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따르는 이야기♥

고난을 압도하는 영광 - 아더 핑크

비타민님 2012. 7. 22. 06:51

 

고난을 압도하는 영광 - 아더 핑크

 

그리스도인을 위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 8:18)

 

어떤 사람은 위와 같은 것을 사람은

틀림없이 고난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일상생활 중에 일어나는 아닌

귀찮은 일들에 익숙해진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은 구절은 성령의 인도 하에 기록된 것이며

또한 가장 가혹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슬픔의 잔을 한껏 들이킨 사람이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맞았으며,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고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4-27).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분명한 확신에 구절은 인생행로를,

장미가 옆에 늘어선

융단 길로 알고 있는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기록한 사람은 동족들에게 미움을 사고,

여러 흠씬 두들겨 맞으며 위로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없어서는

최소한의 것마저 빼앗겨 버릴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구김살 없는 낙관주의를

어떻게 설명해야 것인가?

그가 모든 고난과 역경을 딛고 올라설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던가?

 

 

첫째로, 쓰라린 시련을 받은 사도가

스스로 위안을 받을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아주 잠시 동안만 지속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고난은 “현재”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점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받을 고통과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들의 고통은 영원히 못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이와 전혀 다르다.

그의 고난은 땅에서의 삶으로 제한된다.

그런데 이생은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으로 비유되거나

금세 사라지는 그림자로 비유될 만큼 순식간이다.

길다고 해야 고작 년간이다.

그러고 나면 신자는 눈물 골짜기를 지나

신음과 탄식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더없는 기쁨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사도는 믿음의 눈으로 “영광”을 고대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영광”이란 아름다운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가장 견디기 힘든, 뜨거운 시련의 시간에도 그를 위로해 주었다.

이것은 일종의 믿음의 시련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려움을 당할

그를 든든하게 떠받쳐 주는 것이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완전한 기쁨”이 있으며

하나님의 오른 팔이 있는 곳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믿음이 그들을 붙잡고 있으며 그들을 채워주며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것과 같다( 13:23,26).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만

우리에게 보이신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고전 2:9,10).

 

셋째로, 사도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으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가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지 실마리를 주신 것이 있다.

먼저, 완전한 육체를 가지게 “영광”이다.

날에는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며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것이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것이다(고전 15:49).

이러한 묘사들이 빌립보서 3:20,21 압축되어 강조적으로 나타난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다음으로는 우리의 지성이 변화되는 영광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 영광스럽게 사람의 지성의 눈빛은 어떠할 것인가!

빛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는 얼마나 광대할 것인가!

사람이 누리게 이해력은 또한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때에는 모든 비밀이 풀릴 것이며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모든 모순들이 해결될 것이다.

 

때에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진리들과

그분이 섭리하신 모든 사건들과

그분이 통치하시면서 내리셨던 모든 결정들이

햇빛보다 환하게 찬란히 드러날 것이다.

당신은 오늘날 신령한 지식을 추구하는 도중에

당신의 생각이 희미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으며

지적인 능력에 여러 가지 한계가 많다고 슬퍼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장차 당신에게 나타날 영광의 소망으로 인해 즐거워하라!

그날이 오면

당신의 모든 지능은 새롭게 되고 계발되어 온전하게 것이며

그래서 결국 주께서 당신을 아신 것같이

당신도 온전히 알게 것이다.

 

 

다음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영광이다.

그제야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

이루어지게 것이다.

그분은 “우리와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시겠다”( 138:8) 약속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장차 완전히 순결하게 되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예정되어 있다( 8:29).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뵙게 ,

“우리는 그분과 같이 것이다”(요일 3:2).

그렇게 되면 우리의 지성은 이상 악한 생각으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이상 죄책감 때문에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이상 무가치한 것을 좇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인가!

안에, 지금은 빛의 줄기도 제대로 반영할 없는 안에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안에, 그처럼 변덕스럽고

그처럼 교제를 나누는 삶이 그토록 부족한 안에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안에 영광이 드러날 있을까?

절대로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단언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신 “그분” 안에 있음으로 하여

내가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

비록 지금은 세상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지낸다 하여도

언젠가는 하늘보다 더욱 환하게 빛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에

그분은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실 것이다”(살후 1:10).

 

 

넷째로, 사도는 여기에서

현재의 “고난”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견주어 보면서

현재의 고난은 장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는 세상에 속한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한 것이다.

하나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은 비교될 없으며,

세상의 고난과 하늘의 영광은 비교도 없다는 것이다.

 

순간의 영광일지라도 일생에 걸친 고난을 갚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고생과 질병과 이런저런 모든 슬픔과 가난에 시달리면서 보낸 날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곳에서 누릴 영광에 비하면

참으로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기쁨의 강물을 번만 들이킨다 해도,

낙원에서 차례만 호흡을 한다 해도

그리고 보혈로 씻음 받아 보좌에둘러 있는 성도들 가운데

시간만 있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땅에서의 모든 눈물과 신음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

 

아무쪼록 성령께서 나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합당한 믿음으로 진리를붙들게 하셔서

세상 사는 동안에 진리를 받아 누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