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네 아이의 내복을 만드는 공돌이 아버지

비타민님 2016. 6. 13. 17:36

이민 수기를 읽기 전에 먼저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불러 보세요.

참 즐거운 부부와 가정을 노래하고 필자가 좋아는 18번 입니다.가사도 소개 합니다.

데스먼드는 시장에서 손수레를 끌지.

몰리는 밴드에서 노래하는 가수였다네.

데스먼드는 "아가씨는 얼굴이 예쁘네요"라고 

몰리에게 말했고,

몰리는 그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지.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데스먼드는 끌던 손수레를 갖고 보석상에 가서

20캐럿짜리 금반지를 하나 샀네

그걸 가지고 문간에서 몰리를 기다렸지

그리고 그녀에게 그걸 주자 그녀는 노래 부르기 시작했지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년후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몄네

데스먼드와 몰리 존스 부부의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시장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며 사는 동안

데스먼드는 아이들에게 가게를 돕도록 했고,

몰리는 집에서 예쁜 얼굴에 화장을 하고선

저녁마다 밴드와 함께 노래를 했네.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년후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몄네

데스먼드와 몰리 존스 부부의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시장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며 사는 동안

데스먼드는 아이들에게 가게를 돕도록 했고,

몰리는 집에서 예쁜 얼굴에 화장을 하고선

저녁마다 밴드와 함께 노래를 했네.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오브라디 오브라다, 인생은 흘러가는 .

라라, 인생은 흘러가는

 

재미나게 살고 싶다면

 

오브라디 오브라다를 외쳐보세요.

이 기계는 내복을 만드는 편집기인대,70년 초에 원시적인 기계를 가진 적이 있다.많은 사연을 가진 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분해해서 가지고 온 기게는 다리는 부러지고 모터는 삼상 모터라 단상 220볼트로 바꾸어 속도를 조절하는

풀러를 손수 계산해서 장착을 하고 회전 베어링과 볼트를 전부 교채를 합니다.

또 현지인 기술자를 불러서 3개월만에 조립 시동을 완료하나

이런 과정에 도움을 준 한인은 한명도 없는 매정한 한인들 속에서 오늘 까지 생존을 합니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을 도와주는 손을 내밀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 입니다.

예수 천국만 입술에 담은 교인이 되어서는 주님 앞에 바로 서질 못합니다.  

뜻이 잇는 곳엔 항상 길이 있습니다.     비타민의 회고담.

한국서 대학원 까지 나와 좋은 직장에서 잘 나가다가 이민을 와서 바느질하는 공돌이 과정을 거치는 인생 길을 산다.

두 기계는 런닝 셔츠나 팬티,내복을 만드는 기계로 구형이 된 게게를 지금도 가지고 있고

올해도 필자는 내 내복을 상하 두벌을 손수 만들었다.

1970년 초에 생소한 땅 아르헨티나 이민을 한다.

자영업을 하시던 부모님은 실의에 젖어 말이 아니고 두 누이 동생도 이유가 많아 일은 할 생각을 안한다.

자존심만 내세우는 가족들과 사는 일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고 가지고 온 돈도 바닥이 나는 상태이다.

식구들이 눈만 뜨면 불화가 계속이 되고 나는 살 길이 정말 까마득힌 현실이다.

천신 만고 끝에 헌 집을 하나 사고 옷 만드는 하청 일을 하는 재봉틀도 사는데?...

일을 할 생각을 하는 식구는 한명도 없다.튼 누이는 한국으로 시비을 가고

막내 누이는 파라과이 영사로 온 지인을 따라서 심부름꾼으로 간다.

부모님은 한국서 종업원만 거느리고 살아서 일은 절대 안하는 자존심이 있는데,

재봉 일엔 문외한인 내가 모든 책임과 불평을 맡게되는 셈이다.

천신 만고의 9개월동안에 현지인에게 배우고 줏어 들으며 일을 하게 된다.

고얀 일은 한국서 공순이 출신이 여기서 폼을 잡는데 

이 공순이들은 콧대가 세서 물어도 가르켜 주질 않는다.

