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인이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험한 세상 나그네….”란 찬양이 있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어느 날 보혈의 주님을 타민이는 만나고
또 많은 세상 일을 보고 산담니다..
아래 글은 인터넷에서 발췌해서 모신 글 입니다..
예전엔 대통령이나 명성이 있는 분이 한마디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따랐습니다.
지금 21세기는 세상이 많이 변해서
진실이나 정의를 부르짓어도 코방귀 조차 내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일은 어려운 세상이기도 합니다.
위선과 악이 장마 속의 독버섯 같이 피어 납니다..
필자는 개신교 평신도 노인인데....
예전엔 좀 덜떨어진 신도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목사 장노 집사는 무조건 존경을 하고 대접을 하다가
실망을 많이 하고 지금은 이런 상황은 초월하는 경지 입니다.
신약 성경에 드러난 예수님의 생애를 읽다 보면
한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이 죄인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반면,
바리새인이라고 불리는,
그 당시 율법 학자, 유태인 중 지식인 계층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시었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바리새인들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일상 속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율법을 온전히 지켜나가고
신에 대한 예배를 하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기도 했고 로마에 대항하여
유태인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나갔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다가왔던 죄인들은
간음한 여자, 창녀, 로마의 앞잡이였던 세리,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그 피가 순결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혼혈 민족 사마리아인
(굳이 한국 사정으로 비유하자면 7-80년대 혼혈아들?)
그리고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문둥병자와 같이
죄인들이거나 혹은 유태인들에게 무시받던 사람들이었고
심지어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인간적인 관점 혹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버젓한 사람들이다.
법을 지키고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비판하는 데 말을 아끼지 않았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신의 계명을 따르는 것 같았으나
속으로는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스스로 의롭다 또는 높다 여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님께 다가온 죄인들은
한때 죄를 지었을 지 모르나
자복하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다가왔기에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고 오히려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자기의 죄를 털어놓는 진짜 죄인이
겉으로는 죄를 짓지 않아 보이나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사람들보다
신의 은총에 가깝다고 여기는 사고 방식은
인간적,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자못 충격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일반 논리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의 원칙은 이와 다르다.
속으로 어떤 반성을 하고 있건 간에 그런 주관적인 심정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행실이 더 중요하다.
한 사람이 주관적으로 품고 있는 마음이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누가 그를 비난하겠는가.
인간의 법률이나 윤리 의식은
앞으로도 영원히 겉으로 드러나는
객관적 행위에 촛점을 둘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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