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청렴 결백한 관리

비타민님 2016. 1. 6. 18:04


이번 선거에 패해 물러난 나라의 정권은 부패한 조폭 정권인데,

국고를 텅비우고, 당의 대통령 후보는 지사를 재임하며

엄청난 천문학적인 정부 부채를 숨긴 자이기도 하다..

나라 법은 부통령이 국회 상원위원 의장이 되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데,

전직 부통령이 도둑놈으로 가관인 것은 그의 소유 차량 주소가

휴양지 해변이 주소로 되어 있고,조폐공사 찍기 부정을 하다가

법에 기소 되어 출국 정지를 당한 패륜아로 소문이 나잇는 자로

정부의 신임 부통령이 상원 의장에 앉아 부정을 조사하니

작년 한해에 상원 임시 임용직 종사자가 300명이 넘고

그들의 입금과 경비도 천문학적인 세비 유용이 발각이 된다..

전형적인 탐관오리의 본이 되는 보다 못한 놈이기도 하다..

한국 뉴스를 보면 국회 위원들과  고위층 탐관오리들도 보게 된다.

 

소유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다.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통해 보아도

황금을 돌같이 여긴 성인보다는 돌을 황금으로 여긴 범인이 훨씬 많았다.

 

淸白吏(청백리) (淸廉潔白한 官吏)라는 말이 출현하게된 것도

이러한 속물 인간의 속성과 멀지 않다는 생각이다.

官과吏가 구별되었던 옛날에는 청관과 염리로 구분하여 불렀다.

물론 반대가 탐관오리.

 

옛날 중국에서는 ‘삼년 청관에 십만금(아무리 청렴결백한 관리도 3년이면

10만금은 쉽게 있음)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하기야 수십 한창 명월을 벗삼아 공부했는데 (고등고시 출신 관리)

급제하고 나면 누군들 보상심리가 없겠는가.

때문에 우리나 중국이나 관리들의 부패는

역대 위정자들의 가장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당근과 채찍을 함께 구사했는데

탐관오리에게는 가혹한 형벌을 내린 반면 청백리에게는 덕행을 널리 기렸다.

 

중국에서는 서한문제(기원제 160년경)때부터 청백리를 표창한 것을 시초로

왕조마다 공무원들의 청렴성을 진작시켰다.

우리의 경우,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실시한 것을 되어 있다.

고려 말의 대표적 충신 최형의 청렴결백은 익히 아는 바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활발하게 실시한 결고 태종부터 순조에 이르는 동안

200명이 넘는 청백리가 나왔다.

중에도 세종 때의 황희나 맹사성, 성종 때의 허종은 대표적인 분들이다.

 

일단 청백리에 뽑히게 되면 수우(특별대우) 따랐고

후손들도 음서라고 하여 특채되는 혜택을 누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렴과 성실한 자세로 국가에 봉사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모범이 되어 널리 기려졌으므로

당사자는 물론 가문으로서도 이보다 더한 영광이 없었다.

 

이렇게 청백리를 기린 것은 인간의 속성과 재물과의 묘한 관계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황금을 돌같이 여기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본능임에랴. 그러나 생각해 볼일이다.

공자는 부귀를 위해서라면 마부 노릇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옳지 못한 부귀는 浮雲(뜬구름)으로 여겼다.

요컨대 부귀는 정당한 방법으로 추구해야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正當(정당) 所有慾(소유욕),

그것은 인류가 발전 흥성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