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만큼 처절한 허무의
노래도 없습니다.
인생의 영화를 가장 완벽하게
누리고 전무후무한 지혜자로 명성을 떨쳤던
솔로몬 조차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한 게 바로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시편90편
역시도 모세의 허무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가 어째서 허무의
노래라는 것일까요?
티끌로 돌아가기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3절).
창세기
3:19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너나없이 다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흙으로 빚어졌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래서 인생은
허무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아득바득 살다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게
모든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무서운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기에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5,6절).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순간과
같다>(4절),
<홍수처럼
쓸려가고, 잠깐 자는 것과 같다>
(5절),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시드는 풀과 같다> (6절)는
표현은
다 신속히 왔다 가는 무심한
세월,
허무한 인생을 노래한 것입니다.
야고보도
<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4:14)
그랬습니다.
주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2절)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안개
같고 소멸하는 풀 같은 존재입니다.
모세는 세월이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절)
그랬습니다.
그래서 슬픈 존재고 허무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수고와 슬픔뿐이기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10절).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2:23).
야곱도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우리 조상의 열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자,
그럼 이게 인생이니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수고요 슬픔이요 허무일
뿐이니 자살하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얻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16절).
주의 은총을 사모하며 살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17절).
그럴 때만 인생은 값지고
복되며 살만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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