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배 역 (俳役) Cast

비타민님 2016. 7. 25. 19:40

    


크고 놀라운 사랑



자기 부모를 섬길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연극 무대에 선 배우들과 같다.

신의 의지는 우리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우리들 각자에게 인생 속의 배역을 맡겼다.

우리들 중 누구는 단역(短役)에 출연 할 것이고,

또 누구는 장막극(長幕劇)에 출연 할 것이다.

 

가난한 자, 불구자, 또는

유명 인사나 정치 지도자의 배역(俳役)을 맡을 수도 있고,

아주 평범한 시민의 배역(俳役)을 맡을 수도 있다.

어떤 배역(俳役)이 우리에게 정해질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그 배역(俳役)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배역을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배역에 불평해선 안된다.

어떤 배역이 맡겨지든,

어떤 상황속에서 그 배역을 해내야만 하든

나무랄때 없는 최상의 연기를 펼쳐라.

그대에게 작가의 배역이 맡겨 졌는가?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쓰라.

그대에게 독자의 배역이 맡겨졌는가?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읽으라. 

세네카 Seneca, Lucius Annaeus ("대략 기원전 4년부터∼65년까지") 
로마 스토아 철학자이며 작가. 그는 정부의 고위 관직을 지냈다. 
그는 기원전 57년에 그의 제자인 네로 황제의 정치적 고문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음모에 연루되어 황제의 명령에 따라 자살하였다. 

 

세네카의 철학에는 스토아 학파의 전통적 분야인 자연학과 논리학이 
중요성을 상실하고 윤리학이 중요성을 획득한다. 
그는 철학의 임무를 삶에 대한 연구로 국한시켰다. 
행복하고 유덕한 삶은 자연과 섭리와 운명에 따라 사는 것이다. 
(세네카는 자연의 본질을 신적 이성/God-reason 동일시 했다)
 
세네카에 의하면 신에게 복종함으로써 인간은 자유를 얻는다. 
완전히 조화로운 이성(이것은 신적 이성의 일부이다) 개인으로 하여금 
인간 의지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니게 한다. 
인간은 인내, 절제, 용기를 통해서 최고선에 도달한다. 
이러한 품성을 지닌 사람은 빈곤이나 고통 심지어 
노예제도나 죽음 조차도 두려워  필요가 없다. 
 
이성적이고 신적인 우주 안에서는 만유가 생명체들의 이로움을 위해 존재하지만, 
반면에 물질적 복지에 대한 추구와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악과 죄악이 출현한다. 
 
세네카는 이 관념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모순, 
즉 불멸하는 영혼과 사멸하는 육체와의 대립으로 변형시켰다. 
인간은 오로지 신에 의지함으로써만 선에 이를 수 있고, 
관능적 욕망과 물질적 대상들을 정복할 수 있다. 
 
가난하다거나 노예 신분 같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 속의 내면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외적인 이로움을 바라지 않는다. 
세네카는 비록 노예와 주인의 정신적 본질이 같다고 주장은 했지만, 
그는 노예와 주인이 각기 상이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시했다.
그는 부를 결코 이로움으로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가 덕을 발달시키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은 사실상 기존의 질서와 일치하는 것이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자신의 철학대로 살지 않았다고 비난받았을 , 
세네카는 "철학자는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해서 논할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세네카는 기독교 윤리학에  영향을 주었다. 
그의 도덕에 관한 저술들은 다음과 같다. 
 {자비에 관하여}(De constantial sapientia, 5556), 
{축복받은 삶에 관하여}(De vita beata, 5859),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교훈 서한}(Epistulae Morales ad Luecilium, 6364).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  1 : 1 
행복해지고 싶다 - 
 말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처럼 분명히 정의되어 있지 않은 말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천명에  사람도 어디에서 행복이 오는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암중모색하듯 무작정 행복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둘러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갈수록 당초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를 알고, 
둘째 “어느 길을 가면 가장 빠른가?”를 살펴야 한다. 
 
바른길을 가면 우리는 하루하루 나아지지만 반대로 곁길로 접어들면, 
다시 말해서 바른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면, 
 미궁에 빠져 언제까지나 방황과 착오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유능한 길잡이를 갖는 일이다. 
 
특히  경우에는 실제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와 달라서 
따로 길이 있는 것도 아니며,
 길을 가기만 하면 안식처가 나타난다고 장담할수도 없다. 
보통 길이라면 설사 잘못 찾아들었다고 하더라도 
부근에 사는 사람이 바른길을 가르쳐줄 수도 있고, 
또한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고   있다.
그러나 행복에의 길은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이 밟고  발자취가 위태롭기 짝이 없으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바른길을 가르쳐주기는커녕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헤메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수들이 떼를 지어 가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보다는 이지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이끌어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패배의 연속으로,  사람이 쓰러지면 
다음 사람이  위에 넘어지고  다음 사람이  위에 쓰러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이게 된다. 
 
이와 같은 잘못은  “군중이 진리와 정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군중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행복한 생활은 결코 투표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확실히 그렇다. 
다수가 찬성한다는 것은 그릇된 의론이며, 
일반 사람들은 관습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맹신하기 쉬우며 
결코 좋고 나쁜 것을 검토해보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군중은 
반드시 찢어진 신발을 질질끄는 비속한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하는 말이다. 
나는 군중이라는 말을 눈에 보이는 외관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사물을 올바로 판단하는 마음을 기준으로 삼고 사용하고 있다.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 1 : 2. 
 
 
세속의 영달은 사람의 머리를 혼미하게 하여 한동안은 관심을 끌지만, 
누구나 조용히 마음속으로 자문해 보면 
반드시 다음과 같이 고백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만 골라했다”고 말하거나, 
“간구한 것보다 오히려 두려워 멀리한 편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고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번뇌를 벗어나 
신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깨닫는  있다. 
장래의 일은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길 일이다. 
 희망이나 걱정에 사로잡혀 기뻐하거나 두려워할  없이 
현재를 자기가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만족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참으로 위대한 축복은 우리 가운데,  눈이 닿는 범위 내에 있다.
그런데 인간은 눈을 감고 어둠속을 헤메다가 
보기 흉하게 넘어져 뒹굴고 있는 것이다. 
행복자체에 넘어져 뒹굴면서도 
그것이 자기가 열심히 찾고 있는 행복인  모르고 있다. 
 
“정밀은 마음의 평형된 상태로서 행운과 불운에 의해 흥분하거나 
의기소침해지는 일도 없다”면, 이러한 평형은 
인간 완성의 상태이므로 무엇으로도 깨뜨릴  없고 인간의 능력이 
최고의 정점에 도달하여 각자 자기 스스로   있게  상태다. 
자기 이외의 것으로 자기를 뒷바침하면 넘어지는 수가 있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지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판단에 의지하는 사람은 
완전한 평안을 즐길수 있고 삼라만상을 올바로 관망한다. 
그리고  행위에 질서와 절도가 있어 예의바르고 
 본성에 자애가 넘치며 이지에 의해 삶을 바르게 꾸려 나간다. 
또한 사랑과 찬탄을 한몸에 받는다. 
확고불변한 판단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뜬구름에 지나지 않으며
“한 가지 일에 시종일관하는 것은 역시 옳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환영과 두려움으로 미혹하는바를 극복했을 때에는 
반드시 가슴에 자유와 평안이 깃들기 마련이며, 
이때야말로  물거품 같은 향략에의 욕구
(최선의 방법으로 즐겨봤자 결국 공허하고 유해하다) 

대신에 영원한 평온과 즐거움을 만끽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