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이야기에서
자식 기르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자식이 그
부모가 하는 일을 보고 듣고,배워
그대로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그것들을 새롭게 이해*해석하여
우리의 삶 안에서 거듭난 삶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실천하며 따라야만 합니다,
무릇 종교란 인간의 공동체를 구성요소로 하고 있기에,
인류 역사가 소중히 생각하는 원리와 질서가 그 안에서도 작동합니다.
따라서 종교는 신앙 원리와 인류의 염원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하며,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기 위해 성경 말씀은 실천을 선행해야만 한다.
흔히 종교인들의 침발린 기복(祈福)적
위장(僞裝)과
아세곡학(阿世曲學)의
현상은 지양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기복적(복을 비는 것) 종교 언어로
해석하면,
지극히 높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게 하시어,
저희가 그 이름을 흠모 존경하게 하시며,
지엄하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어 저희를 다스리시고,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의 뜻이 저희를 지배하여,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오로지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희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미물이오니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기 위해 노력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가 유혹에 빠져서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악한 일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같은 기도를 신앙 언어로 해석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희가 아버지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며
살아서 이 세상에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저희의 삶과 실천이 아버지의 나라가 어떤 것이지를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 사는 저희를 통해서도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희는 일용할 양식을 보아도,
베푸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보아도,
저희 죄를 용서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저희가 하니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저희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유혹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시고,
선하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
인류역사 안에 당연시되는 원리들과 그것들이 만드는 질서를 예로 들어보자.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
명철보신(明哲保身),
입신양명(立身揚名),
부귀영화(富貴榮華),
다다익선(多多益善),
약육강식(弱肉强食)
등을 나열할 수 있다.
한 아들이 자식과 함께
늙어서 수족을 못 쓰시는 부모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 속으로 가서
버려두었다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렸다는 고려장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늙으신 부모를 산에 내려놓고 지게도 버려두고 돌아가려는 아버지에게
함께 갔던 어린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이지게를
두고가면 어떡해요!
이 다음에 아버지도 늙으면
내가 이 지게에 지고 여기로 와야 하잖아요?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불교에서 유래된 행위의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받게 된다는 말로 흔히 죄값을 치른다는 개념을 나타낼 때 쓰이는
한자성어로 “뿌린대로 거두리라”와 유사합니다.
그래서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인간이 당연시하는 질서 앞에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며,
믿음의 행위가 구원으로 제시되는 것은 하나님이 함게 계신다는 자각심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이 자각심과 마음 가짐은 자비,
헌신,
섬김,
스스로 작은 자가 되는 것,
청빈,
연민과 배려 및 사랑(성령의
열매) 등의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종교가 신앙 언어를 시대에 맞게 해석하여 표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인과응보 혹은 사필귀정의 실현에 있는 것으로
왜곡 제시할 수 있으며 인류가 만든 원리들과 질서를 성취해 주는
하나님이라고 왜곡하는 주술적(무당 굿)인 결과를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종교 공동체 안에서 명철보신과 입신양명을 추구하면서,
각종 감투와 직분들을 헌신과 섬김이라고 위장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잘 하면,
얻을 수 있는 입신양명이고 재물인 양,
사람들을 잘못 인도(誤導)할
수도 있습니다.
하니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약육강식이 자행되고,제
5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인간 안에 내재하는 증오와 복수를 가족에게 실천하는 현상의 사례들을
쉽사리 종교 공동체들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보고 있습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몰라도 효도하는 자식들은 많습니다.
맏음은 아는 것들의 몸소 실천에 있습니다.
몸이 약한 할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눈을 감자
할머니는 아들네 집에서 함께 살기 위해 찾아 갔다.
아들과 함께 살게된 할머니는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늙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눈이 침침해졌고,
귀도 어두어졌다.
식탁에서 식사할 때도 앞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는 손을 더듬어서 겨우 음식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실수 투성이었다.
숟가락에서 완두콩을 떨어뜨리고,
스프를 흘리곤 하였다.
아들과 며누리는 할머니가 자꾸 음식을
식탁위에 흘리고 그릇을 엎자 분통이 터졌다.
어느날 할머니가 또 우유를 엎질러서
식탁과 옷을 버리게 되었다.
그러자 아들 부부는 여러 가지로 의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들은 청소통 옆의 구석에 작은 식탁을 만들어 세웠다.
그리고 할머니 혼자 그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했다.
홀로 앉은 할머니는 눈물이 가득 괸 눈으로 묵묵부담
건너편 식탁에 모여 앉은 다른 식구들을 바라보면서
서러움에 잠겨 식사를 해야만 했다.
식사중에 다른 식구들이 가끔 말을 거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가 밥그릇이나 포크를 떨어뜨리는
할머니를 무시하거나 탓하는 소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저녁식사를 하기 바로 전,
손녀가 마루에서 바쁘게 블록을 쌓고 있었다.
어린 딸이 뭔가에 몰두해 있는 것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아들은 자신의 귀여운 딸에게 무엇을 만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딸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난 지금 엄마와 아빠를 위해 작은 식탁을
만들고 있어요."
손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언젠가는 아빠도 구석에서
혼자 식사를 해야 하니까요."
아들과 며느리는 잠시 딸을 쳐다 보다가
갑자기 함께 끌어안고 죄책감에 울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식사 시간,
아들과 며느리는 어머니를
다시 큰 식탁의 어머니 자리로 모셔왔다.
그때부터 식구들은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했고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한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