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사는 곳의 사진입니다.
뉘우치는 죄인(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
제정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말년에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한
토막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도전과
경고의
말을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숲에서
뛰어나온
사자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에
당황한
이
젊은이는
칡넝쿨을
잡고
근처에
있던
우물
안으로
급하게
몸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칡넝쿨에
매달려
아래를
보니
우물은
말라
있었고
거기에는
독사들이
떼를
지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위에서는
사자가
내려다보며
으르렁
거리고
있고,
아래에는
독사가
떼를
지어
우굴
거리고
있는
그야
말로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위태위태한
상황인데,
그가
매달려
있는
이
넝쿨마저도
무엇인가가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우물
벽에서
나온
흰쥐와
검은
쥐였습니다.
바로
밤과
낮을
상징하는
이
흰쥐와
검은
쥐는
번갈아
가며
나타나
젊은이가
매달려
있는
이
생명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톨스토이는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심각한
상황에
처한
젊은이가
하늘을
쳐다보니
우물곁에
있는
큰
나무
가지에
벌집이
하나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벌집에서는
꿀이
넘쳐흘러서
우물
안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젊은이는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그
꿀을
받아먹으며
태평스럽게 "아
달다"를
연발합니다.
지금
톨스토이는
단맛에
취해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잊어버리고
칡넝쿨에
매달려
있는
어리석은
모습,
그것이
바로
인생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
다."
하고 대답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23 : 42 ~ 43)
옛날
어느
곳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칠십
평생
동안
온갖
죄악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뉘우칠
줄
몰랐습니다.
마침내
죽음의
시각이
닥쳐왔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은
울면서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주여,
당신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을
용서하듯
저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을
하자마자
그의
영혼은
육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죄인의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믿었기
때문에
천국의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죄인은
문을
두드리고
천국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고?
이
사람은
살아
생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
그러자
폭로자의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폭로자는
이
사람이
저지른
죄악을
낱낱이
들추어냈습니다.
그러나
착한
일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죄인들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어서
물러가라."
죄인이
다시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오나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이름도
모르겠나이다."
목소리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도
베드로다."
그러자
죄인이
말했습니다.
"나를
불쌍히
생각해
주십시오,
사도
베드로님.
사람의
약함과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닙니까?
당신은
그분이
말씀하신
가르침과
그분의
모범적인
생활을
보지도
못하셨습니까?
이런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언젠가
예수님이
괴로워하시며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당신더러
자지
말고
기도드려
달라고
세
차례나
당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눈이
감겨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그분은
잠자는
당신을
세
번씩이나
보았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그분이
가이샤의
집으로
끌려갔을
때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닭이
울기
시작하자
그곳을
떠나
슬피
울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천국에
넣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자
천국의
문
뒤에서
목소리가
잠잠해졌습니다.
죄인은
조금
서
있다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천국에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문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냐?
저
사람은
세상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
폭로자의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또다시
죄인의
나쁜
일을
낱낱이
들추었습니다.
그러나
착한
일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문
뒤에서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어서
물러가라.
그런
죄인들은
우리와
함께
천국에서
살
수
없느니라."
죄인이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오나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이름도
모르겠나이다."
문
뒤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예언자
다윗
왕이다."
죄인은
실망하지
않고
천국의
문에
붙어
서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불쌍히
생각해
주십시오,
다윗
전하.
그리고
사람의
약함과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국도
명예도
돈도
처자식도.
그런데
당신은
지붕
위에서
가난한
사람의
아내를
발견하고
마음속에서
나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아몬
자손의
칼로
바로
그
남편을
죽였던
것입니다.
당신은
잘
살면서도
가난한
사람에게서
마지막
양을
빼앗고
그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에
가서
당신이
어떻게
뉘우쳤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내가
지은
죄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몹시
슬퍼한다'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천국에
넣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문
뒤의
목소리가
잠잠해졌습니다.
죄인은
조금
서
있다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천국에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세
번째의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누군고?
저
사람은
세상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
폭로자의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세
번째도
죄인의
나쁜
일만
들추어낼
뿐
좋은
일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문
뒤에서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어서
물러가라.
죄인들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느니라."
죄인이
말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오나
얼굴도
보이지
않고
이름도
모르겠나이다."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신학자
요한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던
제자이니라."
그러자
죄인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이젠
나를
천국에
넣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다윗은
사람의
허약함과
하나님의
자비를
알고
있으므로
나를
들여보내
줄
것입니다.
신학자
요한님,
당신은
당신의
책
속에서
하나님은
곧
사랑이며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쓰지
않았습니까?
'형제들이여,
서로
사랑하라!'고
늙어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은
당신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당신이
이제
와서
어떻게
나를
미워하고
쫓아낼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입으로
한
말을
거짓이라고
하든가,
아니면
나를
사랑하여
천국에
들여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천국의
문이
열렸습니다.
요한은
뉘우치는
죄인을
안아서
천국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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