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본받아Kempis外 믿음

거의 다된 그리스도인(행26:28)(삶)

비타민님 2013. 10. 1. 23:25
VITAMIN
가정 생활과 결혼 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인내다.

-체호프-  조카의 결혼을 보고 필자가 다니던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글을 생각해 보는 글

목사님이 남기신 3가지가 있다고 담임 묵사이신 페르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평생 골고루 닳도록 곱게 입으신 양복 한벌,

또 단 한벌의 포크와 수저 그리고 성령 운동을 일으킨 감리교.

거의 다된 그리스도인(26:28)()

                        죤 웨슬리(1703~1791)

 

 

『당신이 그렇게 쉽게 나를 설복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오? (26:28).

 

이 정도까지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세상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로 어느 시대 어느 국민 가운데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거의 설복된 사람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 밖에"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1.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온전한 그리스도인(Altogether a christian)이란 무엇인가?





() 1. 첫째로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

그것은 먼저 이교도의 정직이 의미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치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특히 여기서의 이교도의 정직이라는 것을 단지 철학자들의 책에서만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반 이교도들이 서로 기대하고 많은 이들이 실제로 행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즉 강도행위 혹은 절도에 의해 이웃의 소유물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것,

가난한 이들을 학대하거나 또는 누구에게든지 강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가난한 사람들이건 부한 사람들이건 간에

그들의 어떤 거래에 있어 서로 속인다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구의 인권도 사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가능하다면 아무에게도 아무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이런 법칙들에 의해서 그들은 가르침 받았습니다.

2. 또 정의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진실에 대해서도

어떤 존경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반 이교도들은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거짓 맹세하는 자,

즉 거짓에 대해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자만이 아니오

또한 이웃에 대한 중상자로 알려진 자,

즉 누군가를 그릇되게 비난하는 자를 이교도들은 혐오했습니다.

실상 그들은 어떤 종류이든 간에 고의적으로 거짓말하는 인간들을 똑같이 경멸했습니다.

그런 자들을 인류의 치욕, 사회의 흑사병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3. 그밖에 더욱이 그들이 서로 기대한

어떤 종류의 사랑과 도움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가 자신에게 손해 되는 일없이 다른 이에게 어떤 것이든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그들은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비용이나 노력 없이 수행되는 조그만 자선봉사 만이 아니오,

음식물에 여유가 있을 때에는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여분의 옷으로 벗은 사람들을 입히며,

그것도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기들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일에까지 확대시켰습니다.

그것을 가장 낮게 평가해도 그 정도까지 이교도들의 정직이 행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의 첫 번째 사실입니다.

() 4.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의 두 번째 사실은

경건의 한 외양을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취득된 그 경건의 외관,

참된 그리스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은 복음이 금하는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축복은 하지만 저주는 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연 맹세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 ""라 하고 "아니" "아니"라 합니다.

그는 주일을 더럽히지 않으며 자기 집에 있는 손님이라도 주일 범함을 허용치 않습니다.

그는 실제의 간통, 간음, 불결을 모두 피할 뿐만 아니라

직접 간접으로 그리로 향하는 모든 말이나 모습을 모두 피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욕설, 중상, 고자질, 험담 그리고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 5:4) - 희롱의 말(유트라펠리아)은 이교도덕가의 평가로는 어떤 종류의 미덕이다 - 을 피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덕을 세우는 데 유익"( 4:29)하지 않은,

결국 "구속의 날까지 우리가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4:29)

모든 무익한 말들을 피하는 것입니다.


5. 그는 "술 취하는"( 5:18) ,

즉 술 마시고 흥청댄다거나 폭음, 폭식하는 일을 피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게 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편,

그는 거짓말만큼이나 모든 다툼과 싸움을 피합니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복수하지 않으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는 이웃의 허물이나 약점을 욕하거나, 크게 떠들어대거나, 비웃거나 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고의로는 잘못하지 않고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말에 있어서 명백한 규칙을 따라 행하고 말합니다.-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바라지 않는 바를 너도 남에게 행하지 말아라"


6. 그리고 선을 행함에 있어서

그는 값싸고 쉬운 호의를 베푸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합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몇 사람이라도 돕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고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친구를 위한 일이거나 원수를 위한 일이거나

또는 악인을 위함이거나 선인을 위함이거나

"무릇 그의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하는"( 9:10) 것입니다.

