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존 밀턴의 <실락원> 줄거리(모신 글)

비타민님 2015. 5. 25. 20:40

1. 저자 소개

시력을 잃은 후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후의 서사시를 남겼다.

 

어둠의 질곡 속에서 더욱 빛나는 혜안의 선지자

 

“아, 눈이 보이지 않는구나! 결국 친구들이 염려해 마지않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구나. 어찌 이 상태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이렇게 끝나고 말 것인가?

 

  1652년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밀턴은 이제 더 이상 새벽의 영롱한 빛을 볼 수 없음을 깨닫고 이처럼 안타깝게 탄식했다. 이는 그가 그렇게 벼르던, 당시 유럽의 대표적인 지성 살마시우스(Claude Saumaise)를 반박하는 글을 마무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그는 말 그대로 “영국 국민을 위하여” 이 일에 매달렸다. 국왕을 살해한 영국 청교도혁명을 비판하는 살마시우스의 글로 인하여 크롬웰의 공화정은 일대 위기에 몰렸다. 그는 이 ‘팜플렛 전쟁’에 자신의 명예는 물론 공화정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여겨 더욱 헌신했다. 당시 자신의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의사들은 내가 이 일에 몰두하면 남아 있는 시력마저 회복불능 지경으로 소실될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했다. 하지만 그 경고 때문에 어떤 망설임도 당혹스러움도 생기지 않았다… 내 결심은 흔들림이 없었으니 그 때문에 시력을 잃거나 아니면 책무를 다하지 못하리라는 양자 택일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유공화정에 대한 밀턴의 헌신은 이처럼 철저했다. 원래 밀턴의 꿈은 호머의 『일리어드 Iliad》나 버질의 『이니드 Aenied》에 견줄 만한 대서사시를 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남부럽지 않은 자신의 출생 배경을 마음껏 활용하여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 이태리 등을 돌아보는, 소위 ‘대장정의 여행’도 기획했다. 그런데 여행 도중 조국이 내란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1639년 귀국을 서둘렀다. 그는 크롬웰이 이끄는 청교도 의회파의 입장에서 왕당파와 벌이는 각종 종교적, 정치적 논쟁에 뛰어들었다. 1642년에는 아버지의 사업 심부름을 하다가 알게된 메리 파웰과 결혼하게 되는데, 정치적 입장이 다른 집안 출신과의 결혼생활이 순탄할 수 없었다. 오랜 별거생활 끝에 어렵게 화해는 했지만 곧 부인과 세 딸과 아들을 모두 잃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두 번째 부인 캐더린 우드콕도 출산하다 사망하고 아이마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처럼 거듭되는 사적인 불행을 잊기 위해서인 듯 밀턴은 청교도 혁명의 대의를 위한 논쟁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1649년 찰스왕을 처형하고 공화정이 수립되자 크롬웰의 라틴어 비서가 되었다. 이제는 국내의 적들과의 싸움만이 아니라 구교를 신봉하는 대륙에서 영국을 향해 퍼붓는 공격에 대항하는 외교전쟁까지 수행해야 했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살마시우스의 비판이었다. 서사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잠시 접고 ‘팜플렛 전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열중하던 그는 결국 과도한 독서와 글쓰기의 피로가 겹쳐 시력을 잃게 된 것이다. 1655년에 쓴 유명한 소네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때 밀턴은 하나님이 주신 시인으로서의 재능(talent, 달란트)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아닌가 안타까워했다.

 

이 캄캄하고 넓은 세상에서 내 반생이 끝나기도 전에

내 빛이 소진된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은 낮의 일을 요구하면서 빛은 허락하지 않으시는가?

나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네.

 

  물론 이 시에서 시인의 ‘어리석은 질문’이 낙담이나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업적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분의 부드러운 멍에를 가장 잘 견디는 자가 곧 그분을 가장 잘 섬기는 자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개인적 불운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헌신했던 공화정의 대의가 상실하게 되자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게다가 공화정의 몰락으로 왕정이 복고되면서는 생명까지 위협받았다.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반역과 국왕시해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제 자신이 그토록 옹호해왔던 자유 공화정에 대한 열기도 사라지고 교회도 예전의 인습적인 모습으로 퇴행해버렸다. 그는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멸을 겪은 인생의 후반이 가장 정력적인 창조시기였다는 데 밀턴 삶의 매력이 있다. 그는 앞은 보지 못해 구술하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수천 행에 달하는 장대한 서사시를 완성시켰다. 초기 『리시더스 Lycidas, 1637』 등을 발표할 때 키워왔던 호머나 버질과 같은 국민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역경의 순간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암흑과도 같은 절망의 순간에 진리의 빛을 밝혀야겠다는 선지자적 소명의식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며 광대한 비전의 세계를 펼쳐 보여준 것이다.

 

  그의 이러한 업적과 불굴의 모습은 이후의 시인들, 특히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사표가 되었다. 그와 종교적 입장이 달랐던 엘리엇(T.S. Eliot)은 그를 ‘감수성 분열’의 ‘원흉’으로 규정하며 다른 시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비판하지만, 블레이크(William Blake)와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등의 낭만시인들에게는 존경하는, 동시에 극복하고 싶은, 아버지와 같은 ‘정신적 군주’였으며 이들 창작활동의 원동력으로 많은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2. 대충 훑어보기

  ‘하늘에서의 전쟁’에서 패배해 지옥으로 쫓겨난 사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재기와 복수의 칼날을 세웠다. 그는 우선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신음하는 부하들을 불러모아 거대한 악마의 궁전을 지었다. 이 궁전 대회의에서 그는 부하들을 설득했다. ”하늘에서 섬기느니 차라리 지옥에서 다스리겠노라“는 다부지고 열정적인 웅변에 감동한 반역의 무리는 다시 일어설 것을 다짐했다.

