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장 :4 ☆> 세네카의 철학에는 스토아 학파의 전통적 분야인 자연학과 논리학이 중요성을 상실하고 윤리학이 중요성을 획득한다. 그는 철학의 임무를 삶에 대한 연구로 국한시켰다. 행복하고 유덕한 삶은 자연과 섭리와 운명에 따라 사는 것이다. (세네카는 자연의 본질을 신적 이성/God-reason과 동일시 했다) 세네카에 의하면 신에게 복종함으로써 인간은 자유를 얻는다. 완전히 조화로운 이성(이것은 신적 이성의 일부이다)은 개인으로 하여금 인간 의지와 독립해 존재하는 세계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니게 한다. 인간은 인내, 절제, 용기를 통해서 최고선에 도달한다. 이러한 품성을 지닌 사람은 빈곤이나 고통 심지어 노예제도나 죽음 조차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성적이고 신적인 우주 안에서는 만유가 생명체들의 이로움을 위해 존재하지만, 반면에 물질적 복지에 대한 추구와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악과 죄악이 출현한다. 세네카는 이 관념을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모순, 즉 불멸하는 영혼과 사멸하는 육체와의 대립으로 변형시켰다. 인간은 오로지 신에 의지함으로써만 선에 이를 수 있고, 관능적 욕망과 물질적 대상들을 정복할 수 있다. 가난하다거나 노예 신분 같은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음 속의 내면적 자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외적인 이로움을 바라지 않는다. 세네카는 비록 노예와 주인의 정신적 본질이 같다고 주장은 했지만, 그는 노예와 주인이 각기 상이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시했다. 그는 부를 결코 이로움으로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가 덕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러므로 그의 가르침은 사실상 기존의 질서와 일치하는 것이다. 막대한 부를 소유하고 자신의 철학대로 살지 않았다고 비난받았을 때, 세네카는 "철학자는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해서 논할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세네카는 기독교 윤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장 :4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위대해질 수 없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인간의 행복 썩지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 참된 행복이다. 그것은 온 우주에 편만하게 파급된 행복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두루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우리의 외부적인 상태를 개선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고양시키고 , 영과으로 인도한다. “도리를 갖는 것은 인간성의 완성이다.”- 이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며, 이 도리를 지배하는 유일한 것이 예지다. 이 올바른 도리에서 비롯된 위대성은 확고부동한 것으로, 이는 예지의 결단이 자유롭고 절대적이며 항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어리석음은 동일한 것을 즐기지 못하고 언제나 남의 말에 흔들리며, 자기 자신도 어찌할 바 모른다. 항구성과 신중성이 결여되면 행복이 있을수 없다. 현자는 글을 읽고 한번 좋게 보면 , 언제나 좋게 생각하고 버리지 않는다. 그는 악과 요령부득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거침없이 전진하며 매사에 신중을 기한다.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확고한 주관을 갖고 살며 무슨 일이 닥치드라도, 순풍이 불어 오거나 역경에 빠지거나 자기 운명을 유리하게 전개한다.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것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덕성이 근간을 이루고, 그것은 지엽적인 일과 반드시 조화를 이룬다. 무릇 모든 덕은 조화를 이루고 악은 불화를 야기하는 법이다. 현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언제나 행복하다. 왜냐하면 현자는 스스로 올바른 도리에 따르는 이상, 모든 일을 자기가 이해하고 있으므로 지각있게 행동하며, 결코 정욕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자는 극도로 비참한 운명에 처하고 불과 칼이 닥쳐와도 동요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그림자에도 두려워 하고 놀라며, 악운이 닥치면 밤에 갑자기 적의 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놀란다. 현자는 마지못해 행동하는 법이 없다.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택한다. 그는 언제나 인생에 대한 어떤 전망을 눈앞에 그리고, 인생의 극치를 내다보고 있다. 그리하여 순응하는 것을 취하고, 저해하는 것을 버린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고, 주어지지 않은 것을 탐내지 않는다. 현자는 빈주의 견지에서 언제나 부유한것이다. 그의 처세의 도는 자연의 도와 마찬가지이며, 혼란도 초조함도 없이 일을 해나간다. 그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위험을 멀리한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조심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자는 포로가 되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사슬에 매이는 것을 경멸하며, 허망하고 연약한 공포심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다만 자기의 행위를 올바로 인도해 나갈 뿐이다. 행위의 모든 기교는 그의 노예이며, 예지가 이를 지배하므로 일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그것은 기교의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