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따르는 이야기♥

3. 궁극적인 결과

비타민님 2012. 7. 8. 17:22

 3. 궁극적인 결과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여기에 나오는 시제(時制) 주목해 보라.

욥은 자기가 이미 정금같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장차)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자기 안에 불순물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미 완전하게 되었다고 자랑하지 않았다.

자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욥기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욥이,

“내가 스스로를 몹시 혐오하고”(한글 개역 성경에는,

‘내가 스스로 한하고’라고 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욥이 그러했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수많은 허물들을 발견하게

그리고 우리가 알고 혹은 모르고 지은 수많은 죄들을 생각해 ,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혐오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불순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제까지 그렇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내가 정금같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확신과 적극적인 확증을 가지고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지만 그가 그것을 어떻게 있었을까?

어떻게 우리도 이런 복된 결과를 확신할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단코 실패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시작하신 착한 일을 “이루실 것이다”

( 1:6).

어떻게 우리가 이런 복된 결과를 확신할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138:8).

그러므로 시험과 고난을 받는 분들이여, 기운을 내라.

시험의 과정은 괴롭고 고통스러우나 결과는 탐스럽고 확실하다.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말은

고난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던 상황 속에서,

 

 홀로 의미를 깨달았던 사람이 말이었다.

불같은 시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낙관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승리의 언어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말은 세속적인 자랑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던 사람의 확신이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

모든 영광은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께 있을 따름이다. ( 1:1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