이 일이나 그 밖의 어떤 ""에도 게으르지 않고( 12:11)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 6:10),

모든 종류의 선을 그는 행합니다. 그들의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선을 행합니다.

그는 악한 자를 질책하고 무지한 자를 가르치며 흔들리는 자를 굳게 하고

선한 이들에게 활기를 주며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로합니다.

그는 잠자고 있는 자들을 깨우기 위해 수고하며,

이미 하나님께서 깨워주신 사람들을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 3:1)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거기서 씻고 깨끗하게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을 분기시켜서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빛나게 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7. 이러한 경건의 외양을 가진 사람은 또한 은혜의 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수단을 사용하며, 모든 기회에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 빈번히 출입합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앞에서 금과 비싼 의상으로 치장하거나

혹은 으리으리한 허영에 찬 복장을 입고 나와서 피차간에 그 자리에 맞지 않는

형식적인 정중함 혹은 행동의 뻔뻔스런 쾌활성에 의해

경건의 능력은 물론 외관을 갖추라는 요구들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태도와는 다릅니다.

이 비난에 해당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면 좋으련만,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혹은 매우 냉담한 무관심의 표시를 모두 보이며

이 집에 들어옵니다.

때로 이제 그들이 착수하려는 일을 위해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장엄한 예배시간에 잠을 자거나 혹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기대고 있습니다.

혹은 마치 하나님이 주무신다고 생각한 양

서로 지껄이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전연 할 일이 없어 보입니다.

또 이와 같은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 밖에 지닌 것 없는 사람들 축에 끼는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비난받을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입니다. 당치 않습니다.



경건의 형식만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는

저 장중한 예배의 어느 부분에서도 진지함과 주의를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의 성찬식에 나아갈 때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경솔하거나 조심성 없는 자세가 아니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18:13)하는 말 밖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 같은 모양과 태도와 처신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8. 거기에다 가장(家長)된 이들에 의한 끊임없는 가정기도회의 이행과

일상 행동의 진지성과 더불어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대화를 위해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두는 일 등을 첨가한다면,

이런 외면적인 종교를 한결같이 실행하는 자는

경건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기 위해서는 단지 또 한 가지를 필요로 할 뿐 입니다.

그것은 성실(sincerity)입니다.

() 9. 성실, 즉 이 외면적 행동들이 샘솟는

실제적인 내적 종교의 원리를 나는 의미합니다.

그리고 실상 우리가 그것을 못 가졌다면 우리는 이교도의 정직을 못 가지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교도인 향락주의 시인의 요구에 대답할 만큼도 그것을 못 가진 것입니다.

그 가엾은 인간조차도 진지했을 때는 다음과 같이 표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교도의 향락주의 시인이란 호레이스를 가리킨 것이며

다음의 라틴시는 Ep,.ⅹⅵ. 52-53 에서의 인용이다.)


선인은 덕을 사랑함으로

범죄를 피하며,

악인은 형벌의 두려움으로 인해

악을 피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형벌을 피하려는 생각만으로 악행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까마귀에게 모이를 주려고 십자가에 달리지 않으리라"고 한 이교도의 말과 같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습니다."( 6:2) 이 시인조차도

그러한 무해한 인간을 "선량한 이교도"라는 정도로도 평가하는 것을 허락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어떤 이가 같은 동기에서, 즉 형벌을 피하고,

친구들이나 이익이나 평판을 잃을 것을 피하기 위하여, 악을 행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매우 많은 선을 행하며 더구나 은총의 수단을 다 사용한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 사람이 실로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도 적당치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 마음속에 더 나은 원리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는 전연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10. 그러므로 성실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 되는 일 가운데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진정한 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으로부터의 소원입니다.

그 속에는 인간이 모든 일에서, 즉 모든 회화, 모든 행동, 그가 했거나 또는 하지 않고

남겨 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순수한 목적을 지니는 일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의도가 그 사람의 생활 전 항로를 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선을 행하는 일에도 악을 금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성례전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그것이 그 주동 원리입니다.


