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기에 더 바라고 더 갖기를 원하는
욕망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 합니다.
갖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릅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까지 살아오며 소유한 것이 자신의 노력이거나
혹은 가족의 일원이 이룬 것이 있는데,
더 가지지 못하거나 얻지를 못하면
자신의 욕심을,정당화를 이루지 못하면
원망과 미움을 가정에서 터트림니다..
실패자의 버릇이기도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후에 일을 미리 생각하고 느끼므로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하고
변함없는 마음 자세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개발에 편자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
개똥은 비단 보자기에 싸도 개똥이라는 말은요?” “······.”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는요?” “······.”
“개발에 버선은요?
비교적 알맞지 않고 지나친 치장을 한 모습을 가지고
“개발의 버선”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즉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발에다가 버선이라는 것을 신고 다녔을 뿐이며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보통 맨발로 다니거나
추울 때에는 발에다가 헝겊 쪼가리를 둘둘 감는
감발이라는 것을 하고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 시대에는 버선이라는 것이
매우 고급스러운 것으로 신분이 높거나 부자들이 신었던 것인데
그 버선을 개발에다가 신겨주면
격(格)에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버선이 기능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모든 제도(制度)나 관습(慣習)이나
법도(法度=法律)나 신분(身分) 등도
각 사람의 자질이나 품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개발의 버선”과 같이 무용지물이 될 뿐만 아니라
꼴불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양들을 키우는 목장에는 양 을 모는 개가 있지만
소를 키우는 목장에는 양 모는 개가 없는 것은
양과 소는 근본적으로 다른 개성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와 마찬 가지로 사람은 버선을 신어야 하지만
개는 버선을 신어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맞는
각종 제도와 관습과 사상과 문화가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여서
성경의 가르킴을 하나라도,가장 적은 것이라도 실천을 해야하는데
매일 성경책은 옆구리에 끼고 예수 치장한 경건한 모습은
“개발의 버선”이 되어 오히려 악을 행하게 되거나 꼴불견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판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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