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좋은 점을 말하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이요,
나의 나쁜 점을 말하는 자는 나의 스승이니라.
☞ 道吾善者(도오선자)
: 나의 선을 말하는 자라는 뜻으로,
‘道’는 서술어로 ‘말하다’는 의미입니다.
[해설] -
늘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는 노력과 함께
타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德目(덕목)들은
재론을 거듭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충고와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修養(수양)의
노력과 경지는
언제나 處世(처세)의 이상적 話頭(화두)임에
분명합니다.
더욱이 작은 글귀 한 구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名言(명언)으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치 있는 의미를 지닌 글귀라 하더라도
그저 액자 속에 쓰인 멋진 예술품 정도로 인식되고 만다면,
이 또한 퇴색해버린 口頭禪(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명언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은 고금을 관통할 수 있는
보편적 價値(가치)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일면 食傷(식상)하더라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가치는 충분합니다.
과거 爲政者(위정자)로부터
庶人(서인)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素養(소양)으로
전해오면서
무한하리만큼 수양의 본질에 대한 공고한 위치를 점유해 왔습니다.
물론 누구라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과찬(過讚)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 그 경계도 모호할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남을 비판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비판하는
자기 수양의 노력과 함께 타인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자기 연마의
단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은 당연합니다.
또한 모두가 빼어나려 하면 누구도 빼어날 수 없습니다.
慾心(욕심)으로부터
야기되는 수많은 병폐들에 대해서도
덜어내고 버릴 줄 아는 수양이 필요합니다.
집착과 고집을 버릴 수
있는 마음의 수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莊子(장자) 역시 고집과 집착의
병폐를 이렇게 말합니다.
“ 세속의 사람들은 모두 남들이 자기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남들이 자기와 다른 것을 싫어한다.
자기와 같으면 이것을 바라고 자기와 다르면 바라지 않는 것은
뭇사람들 보다 뛰어난 것으로 마음을 삼은 것이다.
”
[ 世俗之人, 皆喜人之同乎己,
而惡人之異於己也. 同於己而欲之,
異於己而不欲者,以出乎衆爲心也. 『莊子』在宥篇]
자신을 낮추고 덜어낸 만큼 또 다시 새로운 것이 채워집니다.
맹목적 비교와 경쟁이 나눔과 배려보다 우선시되고 우월하게 취급되는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천박한 모습을 치유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천박성을 희석시켜
진정한 ‘國格(국격)’과
인격을 높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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