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나와 너의 관계는 동등한 인격적인 관계

비타민님 2016. 7.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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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서 말을 해야하고,
듣는쪽에서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답게 살려면 안으로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합니다.
바깥의 현상에 팔리지 말고

고요히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 것인지

거듭거듭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필자는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40여년 전에 한 사람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혼혈로 이루어진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현지 한인 넷인 상인연합회(http://www.iacea.com.ar/)

언급합니다.한번 방문을 해서 자유 게시판을 보세요.

The Bad, the Weird…의 집합 장소입니다.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간성과

정신의 원리에 기초한 대화와 협력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인터넷의 부끄러운 자칭?.. 한인 상인 연합회 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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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계 유태인인 마르틴 부버(M.Buber, 1878-1965)

실존주의적인 철학적 인간학을 정립한 철학자로서 '대화'

여러 분야의 학문과 사상을 꿰뚫는 중심적 주제로 다룹니다.

부버는 [나와 너](1923)에서

인간의 기본적 관계를 두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사람의 태도는

그가 말할 수 있는 근원어의 이중성에 따라서 이중적이다. ...

근원어의 하나는 ' - '라는 짝말이고,

또 하나의 근원어는 ' - 그것'이라는 짝말이다.

이때에 그것이라는 말을 ''

또는 '그 여자'라는 말로 바꿔 넣더라도

근원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따라서 사람의 나도 이중적이다.

왜냐하면 근원어 ' - ' ''

근원어 ' - 그것' ''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와 너의 관계는 동등한 인격적인 관계이고,

나와 그것의 관계는 사물에 대한 관계처럼

나의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적 관계이다.

 

사람은 대체로 사물에 대해서 '나와 그것'의 관계를 갖는다.

또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그를 대상으로 관찰하거나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한다면

'나와 그것'의 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 간의 진정한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이며

이 관계는 나와 너의 '사이'(between)에서 성립하는

상호작용적 관계이다.

이 관계에서 대화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버는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란 나와 너의 관계는

진정한 만남의 관계이다.

내가 ''라는 표현을 할 때 이는 이미 만남의 관계이고

'' ''를 나의 전존재로 만나는 것이다.

이 만남의 관계는 선택을 하는 행위이며 선택을 받는 행위이다.

이는 상호작용적 행위이며 이러한 상호작용적 대화를 통해

'나와 너'의 관계가 이루어 진다.

 

부버는 세 가지 종류의 대화를 나눈다.

 

첫째, 진정한 대화이다.

진정한 대화는 말로 하든지 침묵으로 하든지 대화의 참여자가

그 상대자를 있는 그대로의 현존재(Dasein)

그러한-존재(Sosein)에 대해서 인정하며

그들의 의도에 귀를 귀울이며

양자의 사이에서 생동하는 상호성이 생기는 대화를 말한다.

 

둘째, 기술적(記述的) 대화이다.

기술적 대화는 사실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이해하고 따지기 위한 필요성에서 하는 대화이다.

 

셋째, 대화로 위장된 독백으로서

이는 여러 사람들이 한 방에서 서로 돌아가며

모두가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떠들면서

서로를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의 대화로서

사실은 서로를 경청하지 않으며

언어적 상호작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경우이다.

즉 대화를 위장한 독백에 불과한 것으로

진정한 대화가 아닌 것이다.

 

진정한 대화는 ''를 진정으로 들으려고 하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인 ''를 진정으로 들으려고 한다.

 

부버는 또한 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대화에서는 상대방을 향해서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우선 대화의 상대자를 지각해야 하며,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물론 상대방을 하나의 자율적 인간으로 수용하면서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이다.

 

부버는 미리 맞추어진 대로 하는 대화는

진정한 대화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미리 계획된 대로 대화를 하는 것은

대화를 이끌고 가는 자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대화 상대자를 유도하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주제나 구조는 미리 짜 놓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진행은 대화의 혼(Spirit)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대화의 혼이 부르고 부르지 않는 데에 따라 맡겨야 한다.

 

또한 부버는 대화에서 상호성을 강조한다.

상호성이라는 것은 각 자의 것이 아닌

'인간 사이의 것'이 두 사람이 가진

각각의 개별적 주관성을 극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서 상호이해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전에 가졌던 각자의 주관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부버는 진정한 대화,

인간적인 대화의 여러 조건과 내용들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대화적 삶은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삶과

바람직한 정치적 조건을 요구하는 것으로 본다.

즉 인간의 존재양식이 대화적으로 되어 있고

윤리적인 삶의 방식도

'나와 너'의 상호관계에서 대화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본

부버는 인간의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는 원리에 있어서도

대화적인 원리가 지배해야한다는 대화의 철학을 견지하고 있다.

이것이 부버의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너'의 대화적 관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관계를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관계, 국제관계의 기초로서 보는 부버는

유태인과 아랍인 사이의 문제에서도,

기독교와 유태교의 관계 문제에서도

인간성과 정신의 원리에 기초하여

대화와 협력의 공동체를 이룰 것을 주장했다.

인생-비타 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