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권위는 아이를 위한 울타리와 성벽이 되어
아이가 안정감을 가지고 자라게 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권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방치라고 할 수도 있다.
필자는 해외 이민자로 살며 많은 문화적,관습적인
충돌 속에서 많은 시행 착오와 실수를 하면서 이이들을 키운다.
현지인 교회의 현제 자매중에 좋은 사람은 전부이나,
능력있는 부모로는 합격이 안되는 분들을 많이 본다.
자녀를 키우고 돌보는 일은 자동차 운전과 흡사하다는 생각인데,
차가 다니는 도로는 다양하고 늘 위험과 사고가 있다.
자녀가 안전 운행을 하기를 원한다면
같은 차에 동행하며 자녀가 교통 신호 준수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대로 방치하며 사고를 일으키게 할 것인가?..묻고 싶다.
자녀들이 해야만 할 것과 하면 안되는 기준이 명백해야 한다.
아주 오래 전에 필자가 다니던 교회의 주일 예배 시간이다.
우리 큰아이 또래의 아이가 예배 중에 항상 개차반이다.
부모는 아주 관대하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물론 부모에게 말을 하나 마이동풍으로 웃고 만다.
결국,참다 못해서 조용한 곳에서 이 아이를 타이르는데,
이 녀석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내 부모도 아닌 사람이 참견하지 말라고 대답을 한다...
이렇게 키우면 교통이 번잡한 거리에서 빨강 불을 지나는 것과
같다는 필자의 생각이고 ,이 부모는 자녀에 관한 한에는
주님이 가르키신 좋은 청지기가 자녀에겐 될 수가 없다.
20년이 흐른 오늘의 이 아이 현 주소는 누구도 잘 안다.
어린 자녀들은 그들은 지켜주고 이끌어 주는
부모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울타리가 있을 때에는 울타리를 타넘고 나가려던 아이들도
울타리가 없는 운동장에서 놀게 했을 때는
운동장 가운데로 모여서 노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울타리가 없음으로 인해 안정감을 잃기 때문이다.
행동의 지침을 가지고 이끌어주는 부모의 권위는
아이들에게 있어 운동장의 울타리와 같아서
정서적인 안정감 가운데 자랄 수 있게 해 준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권위를 지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를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부모가 권위를 잃는다면,아무리 목사이거나 장노라도
자녀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중요한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자녀를 올바른 삶으로 이끌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자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태도는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 같은 부모”라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허상일 뿐이다. 부모는 어른이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안정감을 가지고 자랄 수 있다.
친구는 좋을 때도 있고 싸우기도 하는 관계이지만
부모는 아이와 동급으로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면서 이끌어주고
필요할 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친구 같은 부모라는 말을 듣기 위해
아이에게 “안 된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인생의 리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버려야 할 것은 권위주의적인 태도이지 권위가 아니다.
부모의 권위는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쉴새없는 잔소리하는 부모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시니,
주 안에서 사랑하라는 청지기 부모가 되라는 권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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