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9:1-20 나를 아시는 하나님
그저께 아주 기쁜 일이 있었으나,
아주 사소한 일로 촌노의 마음이 크게 상합니다.
촌노 비타민은 위선자나 거짓말쟁이,거만한 자,허풍쟁이는 싫어합니다.
이런 자를 고집하며 높이 평가하며 말을 왜곡하며 변명을 하는
나의 가까운 사람의 일이람니다.
우리 찬송가에는 흑인 영가가 3곡 있습니다.
136장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420장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518장 (신자되기 원합니다)입니다.
저는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 420장을 즐겨 찬송합니다.
저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가 나의 괴롬알며 또 나의 슬픔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나 자주 넘어집니다 오 주여 나 자주 실패합니다 오 주여!
그 누가 나의 괴롬알며 또 나의 슬픔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누가 우리의 고통을 가장 잘 알아줄까요?
부모형제라도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친한 친구도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떠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자가 없다고 느껴질 때 많은 사람들은 술로 잊고자 하지만
술을 깨고 난 후의 허망함은 더욱 절망의 끝없는 나락에 떨어지게 합니다.
우리말 고사성어 가운데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엽게 여긴다.’
또는 ‘어려운 사람끼리 동정하고 돕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고통당하는 자의 마음을 잘 알고 위로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 속에서는 참된 위로와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모두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병들고 돈이 떨어지면 떠나갑니다.
재물도 잠시 있다가 금방 없어집니다.
권력도 영원히 나와 함께 있어주지 못합니다.
언젠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 순간부터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중세의 아주 유명한 수도자인 프란시스에 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그에게 친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두 사람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그 친구는 프란시스가 어떻게 기도하는가를 엿보기 위해
큰소리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척했습니다.
프란시스는 친구가 잠이 든 것으로 알고 살며시 일어나
눈과 손을 하늘 높이 들고 열정으로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이라며 기도했습니다.
프란시스의 친구는 조용히 귀를 기울여
그 다음 무슨 말을 하는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프란시스는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하고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그
러나 얼굴은 회개나 뉘우침이나 고민스러운 얼굴이 아니라 아주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다시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가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훌륭한 수도사인 프란시스의 기도가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이란 말 외에는 아무런 다른 말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내 전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많은 말로 기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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