 

  반역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천지와 인간을 새롭게 창조했다. 사탄의 무리는 바로 이 새로운 세상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하늘나라의 의도를 좌절시키기로 한다. 사탄이 이 새로운 세상의 정탐자 역을 자원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자제할 수 없었지만 영광스런 자리를 부하에게 양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득의만면한 미소를 머금고 그는 지옥문을 향해 날아간다. 안개의 모습으로 에덴동산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그는 처음엔 꿈을 통해 이브를 유혹하려 한다. 수호천사들의 방해로 실패한 그는 궁리 끝에 뱀의 형상을 하고 홀로 일하고 있는 이브에게 접근해가는데…

 

3. 더 재미있게 읽기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의 대서사시

  『실락원』은 원래 1667년 출판될 때에는 10권으로 되어 있었으나 1674년 두 번째 판이 나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12권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위대한 서사시를 쓰려던 밀턴이 본래 의도했던 주제는 아서 왕에 관한 것이었다. 버질이 『이니드』로 로마를 영광스럽게 한 것처럼 자신의 서사시를 통해 영국을 영광스럽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청교도혁명 과정에서 격렬한 종교적 정치적 논쟁에 참여하면서 생각을 바꾼다. 한 나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괄하는 좀더 심오하고 광범위한 주제를 택한 것이다. 한 나라 한 민족보다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서사시의 주제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것이어야 한다. 『실락원』은 이처럼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의 서사시이며 동시에 밀턴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입장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묘미는 그것이 당시의 중요한 사회적, 철학적, 종교적 논쟁거리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논쟁거리들은 특히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실락원』은 고대의 보편적인 서사시들에 비해 제한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밀턴이 비중을 두고 있는 사회적 관심사 중의 하나는 여성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입장은 대체로 남자를 여자의 주인으로 여기는 성경구절에 충실하다. 그러나 때로는 ‘여성혐모증’ 혐의를 받을 수도 있는 징후를 보여주기도 한다. 밀턴의 이러한 경향은 첫 부인과의 불행한 결혼 때문에 생긴 부정적 감정과 부분적으로는 연관이 있다. 그러나 중세부터 널리 퍼져 있던, 여성은 그 근본부터 사악하다는 통속적 믿음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믿음이 아담의 입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타락 이후의 일로 사실은 분노와 절망 탓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밀턴의 견해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여성혐오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온화한 것이며 성경의 기준으로 보면 온당한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능력에 대한 믿음

  또 하나 밀턴이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자유 혹은 ‘자유의지’의 문제다. 그는 팜플렛 논쟁에서 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적극 옹호했다. 그는 제도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혐오했다. 이러한 입장은 종교적 태도와도 이어진다. 그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로마교회의 권위적 제도를 ‘바빌론의 창녀’로 비유하기도 했다. 성공회든 장로교회든 교회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참된 신앙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낭만주의자들을 매료시킨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에 대한 믿음이 서려 있다. 이것이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이 때문에 반인본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엘리엇 같은 시인으로서는 밀턴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인본주의자라 할 수 있는 밀턴은 개인과 양심 혹은 ‘올바른 이성’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도구라 여겼다. 그가 성경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나름의 입장에서 천지창조나 타락의 의미를 해석하며, 반역을 선동하는 사탄을 그처럼 매력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참고로, 그의 충실한 제자이자 그에 대한 '오역‘(misreading)의 대가라 할 블레이크는 밀턴이 "자기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악마의 편에 서 있다”고까지 하였다. 물론 블레이크에게는 악마가 타도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천사가 수상한 존재다.

 

  이런 입장에서 밀턴은 아담과 이브의 선택에 있어 ‘자유의지’를 강조한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며,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하늘의 뜻이니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책임에 있어서는, 이브나 아담처럼 불가피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택한 것과 사탄이나 그 무리처럼 스스로 선택한 것과 차이가 있다. 조금은 논리적으로 궁색해보이는 이 틈새에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이 끼여들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밀턴은 또한 작품 내내 소위 ‘행운의 타락’ 개념을 피력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극한 은총의 사랑과 용서의 계기가 되었으며, 인류 역사에 가장 찬란한 사건이라 할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테스탄트들이 공히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근거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기독교 신학의 체계적 이론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기에는 밀턴은 너무나 독창적이고 자기 완결성을 지향하는 시인이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시작품을 대하면 감상의 재미가 반감된다. 밀턴의 유장한 문체와 풍부한 상상력, 눈 먼 상태에서 구사하는 빛과 어둠 등의 절묘한 상징, 그리고 절망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너그러움 등을 주목하며 읽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특히 신교든 구교든 점점 인습화, 교조화하는 기독교의 흐름에 주목하면서, 350년 전에 이미 그러한 경향성을 비판했던 선지자 시인의 질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작품감상의 묘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