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그리스도인은 언어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비타민님 2013. 6. 24. 11:21

 

- <행복한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Vitamin-Argentina 진실을 찾고 지혜을 구하십시오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사람들과 보다 깊은 관계를 찾으세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무슨 언어를 구사하든지 복음적·신앙적이어야 합니다

뽐내며 거만함으로  세상 사람을 대하면 안됨니다.

친절은 사랑으로 가는 첫걸음 입니다.

한국 속담에 같은 말이라도 '' 다르고 '' 다르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이야기다.

 

옛날에 어떤 산골에 꿩 부부가 살았는데

그해 겨울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까투리가 앞산에 사는 쥐를 찾아갔다.

까투리는 쥐구멍 앞에서 쥐를 불렀다.

 

"여보게, 고양이밥 쥐 서방 있나?"

 

쥐는 고양이밥이라고 부른데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나왔다.

 

"왜 찾소?"

 

"우리 집 꺽 생원이 콩 좀 얻어 오래서 왔지."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남 줄 게 어디 있소?"

 

쥐는 콧방귀를 뀌고 들어가 버렸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인 것이다.

까투리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장끼가 다시 쥐를 찾아갔다.

장끼가 쥐구멍 앞에서 부드럽게 말했다.

 

"쥐 생원님 계시우?" 하고 부르자

쥐가 화가 덜 풀린 얼굴로 나와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 꺽 생원 왔나?

아까 임자네 여편네가 와서 말을 왜 고따우로 하는가?

내가 고양이밥이면 저는 매밥이 아닌가?"

 

장끼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싹싹 빌며 말했다.

 

", 오줌똥을 한데로 누는 계집의 말에 뭘 그리 분해하시우?

용서하시구려."

 

그러자 쥐는 기분이 풀어져서

장끼에게 콩 다섯 알을 주었다고 한다.

 

이상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갈 때도

언어에 있어서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의 언어란 분별력이 있어야 하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언어를 구사하든지

복음적이어야 하고 신앙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언어로서 합당하지 않은 언어들이 있다.

이런 언어들은 사용하는 분을 많이 보았다.

목회자나 그리스도인들이 잘 모르고 사용하는

언어 몇 가지를 예로 보자.

 

"계사년(癸巳年)에 성도 여러분 가정에 평안을 빕니다."

 

'계사년(癸巳年)'이란 십간십이지에서 나온 말이다.

세속적인 상용어이지 그리스도인의 사용어가 아닌 것이다.

주후 2013년이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주후 2013년에 성도 여러분 가정에 평안을 빕니다"라고

인사하여야 신앙적 관점에서 옳은 것이다.

 

"예수님은 처세술이 많은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셨지만

인간의 처세술로 사신 분이 아니시고

하늘나라 지혜로 사신 분이시다.

하늘나라의 지혜는 영혼을 구원하는 지혜요 생명을 살리는 지혜이며

독생자의 본분을 보여주며 가르치는 지혜인 것이다.

세속적인 언어를 강단에서 설교 중에 사용하면 안 될 일이다.

예수님은 하늘 지혜로 사셨고,

신도는 믿음과 소망 중에 사랑과 말씀의 지혜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인연입니다."

 

'인연(因緣)'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이 언어의 배경은 자연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잡신이나 우상의 조화에 의하여

만났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만남은 '인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해야 한다.

'섭리(攝理)'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의) 원리와 법칙'을 말한다.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성도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작용한다는 것이

신앙적 고백인 것이다.

 

 

말을 바꾸어서

사기(史記) .안열전(管·晏列傳) 소개해드린다.

 

 

의기양양하다.라는 뜻은 아주 자랑스럽게 행동하는 모양 인데

 

비슷한 말은 양양득의(洋洋得意),

반대말은 의기소침(意氣銷沈)이다.

 

춘추(春秋)시대의 일인데,

()나라의 국상인 안자(晏子)가 수레를 타고 외출했을 때였다.

안자 수레를 끄는 마부의 아내는 문틈으로 남편의 행동을 엿보았다.

남편은 재상의 마 부로서 수레 위에 씌운 큰 차양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네마리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수레 를 몰았다.

마부의 아내는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느닷없이 헤어지자고 했다.

이유는 『국상께서는 육척도 안되는 몸이지만

그분이 외출하는 모습을 보니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겸허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건만

겨우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도 아주 의기양양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첩이 헤어지자고 하는 까닭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요즘 교계에서 아주 자주 일어난다.

교회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정작 기품을 높이고 명성이 높아지셔야 하는 예수님은 낮고

천한 땅까지 오셔서 철저히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다.

예수님의 겸손을 어찌 제나라 재상 안자인들 따를 수 있으랴?

 

그런데 한갓 막대기에 불과한,

마부에 불과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높이 올라서도 더 높이 오르는 길이 없나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예수님을 이용하여 한 건 하려는 사람들,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나 권세를 채우려는 사람들,

꿈이며 비전이라는 타이틀을 앞에 내걸고

예수님을 맘대로 이용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관·안열전'에서는 마부가 아내의 말을 듣고 심히 깨달은 바가 커

자신을 낮추는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마부의 겸손한 모습을 본 안자는

그를 추천하여 대부로 삼았다고 한다.

되지도 못하고서 된 척하는 이들은

이 이야기를 마음 열고 받아들여야 하리라.

성경은 이렇게 적는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전적으로 그분 때문이다.

재상 안자가 없으면 재상의 마부도 없듯,

예수님이 안 계시면 그리스도인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예수님을 태우고 다니는

마부와 같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원받았음은 분명 특권이다.

그러나 유세를 부리라고 준 것이 아니라,

구원을 감사하고 겸손히 이웃을 섬기라고 준 특권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존감을 갖되 거들먹거리면 안 된다.

신도 된 사명감에 충만하되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겸손히 마부 노릇만 하자.

 

예수님 닮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설익은 목사나 성도는

'키만크니'라는 아이디의 소유자랍니다.

새찬송가 569장 - 선한목자되신우리주 [다니엘 새찬송가 전집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