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여년 전 데낄라 IMF 파동시절에
힘들게 적자 상점 경영을 하며,저렴한 장거리 뻐스로
680킬로를 여행해서 상품 구입을 합니다.
좋은 상품을 많이 사고 남은 돈은 용달비와 차표입니다.
츨발시간이 5시간이 남아서 그동안 짐을 그냥 맡길 곳을
교민 상점에서 찾는데,첫집은 술집입니다.
머리가 하얀 친구가 아주 험상궂게 거절을 합니다.
두번째는 필자가 세례와 혼인을 한
예전에 다니던 교회 교인의 상점인데,물론 모르는 분입니다.
이 부인에게 부탁을 하니 마찬가지로 얼굴을 찌그림니다.
믿는 자와 술집하는 자와의 차이를 혼동하는 순간입니다.
주님 예수를 따르는 믿음의 첫걸음이 친절이라는 단어인데,
정말 어려운 슨간을 당하니,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매몰스런 세상 인심을 배우는 순간입니다..
떼 묻은 작업복 차림의 나를 차별하는 분들 입니다..
친절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친절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랑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지칭된 것은
그에게 친절한 마음과 살리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는
더욱 더 친절하고 정직하고 가능성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헨리 나웬(Henri Nouwen)은 아브라함을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익히 알던 아브라함을 친절의 사람으로 말한 것은
신앙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체화한 표현이다.
아브라함을 친절한 영성으로 이끈 이야기는
상수리나무 옆에서 낯선 세 나그네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아브라함은 찾아온 나그네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음식을 대접한다.
이 친절은 믿음과 구원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나그네 속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허락하시고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된다는 계획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의인 50명이 있으면 소돔땅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그러나 의인 10명까지 내려갔으나
찾지 못하고 결국 소돔과 고모라성은 심판을 받는다.
이야기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구원과 그 구원을 이어가는
아브라함의 정신을 보여준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솔직하였다. 정직한 마음이다.
“하나님, 50명을 찾다보니 없습니다 ... 10명이면 안될까요?”
솔직하였기에 여러 번 간청할 수가 있었다.
또 아브라함 마음속에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님, 이 도시에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멸망하지 않지요,
가능하지요?” 가능성은 아브라함에게 용기를 주고
의인 10명까지 찾게 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제한된 인간성을 엿본다.
왜 아브라함은 5명의 의인이면 안 되는가를
간청하지 안않나가 궁굼하다.
문제는 우리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가능성을 중단한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우리들의 사회와 교회를 바라본다.
살리는 이야기보다는 죽이는 이야기가 난무하다.
서로 살기위해 모함하고 헐뜯고 공격하고
없는 말 있는 말 퍼트려 죽이는 사회이다.
시시비비와 반목으로 분열되었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면역정신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살아 남기위해
정직하지 못하고 가능성의 믿음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
미래와 희망보다는 과거청산을 한다고 뒤만 돌아보고 있다.
이럴 때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정신이 요청된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지칭된 것은
그에게 친절한 마음과 살리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는 더욱 더 친절하고 정직하고 가능성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아브라함의 정신은 영성과 구원의 이야기이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맥아담스(Dan McAdams)교수는
“인간은 모두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꾼들이다” 라고 표현한다.
친절과 정직 그리고 가능성의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만들 때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어질 것이다.
출처와 참조/임영택 교수(협성대학교)
또 다른 이야기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삭개오의 고독함을 보시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시는 수고를 감당해주셨습니다.
그 수고가 삭개오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친절은 내 삶에 의무를 다하는 것
그 이상의 의지적 행동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 6:10)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친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저에게 찾아오실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저는 우리에게 자격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행동의 잘못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고통과 고독과 눈물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세요.
정의의 잣대로 보면 저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친절을 저에게 베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제 안에 들어오시옵소서.”
우리가 받은 친절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예상할 수 없는 친절을 베풀게 되고,
그럴 때 또 누군가는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의지와 수고의 친절이
삭개오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듯,
우리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정의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친절한 수고를 감당할 때 또 다른 사랑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우리 자녀들과 부모님을 바라보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들의 모습만 보지 말고,
잔소리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우리 부모님은 왜 이럴까?' 하지 말고,
자녀들의 마음, 부모님의 가슴속에 있는 아픔과 고독을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안에 친절한 하나님의 사랑이 일어나길 기대하십시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이 보이기 시작합니까?
그렇다면 서로 안고 기도해주세요.
그것이 사랑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한 죄를 회개합시다.
사랑이 먼저다 김병삼 | 규장
† 말씀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 로마서 9장 17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1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장 34절
† 기도
주님, 가장 친한 가족에게 친절을 베풀기가 더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저희들의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이 저희 안에 오셔서
행함으로 그 사랑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소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친절함에는 사랑의 의지와 수고가 필요합니다.
내 감정대로 자녀와 부모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수고를
능히 감당할 것을 결단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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