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연대(compassion, 함께를 뜻하는 com과 고통을 뜻하는 passion을 더한 말.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고통받음.)라는 이름의 원(세상)을
모든 생명에게로 넓히기 전까지는, 인간은 진정한 평화를 느낄 수 없다."
(Until he extends his circle of compassion to include all living things, man will not himself find peace.) ”
"나는 여러분의 운명을 알지는 못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섬김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하여 깨달은 사람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I don't know what your destiny will be, but one thing I do know:
the only ones among you who will be really happy are those who have sought and found how to serve.) ”
내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빛나는 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개신교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갔으므로,
그의 봉사 활동 역시 순수한 인도주의가 아니라
종교적인 야심의 소산일 뿐이라는 비판도 들어야했다.
이는 부당한 비난이다.
슈바이처는 유럽 제국주의의 착취에 의해 아프리카가 병들어간다는 사실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사회선교를 했다.
또한 사회선교 일기인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읽어보면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하기는 커녕,
근본주의 노선의 개신교에서 미신이라고 낮추어보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소박한 전통종교를 존중했다.
슈바이처의 사회선교는 사람들에게 개신교 신학자로서 존경받으려 하거나
개신교의 교세를 넒히려는 종교적 야심의 소산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럽에서 이미 역사적 예수와 신약성서연구로써 신학박사를 취득했으므로
굳이 사서 고생함으로써 존경을 받으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슈바이처는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교를 합리주의로써 해석함으로써 그들이 계몽주의 시대에 적응하도록 해주었다.
또 슈바이처의 의사 자격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그가 진료했던 랑바레네의 병원이며 슈바이처의 진료 실력은 한 마디로 수준 이하였지만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현대의학자들이 보기에는 슈바이처의 의료가 수준이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기득권을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사회선교를 한 슈바이처의 실천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슈바이처는
어릴 적부터 좋은 옷을 입히려는 부모님에게
"남들은 이렇게 입지 못하는데, 저만 이렇게 입을 수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동정심 많고 기특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의사가 없어 고통을 받는 아프리카 이야기는
그냥 넘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남은 생을 그들을 위해 살기로 하고
의과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된 그는 헬레네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주변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아프리카행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슈바이처는 그녀와의 만남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찾아가 결연하게 자기 뜻을 밝혔습니다.
"나는 아프리카로 떠날 사람이오."
많은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슈바이처의 얼굴을 보며
헬레네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간호사가 된다면 당신을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겠지요?"
그 뒤 헬레네는 간호학을 공부하여 간호사가 되었고
슈바이처와 결혼 후 함께 아프리카로 떠나
평생 헌신적인 봉사를 하며 살았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 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
상대방을 바꾸기보다 그를 인정하는 것.
어떤 사랑이든 헌신과 희생, 그리고 배려가 함께해야
진정한 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