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따르는 이야기♥

2. 하나님의 시험

비타민님 2012. 7. 8. 17:12

2. 하나님의 시험

 

 

 

“그가 나를 단련하신후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17:3).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을 다루셨던 방식이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다루시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는 애굽을 떠나온 뒤부터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음이 어떠한지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니라”( 8: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를 시험하시며 낮추시며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이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만일 우리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는다면,

우리는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에

인내를 가지고 보다 대처할 있을 것이다.

 

날마다 일어나는 귀찮은 일들과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일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에 대답이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시험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고 우리가 실망하며

손해를 보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시험하신 것이거나

시험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질과 용기와 믿음과 인내력과

사랑과 충성도를 시험하신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하나님의 성도들조차도

얼마나 자주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이

오직 사단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자기가 고난을 받는 것이

대부분 막강한 대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들 마음에 위로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단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단은 어디까지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릴 없으며,

비록 그가 우리를 괴롭힐 있도록 허락받은 때라 할지라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이용하여 우리를 “시험하시는” 때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부차적인 원인을 뛰어 넘어,

모든 일을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 1:11)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바로 욥이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욥기 1장에서 우리는 사단이 하나님의

욥을 괴롭힐 있도록 허락 받은 것을 본다.

 

 그래서 사단은 스바 사람을 시켜 욥의 가축들을 빼앗고

종들을 죽였으며(15), 갈대아 사람들을 보내어

그의 종들을 죽였고(17), 대풍을 일으켜

그의 자녀들을 죽게 하였다(19).

그런데 이에 대한 욥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

욥은 사단이나 사단의 대리인 노릇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후에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도 그와 같은 경우를 찾아볼 있다.

 

고난 받는 서머나 교회에서 요한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환난을 받으리라”( 2:10).

다시 말해서, 그들이 옥에 던져지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림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지 모른다.

 

 고난 속에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시험이든지

또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깨닫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까!

이런 면에 있어서도 우리 주님은 완벽한 모법을 보여주신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오자,

베드로가 검을 빼어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베어 버렸을 ,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18:11)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바야흐로 극심한 분노를

그에게 퍼부으려 하고 있었고,

뱀은 그이 발꿈치를 상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초월하여 위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잔이 아무리 쓰다 하여도,

사실 그것은 주님께서 마신 것에 비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리신 잔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여야 것이다.

 

 

 

때로 우리는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은 생각이 때가 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투덜거린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참을 없는 짐을 내게 지우시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두시면서

내게서는 거두어 가시는가?

 

건강과 힘과 시력에 내게서 떠나가는가?

이러한 모든 의문에 대한

 

번째 대답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9:20)

따름이다.

어떤 피조물일지라도 위대하신 창조주의 역사(役事)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릇된 반역행위인 것이다.

성경은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9:20)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근실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배은망덕한 입술을 다물게 하고

형편없이 비뚤어진 우리 마음의 동요를

잠잠케 하시기를 간구해야 것이다.

 

 

 

반면에,

모든 지혜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 복종하는

 

겸손한 심령들에게는 성경 말씀이

문제를 해결할 있는 빛을 비추어 것이다.

그리고 빛은 우리의 머리가 납득할 만큼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6,7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위의 구절에 나타난 가지 교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믿음을 단련하기 위한 시험(trial)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받아들일 따름이다.

 

둘째는, 믿음의 시련은 고귀하여 금보다 값지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현재의 시련에 대한 보상이 미래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시련을 굳세게 견디고 참아내면,

  우리의 구세주가 나타나실 때에 상급을 얻게 것이다.

 

베드로전서 4:12,13에서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시험을

이상한 당하는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도 앞에서 인용한 구절과 똑같은 사상이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기 위한 “시련”은 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기대하라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넘치도록 갚아주신다는 은혜로운 전망이 다시금 나타나 있다.

그리고 걸음 나아가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가 당하는 이러한 시련들을

믿음으로 견디어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뻐하라고 교훈한다.

예수께서는 면에서도

제자들의 주님이 되시기에 충분한 고난을 이미 받으셨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사랑하는 독자여!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까지도 고난을 감내하셔야 했다.

 

 따라서 이런저런 형태의 가혹하고 혹독한 시련이

조만간에 우리에게도 밀어닥칠 것이다.

“우리 형제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살전 3:2,3)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다음 구절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것이라”( 14:22).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였다.

아브라함도 혹독한 “시험(trial)" 받았으며,

요셉, 야곱, 모세, 다윗, 다니엘 등도 마찬가지였고

사도들도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