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께냐(안데스 플룻) 스와니 강
그래서 오늘 한자리를 차지했는가 하면,
내일은 벌써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즉 우리는 생활을 현재에 대한 혐오와 미래에 대한 욕구로 분열시켜버리지만,
절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오늘을 혐오하지 않고
내일의 욕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오게 마련인 것은 기꺼이 맞이하라.
그러나 오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볼것은 하나도 없다.
내일이 없어졌다고 해서 원망할 필요는 없다.
미래로 부터 오는 것은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것은 결국 하나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경박한 호기심이 마음의 안정에 해가 되는것 처럼 끈질긴 집착도 매우 해롭다.
전자는 아무것도 성사시킬 힘이 없고,
후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사로잡히게 한다.
양자가 다 언짢기는 오십보 백보다.
집착은 매우 괴상한 것으로, 이것이 간절히 열망하는 것도
상대방이 막상 취하라고 제의해오면 정떨어져서 거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터무니 없이 욕심을 내는 것을 벌하기 위해서는 역시
처음부터 그것을 관대히 제공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은 우리가 원하여 손에 넣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하지만,
실은 원할 만한 것이 되기는 커녕
정반대로 그 실체가 두려워해 할 것일 경우도 있다.
지루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동안에 흔히
"듣기가 지루하실테지만...”하고 말하면
"괜찮아요. 이야기를 더 계속해주세요”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태도는 대인 관계에만 그치지 않고 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 우리는 모름지기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일이다.
"이것은 완전히 자업자득이었다. 나는 이 미인과 이 땅과 이 저택,
이 명예를 손에 넣기까지는 마음이 초조하여 전혀 안정되지 않았지만,
막상 손에 놓고 보니 그 결과는 시들하기 짝이 없다."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9장 7.
모든 고난을 멸하는 가장 좋은 약은 정신의 항구성이다.
당파를 옮기거나 태도를 바꾸는 등 지조가 없음을 드러내는 참상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과 같다.
운명에 초연하기 위해서는 정신의 항구성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폭군도, 역습도, 멸시도, 그 밖의 무엇이건 외부의 것으로는
결코 현자의 마음을 굽히게 할 수는 없다.
현자는 재앙을 능히 감당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어떤 참화도 현자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현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들은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은 다른사람도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고,
현자도 자신들의 약한 척도로 측정하려 고 한다.
현자는 왕후와 함께 있건, 거지와 자리를 함께하건
언제나 한결같은 심정을 갖고 있다.
황후들과 어울렸다고 해서 조금도 흡족하지 않고,
거지와 함께 잤다고 해서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나는 오두막에 살거나, 궁궐에서 살거나 마찬가지다.
짚단 하나만 있으면 솜이불을 덮고 자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날마다 영광을 차지하며 모든 일이 뜻대로 되드라도 나는 별로 기뻐하지 않고,
반대로 한평생 한시도 평안할 틈이 없더라도
자기를 불우한 자라고 해서 울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고통과 쾌락에 의해 좌우되는 일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양자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라면 마음 편한 쪽이 낫다.
역시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 쾌락을 절제하는 편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내가 한 나라의 임금이라면,
물론 다른 나라에서 멸망을 당하기보다는 멸망시키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설사 멸망되어 어제는 자기 소유이던 수레에 치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심경은 언제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속인들이 탐내거나 또는 두려워하는 것을
현자가 경시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세상에는 기꺼이 교수대에 오르거나 사지에 이르는 자도 있으며,
그 밖에 사랑에 빠지거나 격분하여 또는 정욕이나 복수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던지는 자가 얼마든지 있다.
하물며 덕의 본분--
언제나 한결같고 견실한 이 본분을 기초로 하고 있을 경우에 있어서야!
만일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분했을 때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행동을 취할수 있다면, 무한한 덕성이 깊이 생각한 끝에 움직일 경우에는
얼마나 큰 힘이 발휘되겠는가!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9장 8.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다져나가려면, 우선
세상 사람들이 애써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을 소유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도둑들이 훔치려고 노리는 것을 소유해서도 안된다.
인간의 몸뚱이는 약탈품이 아니다.
아무리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길이라도 가난한 자와 헐벗은 자는
무사히 지나갈수 있다.
솔직담백하게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의 생활을 행복하게 한다.
설사 그는 조소와 경멸을 받고 있더라도 이것은 진실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따르는 일로서 행복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기만의 괴로움 속에서 살기보다는 오히려
간소한 대로의 처지에서 만족을 느낄 일이다.
여기서 "간소한 대로” 라고 한 말은 게으른 생활을 용납한다는 뜻이 아니다.
불안한 생활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기만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가 훌륭하지 않으면서 훌륭한 듯이 보이기 위해
자기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을까 하여 경계하며,
남들에게 정체가 드러날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을
무슨 염탐이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언제나 딴사람으로 둔갑하려고 신경을 쓸 것이다.