11. 그러나 여기서 아마 다음의 물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생존하는 인간이 이런 정도까지 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가능한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먼저 내가 대답하고 싶은 것은 그 정도까지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아니라 체험의 확실한 증거로도 배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2.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을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고후 7:4)

만일 내가 당신들이나 복음을 위하여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붕 위에서 공언한다 할지라도 "이 허물은 용서하시기 바랍니다"(12:13)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나자신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용납하십시오.

당신들이 높임을 받도록 나는 낮아지고

내 주의 영광을 위해서도 더욱 비천해져도 나는 만족합니다.


13. (존·웨슬리)는 이 정도로 여러 해를 살아왔습니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증언할 수 있는 바와 같습니다.

나는 모든 악을 피하려고 거리낌없는 양심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시간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했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선행을 할 모든 기회를 전부 획득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또는 주의깊게 공적인 또는 사적인 은혜의 수단을 다 사용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도 한결같이 진지한 행동을 하려고 힘썼습니다.

내 앞에 서 계시는 하나님이 내 증인입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성실하게 하고

하나님을 섬기려는 진정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마음으로부터 바라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딤후 6:12) 나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나 자신의 양심은 성령으로 이 기간 중에 내가 단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에 불과했다고 나를 향해 증언합니다.





만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가운데에는

이 이상의 무엇이 의미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합니다.


() 1. 먼저 하나님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10:27)


이것은 온 마음을 독점하고 모든 애정을 차지하고 영혼의 전 능력을 채우며

그 성능을 모두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신 주를 사랑하는 사람의 영은 끊임없이
"그의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1:47) 그의 기쁨은 그의 주요, 모든 것이 되시는 주 안에 있고,

"모든 것에 있어서" 주님께 "그는 감사를 드립니다."


그의 모든 바램은 다 하나님께 향해지며,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일"입니다( 75:1, 78:7).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73:25)라고 그의 마음은 언제나 부르짖고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 이외에 무엇을 바랄 수가 있습니까?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은 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모든 종류의 자랑에 대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은 교만하지 않은" 것이요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계신" 사람은 자신을 볼 때 전연 무익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 2.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둘째의 내용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하고 묻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대답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요

모든 육체 가진 자의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입니다.

또 우리는 아무래도 우리의 원수들 혹은 하나님의 원수들이나

그 사람들의 영혼을 제외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 모두는 이들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합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인가를 좀더 충분하게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 바울이 그것에 관하여 말한 바를 고찰하면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판단에 있어서 경솔하거나 성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 가운데 자신을 가장 작은 자로,

모든 사람의 종으로 생각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는 모든 사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의 것을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선만을 구하는데,

그것은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분노를 내쫓습니다.

분냄이란 사랑의 부족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

3. 그러나 또 한가지 "온전한 그리스도인" 속에 포함된 의미는,

물론 위의 것에서 분리할 수는 없는 것이지마는,

따로 생각해 봄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것의 근거인 곧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통하여 매우 탁월한 사실이 신앙에 관하여 말해지고 있습니다.

저 사랑하는 제자는 말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요일 5:1, 요한 1:12).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다."(요일 5:4)

더구나 우리 주 자신도 다음과 같이 언명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또 심판 받지 않으며

 죽음에서 생명에로 옮겨간 것이다"( 5:24).


4. 그러나 여기서 아무도 자신의 영혼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다음의 사실을 늘 조심해야 한다.

회개, 사랑 그리고 모든 선행을 낳지 않는 신앙은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저 바르고 살아있는 신앙'이 아니오, 죽은 악마적 신앙이다.

왜냐하면 악마들이라도 그리스도가 처녀에게서 탄생하시고,

자신을 참 하나님으로 선언하시는 가운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속량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세상 끝에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고 오신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신앙신조들을 악마들은 믿고 있는 것이요,

동시에 또한 신구약 성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고 있다.

이 모든 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악마에 불과하다.

그들은 진정으로 참된 기독교 신앙을 결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저주받을 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5. (우리 교회의 용어로 계속해 말한다면) "바르고 참된 기독교 신앙은

성서나 우리의 신앙신조들이 참되다고 믿을 뿐만 아니오,

그리스도에 의해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는다는

확실한 신뢰요 확신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의 호의에 대하여 화해했다는,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가질 수 있는 확실한 신뢰요 확신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랑의 마음(a loving heart)이 진정 뒤따르는 것입니다.'


