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소갈 딱지 부터 시작을 합니다..
필자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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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움 넷
벤댕이란 어류가 하도 성질이 급해서
사람에게 잡히자 마자 죽어버린답니다.
그만큼 속이 좁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죽는거죠.
소갈딱지는 <마음속>의 속된 말 입니다.
혹은 "소갈"이 "속알"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밴댕이는 작은 물고기인데, 그 "속알" 즉, 내장은 작습니다.
다른 멸치 등등..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있지만,
그 특유의 성격때문에 특별히 밴댕이가
속 좁은 성격을 대변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합니다.
밴댕이는 청어과에 속하며 학명은 'Sardinella zunasi'이라고 합니다.
지방에 따라 반댕이, 빈징이, 순뎅이, 뒤파리, 뛰포리, 띠푸리,
청띠푸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영어로 big eyed herring과 scold sardine이라고 불립니다.
즉 눈이 큰 청어라는 말이죠.
낚시로 낚기 어려운 물고기지만
어쩌다 밴댕이가 낚시줄에 걸려 오기도 합니다.
반짝이는 몸매를 비틀며 올라와서는
파르르 몸을 떨다가 금방 숨을 거둡니다.
그래서 납작한 외형 모습과 함께 급한 성질을 가진 밴댕이가,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로 편협하고 쉽게 토라지는 사람들을
빗대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였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나무라면
젖 빨던 아이가 그 자리에서 생 똥을 싼다.
실화다.
아이의 수유를 위해
아무리 대 자연의 정기담긴 음식을 정성 다해 먹는다 해도
사람들과 불화하면
젖 먹는 아이가 먹은 것은 엄마의 사랑이 아닌 엄마의 홧독이다.
수유기에 시름시름 앓는 아이,
잘 자라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가족 관계를 살펴보라.
느닷없이 아기에게 병변이 왔다면
틀림없이 부부 싸움이나 고부간의 갈등에 한 원인이 있음이다.
면박을 받아서 서글픈 여인은
그냥 훌쩍훌쩍 울면서 돌아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그 순간,
아기 밖에는 자신이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상의 피는 그 맛이 대략 달고 짭짤하다.
그러나 애(오장육부)를 태우거나 화가 나면
홧김에 의해 쓰고 떫으며 흑갈색을 띤 강한
산성의 피로 변해 버린다. 피는 생명이다.
그러면 산성을 좋아하는 호산 세균들이
혈액 안에 급속히 팽창하게 된다.
그것들이 인체 중에서 가장 방비가 허술한 부위로 몰려들어
암 등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독일에서 '인간이 내는 화'에 대해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는 매우 섬뜩하였다.
극도로 화가 났을 때 입에서 나오는 공기,
그러니까 홧김을 비닐에 받아 농축 시켜 보니
0.5cc의 노란 액체가 모였다.
이 액체의 0.5cc를 돼지에게 주사했더니
돼지가 비명을 지르며 그만 즉사 해 버리더란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얘기인가?
홧김을 호박이나 오이같은 넝쿨의 생장점에 대고 불면
생장점은 하루도 못가 이내 시들어 버린다.
또 홧김은 공기를 금방 독성화시킨다.
우리 속담에 '"장맛이 나쁘면 집안이 기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메주를 담가서 새끼줄로 엮어 벽이나 천장에 걸어두는데
그러면 집안의 온갖 미생물이 메주에 달라붙어
그것을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가족간에 다툼이 잦다면
그 다툼의 홧김에 의해 메주 균이 죽게 된다.
그래서 메주가 꺼멓게 되고 결국 장맛이 고약해진다.
이렇듯 무서운 것이 홧김인데,
잔뜩 화를 품고서 아기나 사람을 대하면 어찌 될까
싸움이 잦은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온몸에 부스럼과 종기를 달고 사는 것은 그 이유다.
노여운 기운은 항상 그 죄없는 아이들의 혈관 속을 흐른다.
화를 내는 사람을 보면 얼굴이 새파래지거나 새하얗게 변하며
비정상적인 사고와 흐린 판단력이 찰나를 지배하는 것이어서
느닷없이 휘발유를 끼얹고 방화를 하거나
기물을 닥치는대로 부숴 버린다.
즉, 일순 미쳐 있는 것이다.
잠시 후, 화가 풀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렇지
그 순간은 분명 미친 것이다.
짧은 순간 그는 정신 병자가 됐던 것이다.
또, 그의 육체는 그 순간 식욕이 정지되며
피는 거꾸로 순행하고 명치 끝이 바짝 긴장되며
간은 강한 타격으로 극심하게 발작하는 것이다.
잠시 후, 화가 풀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렇지
그 찰나에 중병 환자가 된 것이었다.
그 짧은 순간 그의 몸은 사경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노여움과 증오, 화는
그 사람의 정신과 몸에 심한 타격을 입히며
그 앞에 서서 꼼짝없이 분풀이 당하는 사람의 정신과 몸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서로간의 사랑과 극진한 보살핌에 힘 얻어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라고 빵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씨알" 안에 "인의예지신"의 바른 품성 키울 재료가 들어 있다.
하늘 사랑이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빛이다.
보이는 빛은 몸을 치료하고,
보이지 않는 빛은 마음을 돕는 치료 광선이 된다.
빛은 진리다. 빛 앞에 어둠은 소멸한다.
빛의 힘으로 사람은 살기에, 원래 사람은 빛의 자녀다.
곧 사람은 육체를 지닌 빛이다.
광명하여 만물을 살려야 하는 존재다.
칠흑 같은 밤 하늘의 별이다.
어둔 세상에 "원래 태양" 반사할 스타이다.
"화"는 도대체 왜 나는 것일까?
간단하다.
상대방의 생각이 내 마음의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이다.
즉, 내가 기대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 속에서 화가 끓어 오른 것이다.
그 때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간에서
피가 솟구쳐 피를 토하게 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리를 지른 것이다.
"화"는 내 욕망의 좌절에서 기인한다.
또, "화"를 분석해 보면 "화"의 원인은 이미 지난 일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집안에서 무언가 큰 잘못을 했다치자.
그러니 잘못한 시점은 이미 지난 과거지사이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금이다. 즉 현재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현재 파악하여 화를 터트린 것이다.
그러니 "화'를 터트린 시점은 잘못한 과거에 대하여 미래가 된다.
이런 미친 짓이 어디 있는가?
과거의 일 때문에 미래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니!
과거의 잘못은 지나간 것이라 하여 과오(過誤)라 한다.
과거의 것은 "용서라는 큰 바다"에 던지지 않고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자애는 무서운 교훈이다.
용서라는 턱 없이 큰 포용함에
한 없이 뉘우치고 재범(再犯)하지 않는다.
담장 높은 교도소의 형벌은 거듭 전과 2범,
전과 3범 더 큰 죄수를 만들고,
품어 주는 자비는 새로 거듭 난 삶을 살게 한다.
* 다 읽으시고도 화를 내신다면,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겠으나,
상대를 불태웠을 것임을 반드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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