인간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나 공무에 온 힘으로 종사함이
도덕적으로 좋은 약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 이런 공적인 생애에서는 야심과 모함사이에 끼여들게 되므로
정직하게 행동하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현자가 세상에서 은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현자는 평안히 도피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현자는 세상에 나설 경우에는 그 영예를 염두에 두는 것 못지 않게
물러설 경우에는 언제나 적을 향해 손에 검을 들고 있는 시늉을 해야 한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생활태도가 있겠지만,
학구적인 생활은 사람을 권태롭게 하지 않으며,
학구심이 자타에 대해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우리에게 지기와 명예를 동시에 얻게 한다.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10장 1.
우연히 운이 좋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하리라고는 생각지 마라.
그리고 이지적인 인간의 선을 우연한 일로 돌리는 것처럼 몰지각한 일은 없다.
우리가 어떤 손실을 보았다면. 그것은 우연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예 재물이 없으면 우환이 없고,
은총이 없으면 선망이나 질투를 받지 않으며,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곤경에 빠졌을 경우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그 손실 자체가 아니라 그 손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다.
인간의 오류는 여분의 것을 필수품이라고 생각하고,
행복한 생활을 운명의 여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즉 행복은 덕성에서만 비롯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고 해서 결단코 신뢰해서는 안된다.
바다를 보라.
오늘 아침 많은 배가 떠 있던 바로 그 장소에 갑자기 질풍노도가 일어
배들을 모조리 삼켜버리지 않았는가.
운명의 여신은 여러 왕국에 떨치던 힘을 여러 왕자들에게 떨치고,
그 개인에게 떨치던 힘을 여러 도시에 떨치고 있는 것이다.
보라, 아무리 큰 부자라도 곧 그 배후에 기근과 영락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먼지와 흙이 묻지 않은 영예가 있는가?
붕괴와 폐허를 모면한 대제국이 있는가?
모든 일에 종말이 다가오며, 행운은 곧 불운으로 끝나고,
불운도 행운으로 마치는 것이다.
운명은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당하더라고 절망하지 마라.
신의 뜻에 의해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횡재가 아닌가.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10장 2.
미래가 시시각각 현재로 되어갈 때 우리는
그때그때 기만당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지만,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은 분명히 우리를 속이고 있지 않다.
즉 우리가 ,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테면 일어나라는 배포로 대기하고 있을 경우에,
일어나지 않는 재앙도 있을 터이니 그것은 그만큼 덕을 본을 본 셈이다.
즉 우리가 그때그때 일어날 불상사에 대비할 마음의 준비만 갖추고 있으면,
운명의 여신은 변덕스럽다고 원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때그때 일어날 불상사라고 말하면 대단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신변의 변화는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다만 어떤 변화는 폭발적인 데 비해 평상시의 변화는
예컨대 해시계의 받침대 위에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그 움직임의 변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리온의 큰 화재는 우리에게 안전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갑자기 일어나는 모든 불상사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리온의 재화는 실로 고금을 통틀어 찾아볼 수 없는 큰 불상사로,
그 참상은 매우 엄청난 것이었다.
이것이 만일 적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있다면 적군의 손에 의해
잿더미가 되기 전에 건질 만한 것은 다소 남아 있겠지만,
완전히 잿더미로 덮인 허허벌판이 되어버렸으니
과거의 허다한 대지진을 돌이켜보드라도 이처럼 참혹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막대한 보물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고 평화를 즐기던 그 도시에서
전화의 백 배나 되는 큰 참사가 돌발했다는 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열두 시간 내에 그처럼 장엄하고 화려했던 큰 도시가
불길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단시간에 완전히 쓸어버렸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참화속에서 태연자약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며,
비애보다도 놀라움이 앞설 정도다.
이런 참사도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다.
운명의 여신의 권한으로 움직이는 모든 가능성에 미리 대비 할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운명의 여신이 모든 외부적인 사물을 지배하고 있다.
이 여신은 때로는 우리 인간의 손을 비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혼자의 손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짓궂은 장난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 큰 비극이 닥쳐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고,
이 여신의 짓궂은 장난 앞에 우리의 모든 환락이 갑자기 고통으로 돌변하며,
한창 평화를 즐기는 때에 갑자기 선전포고를 하여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친구를 적으로 삼기도 하며,
자기편을 원수로 따돌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짓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적이 없이도
패전 이상의 참화를 당하며, 실패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행복이 파멸되어 버리기도 한다.
'♠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 빛 보다 더 밝은 천국 (0) | 2018.08.21 |
---|---|
♡돈에 대한 탈무드 격언 (0) | 2018.08.21 |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0) | 2018.08.20 |
유머레스크 (0) | 2018.08.15 |
축배의 노래 (0) | 2018.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