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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미리 알려주신 대로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신 자신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십자가에서 맞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천하고 흉악한 자가 당하는 가혹하고 비참한 극형입니다. 로마제국의 시민은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겪지 않는 처형방법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고통스럽기 그지없고 보기에도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 위에서 두 손에 못이 박히시고 두 발은 포개져서 못질을 당하신채 세워지셨습니다. 그 상태에서의 고통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에 젖은 장작더미 위에 산채로 묶여 화형을 당하는 것도 무서운 처형방법이었고 두 손과 두 발이 밧줄에 묶이고 소나 말에 매어져 사방으로 끌어당기는 짐승들의 힘에 의해 사지가 찢어지는 것도 막15:25에 보면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오전 아홉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런데 마27:46에 보면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적어도 여섯 시간 이상을 세워진 십자가 위에 달려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 당할 고통으로서 이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의 죄를 완벽하게 용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극진하고 무한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긴 시간 극도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처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은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서 오는 육신적 고통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상으로 감당하기 힘든 심적, 정신적, 영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제자들의 배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가룟인이라 하는 유다는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 식사자리에서까지 서로 누가 더 크냐 하는 문제를 놓고
다투느라고 겸손과 섬김을 그토록 강조하신 예수님을 배신했고,
예수님께서 잡히신 겟세마네 동산에 갔을 때는 “깨어 기도하라” 하신 당부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예수님을 배신했고,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다 주님을 버리고 뿔뿔이 도망침으로써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26:33, 35) 장담하던 베드로도
한 여종 앞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함으로써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3년간 사랑하며 동고동락하던 제자들로부터 이런 배신을 당한다는 것은
육체적 고통 이상의 심적 고통을 겪는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배신은 제자들의 배신뿐이 아니었습니다. 군중의 배신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을 하실 때 환호하며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나무가지들을 베어 길에 깔고 소리 높여 “호산나, 다윗이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8-9) 하던 군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며칠 사이에 돈의 유혹과 거짓선동에 넘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소리 지르며 로마 총독 빌라도를 압박하는 무리로 돌변했던 것입니다(눅23:21-23).
이 군중의 배신 또한 보통사람으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극심한 모욕과 수치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때(눅22:54)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리며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치며 누가 쳤는지를 맞춰보라 하기도 하고
온갖 말로 욕하기도 했습니다(눅22:63-65).
예수님께서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죄로 옥에 갇혔던 바라바라 하는 자와 나란히 취급을 받으시고
그 중에서 그는 놓임을 받고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지는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행악자와 함께 그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그것도 온 몸이 발가벗겨진 채 만인이 지나가며 구경하도록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 발가벗겨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이고 그리스도라는 네가 어찌 그러고 있느냐?” 하는 조롱을 관리들과 군인들과
심지어는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로부터 들으시는 모욕을 감내하셔야 했습니다(본문 35-39절).
그러나 예수님께서 겪으신 무엇보다도 큰 고통은
하나님에 의해 버리심을 받았다는 생각에서 오는 두려움과 절망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는 것이었습니다.
군중이나 제자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비교도 될 수 없이 크나큰 절망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음 때문에 예수님은 심히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다 짜내시며 큰 소리로 울부짖으시기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던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진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사53:4-11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사야의 입을 빌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
다른 말씀을 굳이 찾으려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2:6-11에서 쓰기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한 후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인간이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지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층의 모략 앞에, 제자들과 군중의 배신 앞에,
로마 총독과 그 권세와 폭력 앞에, 온갖 사람들의 희롱과 모욕 앞에,
그리고 사탄의 숨은 역사 앞에 무릎을 꿇으신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유대인의 장로들과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들이
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수제자처럼 행세하던 베드로마저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에 인간의 모든 죄를 못 박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이고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을 다 당하셨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는 그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비싼 값,
헤아릴 수 없이 큰 값을 치르시고 구원하심을 받은 우리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며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천하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힘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이수영(1946년 ~ )은.새문안교회 담임목사로서 서울대학교 철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칼빈 신학을 전공하여
1984년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임하다가
2000년 9월 새문안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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