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가 상실되고 권력이 횡행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흔히 권력과 권위를 혼동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권력이 강제를, 권위가 동의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이를 엄격히 구별이 되어 진다.
권위 없는 권력이란
한낱 물리적 강제를 앞세우는 천박한 폭력에 불과하다.
권력(權力, 독일어: Macht , 영어: power )이란
일반에 있는 주체가 상대방에게 원치 않는 행동을 강제하는 능력이다.
여기서는 정치 이론에 있어서의 권력에 대해 개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상대를 자발적으로 복종시키는 공식적 형태의 능력인 권위(authority),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는 비공식적 형태의 능력인 영향력(influence ),
상대에게 혐오적 자극을 주는 능력인 폭력(violence )에 대해서는
각각의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위키 백과
권위(權威, authority)는 제도, 이념, 인격, 지위 등이 그 가치의 우위성을 공인시키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을 뜻한다.
어느 개인이나 조직(또는 제도)과 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이 영향력을 권위라고 부른다.
권위는 그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에 따라 도덕적 권위,
또는 정치적, 과학적 권위 등으로 나뉜다.
권위는 임의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고,
역사상 각 시대의 차이에 따라서 특유한 귄위가 성립하고 교체되기도 한다.
연로하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은
공동체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 이다.
이런 미덕들이 존중되고 지켜질 때에
비로소 제대로 된 건전힌 시민사회가 자리잡을 수 있다.
버스나 전철에서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다.
양보와 배려와 존중, 감사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이지
지배-복종의 권력행위로 잘못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노인이나 젊은이나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가진 사회구성원이고
자리에 앉을 권리는 동등하게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자리양보가 노인들의 권력에 복종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보하는 이의 인격과 교양에 관한 일일 뿐이다.
양보를 안 한다고 해서 노인들이 마땅한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가끔 전철 안에서 핏대를 세우며
“요즘 젊은 것들은 위아래가 없다”고 언성을 높이는 노인들은
사실 양보하지 않는 ‘젊은 것’들의 몰상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도의적으로 상대의 양보를 전제로 편의제공을 부탁하는 처지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를 불문하고 공손히 예의를 지켜야 한다.
또 순서를 기다리는 줄을 섰는데 노인이라고
맘대로 새치기해도 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일 주일 전에 집 근처의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고기 노점상에
강아지 줄 허드레 고기를 사러 가서 번호표를 뜯고 기다리는데
꼬질 꼬질한 옷차람의 한인이 와서 나를 힐끗처다 보고는
나와 떨어진 쪽에 가서는 새치기를 해서 고기를 사고 있다.
필자가 고깃간 놈에게 항의와 함께 한인에게 내가 먼저라고 말을 하니
금방 잡아 먹을 듯한 표정으로 막된 말을 뱉다가
나에게 현지어와 한국어로 심하게 당하고 조용해 진다..
필자가 나이를 먹었다고 폭력이나 폭언을 당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권위는 나 아닌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권력은 스스로 내세우는 것이다.
권위는 합의를 전제하지만 권력은 강제를 전제로 한다.
매를 앞세우는 선생, 나이를 앞세우는 노인, 돈을 앞세우는 부자,
공권력을 앞세우는 권력, 해외에서 외국인 앞에서 새치기하는 짓,
이들에게서 우리는 공경할 만한 권위나 정당성을 찾을 수가 없다.
사실 필자가 사는 나라의 뻐스엔 ‘노약자 보호석’이 있으나
인접국 이민자들은 무지해서 이런 걸 모른다.
현지엔 치안 부재로 통근,통학 열차에선 여성 성추행범도 있어
‘여성전용칸’을 별도로 운영해야 하는 특별 열차가 생긴다.
이러한 사회 공중 질서는 충분히 비극적인 현상이다.
오죽하면 이런 여성 전용칸을 만들어야만 했겠는가.
그러고 법을 제정하고 경찰을 배치한다는 소문이다.
이런 물리적 강제나 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옳지 않다.
힘의 논리, 타율의 논리야말로 바로 시민사회의 적들이 아닌가.
정치인들이 부패하고 경찰이 부정하니 ㅛㅣ정잡배가 날치는 것이다.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
그런 배려와 친절에 고마움과 친절로 화답하는 서로 믿는 사회,
그런 미덕과 가치들이 서로 존중하며 쌍방향으로 오고가는 사회야말로
진정 건강한 시민사회의 출발이라는 기대를 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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