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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ífice와 다리를 놓는 사람들

비타민님 2012. 10. 11. 20:21
 

 님! 가정에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세요.

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어제 저녁 7시에 크리스티나 대통령의 전국 통신망을 통한 연설을 듣고

비타민은 많은 불신감과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위에 성경 말씀이 자꾸만 머릿 속에 맴을 돈다.

개신교 평신도로 많은 주님의 축복을 받은 비타민이다.

아내의 전화 통화에서 AFIP이 현지 소매상 감시 체제를 만들어서

큰 아들이 모든 수속을 했다고 하며,현지 노인의 말을 인용해서

현 정권은 과거 페론 때 보다도 더 나쁜 방법으로

서로의 신뢰를 불신케하는 분열을 조장하는 담을 쌓고 있다고 한다.

이 제도에 많은 한인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걱정이다.

나 넘은 여생 사는동안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며

조용한 아침 시간에 주님께 드리는 간구이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막힌 죄의 담을 무너뜨리는

하나님 자녀의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고.

또 아르헨티나에 좋은 날이 오기를 겸손히 기도를 드린다.

Pontífice  주로Papa.교황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데,

고대 로마 제국에서는

Tíber강의 다리를 관리하는 관리자에 기원을 한다고 한다.

그 후에 이 단어는

Colegio de Pontífices (Collegium Pontificum)를 의미하는

로마 카토릭 정교회의 최고Pontífice

주로Papa.교황을 지칭했다고 한다.

현금에는Papa로 불리는 교황을Sumo Pontífice로 부르면서

obispos arzobispos들 역시Pontífice로 부른다고 한다.

 폰티펙스(pontifex)는 제사장에 해당하는 라틴어이다.

제사장이란 원래는 긍정적이고 강력한 목적을 지닌

적극적인 개념으로 본래 뜻은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다리’(pons). '다리 통행료'(pontage), '부교'(pontoon)

여러 영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제사장이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실제적인 직분이었다.

 

인류 역사상 사람이 만든 건축물 중에서 가장 길고 높은 건축물로

중국에 있는 만리장성인데, 진나라의 시황제가

북쪽에서 쳐들어 오는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2,700킬로미터, 마일로는 1,677마일의 성벽을 쌓았던 것입니다.

 

독일에는

동서 베를린을 분리하는 베를린 장벽이 1961년에 세워졌습니다.

공산주의 통치아래에 있던 동베를린 사람들이

서베를린으로 탈주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장벽을 쌓았습니다.

 

한국에는 아직도 휴전선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 민족이 남한과 북한, 둘로 갈라진 이후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가 되었습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전쟁의 불안 을 담은 휴전선입니다.

 

사실 이러한 외형적인 장벽,

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세워졌지만,

관계적인 면에서 볼 때는

상대방에 대해 용납하지 못하고 함께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입니다.

이러한 장벽들은

서로 깨어진 관계를 잘 드러내는 외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 장벽보다 더 깊은 보이지 않는 관계의 골이

그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도 우리 사회 생활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목하지 못하는 장벽들이 존재합니다.

가정 안에도 이러한 벽이 있습니다.

때로는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에 넘기 힘든 장애물이 있습니다.

직장도 그렇고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나라와 나라간에도 이러한 벽들이 있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의 염려가 있다면

보수와 진보, 좌와 우, 청년과 노인, 인종과 인종, 남자와 여자,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종교와 종교 사이의 벽은 점점 더 높아져 가는데

양극 사이에 다리 놓으려는 사람은 별로 없고.

양쪽 사이에 높다란 벽만 쌓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상생(相生)이 아닌 상극(相剋)만 부추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벽은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 자신과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꿈과 이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벽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벽은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지만 벽은 보호하는 만큼 방해하며,

침투를 막는 만큼 소통도 막고, 방어하는 만큼 구속합니다.

 

만리장성은 침략을 일삼는 적을 막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그 놀라운 성벽은

중국을 세계로부터 가두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을 쌓고 탑을 쌓는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새로운 도전을 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족들이나 다른 그룹과

섞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정한 사람들하고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곧 무너질 바벨탑을 쌓는 일과 같습니다.

그것은 어설픈 하나되기로 끼리끼리 모이는 묶기일 뿐입니다.

 

반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

그리고 로마의 기술과 역량은 비슷했다고 합니다.

중국이 방어를 위해 만리장성을 쌓고,

이집트인이 한 사람을 위해서 피라밋을 만들 때,

로마는 개방을 위해서 15만 킬로미터의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세계를 정복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담을 허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2:14)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개종했지만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사람으로 아주 나쁜 평판을 갖고 있어서

많은 제자들이 그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변화에 대해서도 의심하였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사울과 사도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9:26-27)

세례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선지자로서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였습니다.(1:23)

 

다리를 놓는 사람은 '단순한 연락병'이 아닙니다.

연락만 하면 인간의 언어와 이해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항상 오해가 생깁니다.

다리를 놓는 사람은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쪽에 가면 저쪽을 세워주고,

저쪽에 가면 이쪽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다리의 임무가 밟히는 것처럼

많은 고난과 역경과 희생이 따릅니다.

그러기에 다리 놓는 사람은 벽을 만들어 성이나 탑을 쌓는 대신

하늘을 향한 단을 쌓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단을 쌓고, 고백과 간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도움을 구하고 안정을 찾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세워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주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프란체스코와 그의 제자들이 금식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10일 가까이 금식을 하고, 수도원에서 내려와 시장을 통과할 때,

제자 중의 하나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시장에서 파는 죽을 막 퍼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이 정죄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습니다.

죽을 먹은 제자는 고개를 숙이고,

이제는 쫓겨났구나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고 있을 때,

프란체스코는 죽 파는 좌판에 뛰어들어 자기도 죽을 먹으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도 배고파 죽을 뻔했다. , 너희들도 와서 먹어"

곤경에 처한 제자를 살리는 스승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과 세상 사이,

다리의 역할을 감당할 거룩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믿은 자로서 입은 구원의 은혜,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물과 기름처럼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화합하고 어울리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세제를 섞은 물이나 비눗물 같은 활성제를 넣어주면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활성제처럼 서로 도와준다면

얼마든지 잘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이웃과 이웃 사이를 가로막는 '담을 쌓는 대신 단을 쌓는' 사람이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이웃과 이웃 사이를 이어주고

하나되게 하는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 옆 사람의 손을 살짝 잡아보세요.

왜냐구요? 그것이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 놓는 사람,

pontífice (Bridge builder)의 첫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님!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 드림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