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가장 먼저 반발했던 개신교 신학자들과 달리,
16세기까지 침묵하던 로마 가톨릭은
1616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금서로 지정한 역사적 기록도 있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사상, 종교, 정치,과학.기타 ..분야에
일종의 확고한 ¿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또한 무지한 자들의 맹신적인 맹종의 ‘동의’야말로
합리와 논리적인 지적 능력을 실행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됩니다.
무지한 자와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William G. McAdoo
지혜자의 미덕은 혀를 구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과 무지한 사람을
이웃 집 사촌쯤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사전적 의미를 보면,
무식한 사람은 말 그대로 학식이 없는 사람을 뜻하고
무지한 사람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무식한 자에 대비해 말하자면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자를 말한다.
무식한 사람?.... 인간은 모두가 무식하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가 몸 담고 있는 분야 더 나아가 관심이 있어서
일부러 학습하지 않은 분야는 모른다.
우리가 박식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분야가 범인에 비해
조금 넓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것은 특정 분야에 지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인 것이다. 아니 전혀 차원이 다른 개념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식한 사람이나 무지한 자나 소위 가방끈 길이와는
결코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리석음은 근시안적인 사고에 의한 옹졸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지혜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대처 방법 또한 전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무식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조금 답답하게 할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지한 사람은 그 어리석음과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주변을 곤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심각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무지한 자는 어떤 방법으로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소한 자신이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百聞而不如一見)
백견이 불여일행 (百見而不如一行)
백행이 불여일관 (百行而不如一觀)
백관이 불여일각 (百觀而不如一覺)
백각이 불여일도 (百覺而不如一道)하였다.
기원전 중국의 유명한 고사성어이지만 끝 부분은 이해를 못하는것 같다.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더 낫다는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본들 행동으로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깨달음이 없는 행동은 수백번을 행한들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백만장자가 가난한자들에게 선심 쓰듯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가난한이가 불쌍한 노인들을 위해 정성으로 봉사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은 무지 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세상사 해탈한 성인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그러나 깨달음이 없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이나 막연한 심정으로 휘갈긴 한 줄의 글
그리고 무지한 행동이 때론 상대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자신이 자기만의 아집이나 집착에 빠져서
이러한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혹시라도 주변에 무지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는것은 아닌지,
항상 마음을 정결하게 가다듬고 살아야 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