결국 나는 현지인 스타일인 작업 방식을 배우게 되는데 한국식과는 상이한 점이 많다.

좋은 시절이라서 일을 시작한지 2개월만에 돈도 저축이 되기 시작을 하고 경험도 생긴다.

삵바느질한 돈을 받아서 어머니는 일년 먹을 햅쌀을 삿다고 좋아 하신다.

나는 아침 5시 반이면 기상을 해서 12시 까지 일을 하는 시절이고 부모님의 도움은 없다.

돈을 수금하면 챙겨서 빌려주고 사기 당하는 일만 하시는 분들인데 충고는 마이 동풍이신 분들이다.

나의 훌룽한 인생 수업을 손수하신 스승도 되신 부모님들 이시다.

새벽에 일어나서 구약 성경의 욥기를 읽는다..얼굴이 부어 있고 발목도 부어있다.

7시 10분 전 미싱사인 현지 여인 3명이 출근을 하면 먼저 차와 커피를 마시고 일과를 시작한다.

세 여인 모두가 20세 미만으로 미인측에 드는 백인계들이다.

일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쁘기도 하고 신총 방통한 주인인 니이기도한 착각을 한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인물도 고운 여인들을 많이 접하게 되고 부모님의 오해도 받는다.

노랑 머리를 좋아하며 여러 여자를 집적거린다는 꾸중과 오해도 많이 받는 고난의 시간들이다.

물론 한국과는 달리 이 곳의 인사는 남녀가 친근하면 서로 뺨을 맞대고 인사를 하는데,

이런 인사가 우리 부모님의 눈에는 내가 천한 바람쟁이로 보이는 것이 틀림이 없다.

**********

한인 여남은 가족이 사는 지방 도시로 이사를 해서 애들을 유치원 부터 시작을 한다.

내가 행운아인 것은 우리가 다니는 현지인 감리교회 목사님 내외가 우리를 사랑하셔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큰 아이는 유치원을 갔다오먄 오후에는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시고

손자 같이 큰 아들을 돌보아 주시는 노랑 머리 유럽계 분들이시다.

*********

세월이 흘러 나는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가지 다 다니게 된다.

이 곳의 겨울은 영하로 덜어지진 않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라 춥다.

아이들에게 한국 내복을 입힐 수는 없으니 궁여 지책으로 직접 만드는 작업을 한다.

재단에 대해 한국서 잠간 주마간산을 한 경험을 토대를 실행에 옮기는 순간이다.

아이들에게 만들어 입히니 추위도 안타고 편하니 좋아한다.

조깅 바지도 크는 아이들이라 늘 작아지므로 여러 벌 바지도 만드러 입히니 

우리 아이들은 늘 새옷을 입고 다닌다.

*******

1990년 대에 금융파동이 나서 장사도 안되고 저축한 돈도 거의 바닥이 나는데

커 가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씀씀이는 늘기만 한다.

한번은 운동화를 싸고 좋아 보이는 것으로 사 주엇더니 

아들인 세 아이는 공차기로 보름이 지나니 다 떨어진 운동화를 만든다.

비싼 가죽제품인 아디다스만이 6개월을 버티는 일도 뱅게 되는데,

사면 운동화를 4개 사야 하는데 운동화 한벌에 미화 200불을 홋가하니 부담이 너무 많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아버지 사정을 봐주지는 않는다.

또 자전가 타기가 유행이라서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덴다..또 4대를 사야한다.

어렵게 저축한 돈으로 경기용,산악용,저금 작은 자전거 2대를 사고

이젠 4대를 차에 싣고 공원에 가서 자전거 교습을 시키는 아버지도 된다.

그 분인가?..사설 수영 교습을 보내지 못하니 여름 철엔 깨끗한 물이 잇는 곳에 가서

원래가 물오리 같이 수영을 잘하는 내가 애들 교습을 시키게 된다.

수영을 잘한다는 집 삶은 잠수함인지 한번도 수용을 하는 걸 지금 가지 본 적이 없다.

집 사람은 분명 잠수함형 수영을 하는 걸로 보고 있다.원자력 잠수함인 것으로 본다.

******

이민 생활의 단편 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