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길 험하고
오! 나의 하나님! 나의 모든 것 되시는 분!
러시아의 문호이시고 독실한 동방 카토릭 신자인 톨스토이 백작의
"인생론"에 나오는 우화 입니다..
러시아에 일흔 살 먹은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한평생을 죄악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병을 앓게 되었다. 그러나 뉘우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주여!
당신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도 낙원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 죽었다. 그가 죽고 난 후에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천국 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 뒤에서 베드로가 말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군가?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 물음에 천국의 고발인은 노인이 저질은 온갖 죄악을 낱낱이 아뢰었다.
반면 착한 일은 한 가지도 없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썩 물러가라."
노인이 말했다.
"베드로 사도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인간은 약한 자이며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괴롭게 기도하실 때에
당신은 눈까풀이 무거워 잠을 자고 말았고,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졸고 있는 당신을 깨우시며 기도하라고 일렀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당신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그가 대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고 있을 때에
그가 보는 앞에서 그를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당신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서
그곳을 떠나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셨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천국에 들여보내 주세요."
그러자 베드로는 잠잠해 버렸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천국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문 뒤에서 다윗이 말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군가?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 물음에 천국의 고발인은 노인이 저질은 온갖 죄악을 낱낱이 아뢰었다.
반면 착한 일은 한 가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윗이 말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썩 물러가라."
노인이 말했다.
"다윗 왕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리고 인간의 허약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셨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옥상에서 가난한 자의 아내를 보시고 마음속에 죄가 싹터
가난한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암몬 자손의 칼로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자의 손에서 마지막 양을 빼앗고
충성을 다하는 군인을 죽였던 것입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은 짓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일로
하나님께 통회하며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을 때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나를 천국에 들여보내 주세요."
그러자 다윗은 잠잠해 버렸다.
노인은 다시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천국 문을 마구 두드리며 들여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문 뒤에서 요한이 말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누군가? 그는 살아 생전에 어떤 일을 했는가?"
이 물음에 천국의 고발인은
노인이 저질은 온갖 죄악을 낱낱이 아뢰었다.
반면 착한 일은 한 가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요한이 말했다.
"죄인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썩 물러가라."
노인이 말했다.
"이제야 말로 나를 천국에 들여 넣어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다윗은
인간의 허약함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들여 넣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사도 요한이여,
당신은 당신 속에 있는 많은 사랑 때문에
나를 천국에 들여 넣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쓰신 글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형제들이여, 서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당신이 지금에 와서 어떻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몰아 내시겠습니까?"
그러자 천국의 문이 열리고
요한이 회개한 죄인을 끌어안으며 그를 천국 안으로 맞아 들였다.
거지들의 성자 프란체스코 아시시의 전해지는 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40일 금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하루를 남겨 놓은 39일째 되는 날
젊은 제자 하나가 맛있는 스프 냄새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숟가락을 입에 떠 넣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함께 금식을 하던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젊은 제자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눈길 속에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처로움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죄의 따가운 시선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제자들은
유혹에 넘어간 젊은 제자를 엄하게 꾸짖어주기를 바라며
스승, 프란체스코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프란체스코는 말없이 수저를 집어 들더니
젊은 제자가 먹었던 스프를 천천히 떠먹기 시작했습니다.
경악의 눈길로 스승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프란체스코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를 참으며 사랑하며 아끼자는 것입니다.
저 젊은이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스프를 떠먹은 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정죄하고 배척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굶으면서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실컷 먹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경건의 폭력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39일 동안 무사히 금식을 마친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에게서
그들의 엄격한 경건과 돈독한 신앙이 오히려 형제를 짓밟고
자신들의 영성마저 망가트리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필자 비타 촌노도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엄격한 경건과 돈독한 신앙인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은 체험이 있습니다.
높고 귀하신 나의 스승님들로 제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하신 은인들 입니다.
율법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른 이들을 욕하고 질타하면서
그보다 더 큰 사랑의 계명을 어기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오늘 우리의 모습 속에서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仁) 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