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검토해보았을
때
특정
공동체로부터
불공정한
대접을
받은
것이라면
그
공동체의
판단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망상에
사로잡혀
2 더하기
2는
5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한다
한들
흔들릴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거대한
로마
제국이라는
불안정한
세계에서
살아가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의
3賢이신
신성
로마
제국을
기독교화
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그의
<명상록>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품이나
업적에
대하여
하는
말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며,
먼저
이성으로
그런
말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사람의
품위와
인격은]
다른
사람의
증언에
좌우되지
않는다."
현인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그런
주장으로
명예와
가문에
기초하여
사람을
평가하던
당시
사회의
통념에
도전한다.
"칭찬을
받고
감투를
가지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나
다이어몬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진다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
마르쿠스는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는가?
경멸하라고
해라.
나는
경멸을
받을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책이
무조건
근거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가치
평가를
지적인
이성과
양심에
맡기는
것은
무조건적
사랑을
또는
epitumia(Génesis 1:28Génesis 2:24-25Efesios 5:23참조)를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어떤
결점이
있든
우리를
높이
평가하는
부모나
연인과는
달리
철학자들는
사랑에
계속
기준을
적용한다.
다만
세상이
흔히
적용하는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기준이
아닐
뿐이다.
지적인
양심이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더
가혹해질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철학은
성공과
실패의
위계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
과정을
재구성할
뿐이다.
따라서
철학은
주류의
가치
체계에서는
어떤
사람이
부당하게
모욕을
당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부당하게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이런
불의가
벌어질
경우,
우리는
철학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라는
후광
없이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고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