 잃게 되었다.
테리악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1745년에 발표된 영국인 의사 윌리엄 헤버든의 논문
「미트리다티움과 테리악에 대한 고찰」이었다.
헤버든은 만병통치약들이 해독력이 있으며 수많은 질병을 치료한다는,
거의 2천년 가까이 내려온 믿음을 거부하고 나섰다.
만병통치약들의 성분과 작용에 대한 헤버든의 논의는 합리적이었다.
1756년 마침내 에딘버러 약전(藥典)에서
테리악을 비롯한 만능해독제들이 삭제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니아와 독일의 약전에는 19세기까지도 그것들이 남아 있었으며,
프랑스의 경우는 1908년판까지 테리악이 수록되었다.
고대부터 근대초까지 명성을 떨친 테리악 등의 만병통치약은
갈레노스로 대표되는 정규의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18세기 이후의 비약(秘藥)은 대부분 돌팔이(비정규의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늘날 의학계에서는 만병통치약이란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양식있는 의사나 의학자라면
아무도 그런 것을 만들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는다.
‘특정한 발병원인―특정한 질병―특효 치료법’이라는 현대의학 사상에는
비특정(非特定)한 성격의 만병통치약이 자리잡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대중을 우롱하여 돈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된
돌팔이들이 나타나 정규 의사보다 더 확실한 치료를 장담하고는 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제임스 모리슨이 주도한 영국의 ‘히게이아 학파’
(이름이 대단히 역설적이다)는 모든 질병에 적용할 수 있는 치료원리를 주장하였다.
즉 비약(‘모리슨 식물정제’)으로
모든 나쁜 피를 몸밖으로 내보내어 만병을 치료한다고 선전하였다.
그 비약은 나중에 강력한 설사제로 밝혀졌다.
의료계 안팎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모리슨을 사기꾼이라고 고발하였지만,
모리슨은 정규의사에게는 금지되어 있던 선전광고를 대대적으로 펼치고
그밖에도 여러가지 교묘한 판매전략으로 사업을 더욱 번창시켰다.
모리슨 비약의 판매는 프랑스, 미국,
독일 등 다른 나라에까지 퍼져
1840년에 모리슨이 죽은 뒤에도 19세기 내내 지속되었다.
재판을 통해 사기꾼의 정체가 드러났지만,
그것도 대중의 열광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대중들에게는 모리슨이 박해받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비쳤다.
만병통치약에 관련한 몇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이를 통해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고대와 중세 시대에 테리악과 같은 만병통치약이 풍미했던 데에서
질병과 건강에 대한 시대 사상이
만병통치약에 대한 기대를 상당히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 18세기 이래 비약들이 아무런 검증도 받지 않은 채 기승을 부린 사실로부터
사회적 감시와 터무니없는 만병통치약의 유행 사이에 역(逆)상관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와 더불어 그러한 감시에 앞장서야할 언론이 오히려 국민을 오도하고 있는 모습은
몇해 전 우리나라 몇몇 언론매체의 ‘천지산’ 보도 등에서 드러났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셋째, 모리슨 사례에서 보듯이 만병통치약은
정규의학과 의사들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질 때 기승을 부린다.
질병의 고통과 공포 앞에 떨고 있는 대중들이 터무니없는 만병통치약이나
사이비 이론에 현혹되고 있는 사실을 무작정 개탄하거나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의료인들이 의학지식과 의술,
아니 그보다도 윤리성에서 환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사이비 의술을 추방하는 첩경이다.
환자의 처지에서는
의사나 의술을 신뢰하되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 편이 현명한 자세이다.
즉 자신의 건강에 대한 주인으로 의학을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검증받은 의학은 무시한 채 터무니없는 만병통치약이나
사이비 의술에 매달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스 신화의 히게이아와 파나케이아의 이야기를 고쳐 써야 할 사명이 현대인에게 있다고 한다면,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모르는 소리일까?
-인터넷에서 모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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