6. 이제 이 신앙을 가진 자는 누구나 교만, 분노, 정욕,

"모든 불의"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으로부터"(고후 7:1),

(믿음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마음을 깨끗게"( 4:8)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과 모든 인류 모두를 향한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으로써 마음을 채웁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일을 하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쓰고 쓰여지는 것을 자랑 삼습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치욕 곧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 받고 경멸 받으며 미움받는 것,

하지만 인간들이나 악마들의 악의가 가해지도록

하나님의 지혜가 허락한 모든 것을 기쁨으로 견디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으로 역사하는 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단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실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7. 그러나 이러한 일의 산 증인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음부와 멸망은 드러나며 사람의 마음은 더욱 그런데"( 15:11) 이 하나님의 면전에 있는 자로서 형제들이여, 나는 당신들에게 간원합니다.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마음에 물어보시오. "나는 그 한 사람인가?"


이교도의 정직의 법이 요구하는 정도만이라도 나는 정의, 자비, 진실을 실행하고 있는가?
만일 실행한다면 나는 크리스천의 그 외양, 즉 경건의 형식을 가졌는가?

나는 악을,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금지된 것을 모두 피하고 있는가?

나는 내 손이 하려고 찾는 모든 선을 힘을 다해서 하는 것인가?

나는 모든 기회에 하나님의 정하신 의식을 진지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행해진 이 모든 것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성실한 의도와 바램을 지녔던 것인가?



8. 이 정도까지도 당신들은 가지 않았다는 것,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조차 된 적도 없었다는 것,

당신들이 이교도의 정직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

적어도 기독교 경건의 외양을 가진다는 정도까지도

오지 못했다는 것을 당신들 대부분은 의식 못하고 있습니까?

더더구나, 당신들 속에서 성실 즉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참된 의도를 하나님은 보지 못하셨습니다.

당신들은 결코 당신들의 모든 말과 일, 연구, 오락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바치려는 의도조차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한 모든 일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영적 제사"가 되도록 하려고

당신들은 결코 의도했거나 소원하지 않았습니다.



9. 그러나 가령 당신들이 그것을 했다고 하더라도,

대체 선한 의도나 선한 바램이 크리스쳔을 만듭니까?

그것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한,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옥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고 누군가(크리소스톰)가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의문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에 부어지고 퍼져 있습니까?

당신은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라고 당신은 외칠 수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까?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 환희, 기쁨의 면류관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할지니라"한 계명이 당신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합니까? 당신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원수들이나 하나님의 원수까지도 당신 자신의 영혼만큼이나 사랑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신 만큼 사랑하십니까?


그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셨고

당신을 위해서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당신은 믿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이 당신의 죄를 거두어서 그것을 바다 깊이에 돌처럼 던져버리신 것을

당신은 믿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거스리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것을 당신은 믿습니까?

당신은 실지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속량, 즉 당신의 죄의 사면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까?

10. 우리 가운데 서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만일 어떤 이가 이 신앙과 사랑없이 죽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태어나지 않았던 편이

그를 위해서 좋을 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잠자고 있는 당신이여, 깨어나시오. 당신의 하나님을 불러 찾으시오.

하나님이 찾아질 만한 때에 찾으시오. 하나님이 그 "선한 형상을 당신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고"( 33:19) 주의 이름을 당신에게 선포하실 때까지 하나님을 쉬시게 해서는 안됩니다. -

 "주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 34:6,7)

헛된 말로써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받는 일에 미치지 못하는데

머물도록 설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한 가운데 있을 때 불경건한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5:6)

그리스도를 향해 밤낮 부르짖으시오. 그리하면 마침내 당신은 당신이 믿는 분을 알게 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 20:28) 하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하면 마침내 당신도 당신의 손을 하늘로 들어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게 언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21:17)


11. 이리하여 우리 모두가 "거의 다 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무엇임을 체험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속량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의롭다하심을 받는 일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되는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기뻐하는 일이요,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하여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퍼지는 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