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 1 14 ~ 1965 9 4)는
독일 출신, 프랑스 국적의 의사, 음악가, 철학자, 개신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이다. 슈바이처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그의 고유한 철학이 인류의 형제애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이 철학은 그가 중앙 아프리카 서부 지역의 랑바레네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병원을 세울 때에 설립 이념이 되었던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55년에는 영국 명예 메리트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한편 음악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던 그는
독일의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를 연구했으며,
20세기 초의 오르간 개선 운동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카이제르스부르크에서의 유년시절은
슈바이처의 기독교믿음과 정신 성숙에 영향을 주었다.
루터교회 목사인 아버지는 아들이 성서를 읽으며
궁금해하는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으며,
교우들의 대부분이 가난한 농부들이었던 주위환경은
슈바이처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했다.
참고로 슈바이처하면 어린 시절 친구와 씨름을 해서 이겼는데
친구가 "나도 너처럼 고깃국을 먹었다면 이겼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근거는 없다.
1931년에 쓴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을 보면,
슈바이처는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슈바이처의 아버지는 성찬예배때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서 자주 설교했다.
이러한 성장환경은 슈바이처를
역사적 예수연구 1세대에 참여한 진보적인 신학자이자,
아프리카 의료봉사자가 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에큐메니컬과 평화주의 사상
알자스는 복잡한 역사때문에 종교적으로
개신교 신자와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같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교단은 달랐지만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므로,
서로의 전례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기독교인으로서의 일치를 이루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실천했다.
이러한 유년시절의 경험은
슈바이처가 자신과 다른 사상을 존중하는 너그러움을 갖게 해주었다.
슈바이처가 살던 동네에는 유대 상인이 있었다.
그는 가축과 땅을 거래하는 상인이었는데,
반유대주의로 인해 마을 사람들에게 '돼지'라는
입에 담긴 힘든 모욕을 받으면서도 전혀 미워하지 않았다.
이를 본 슈바이처는 용서만이 악을 굴복시키고
갈등을 극복하는 길임을 확신하는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중약….
자세한 슈바이처 박사의 생애는 위키백과를 참조하세요.
출처: 위키백과
O Holy Night (beautiful gui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