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Seneca De vita beata 행복론 제 2장 1

비타민님 2018. 9. 24. 17:26


예지의 사전적 의미

1. 앞을 내다보는 의미의 예지

2.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지혜롭고 밝은 마음

이론적으로는 내다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앞날의 일을

미리 지각'하는 초감각적인 지각을 가리킨다.

'예견'이라고도 한다.


세네카의 글 소개 전에 필자의 말을 전합니다.

기끔은 듣는 한인 동포의 말인데,

모 인사는 코 흘리게 시절 이민와서 40대가 된 사람인데,

당뇨에 시달리며,이민의 초창기 모습에 절은 모습입니다.

이 사람의 가족들은 달동네에서 풀빵장사를 하다가 

이민와서 출세?한 분들입니다..

필자를 만나서 첫마디가 자신은 골프를 치므로 행복하다고 합니다.

무지몽매한 자가 인사도 예의도 없이 골프 예기를 하는데,

만난 사람을 배려하는 인사는 배우지 못한 딱한 자 입니다.

참으로 씨 없는 말이라고 혀바닥 놀리는 연습을 하는 인성의 인간?

같은 한국 여권 가졌다고 모든 한인의 인격은 동등하지 않다.아느냐?

 

인간의 행복은 예지와 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먼저 가정하고,

여기에 제기한 순서에 따라 문제를 다루어나가려고 한다.

우선 예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예지의 모든 작용을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의 선한 생활,

인류의 행복에 관련된 것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예지란 올바른 오성을 가르킨다.

즉 선과 악을 엄격히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분명히 가리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물의 가치를 토대로 한 판단력이며,

결코 일반 여론에 따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힘의 조화가 무엇인지 알고, 결단을 내리는 힘을 소유한 것을 말한다.

 

예지는 우리의 언동을 주시하고 자연의 영위에 대해 명상하며,

우리로 하여금 행운과 불운의 지배를 받지 않고 초연하게 한다.

예지는 크고 넒어 이를 움직이려면 광대무변한 장소를 필요로 한다.

예지는 하늘과 땅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도 초월하며,

과도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을 함께 포함한다.

 

예지는 그때그때의 모든 상태를 검토한다.

“현재는 어떠한가. 언제부터 시작하여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마찬가지로 그 마음도 검토한다.

 

“어디서 온 무엇인가, 언제부터 시작하여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어느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하지는않는가.

그리고 일정한 형태로만 봉사하는가,

아니면 그 마음은 우리에게서 떠나 방황하는가.

우리와 떨어져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어떤 행동을 하는가.

마음은 자유를 얻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자신을 의식하는가”

 

이것이 곧 완전한 마음의 실체이며, 인간의 완전한 상태다.

자연이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지점에 인간을 가져간 상태다.

이것이 철학이 아니다. 예지와 철학의 차이는 욕심과 돈의 차이와 같다.

하나는 원하는 것이고 하나는 원하는 대상,

즉 하나는 효과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다.

 

박애博愛 Caritas, 그리고 이웃 사랑

()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고 포용성 있는 마음이나 품성을 말하며,

밝고 올바르며 사람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품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는 자신의 의지를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인격적 능력과 선한 행위를 실행할 수 있는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은 덕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해와 관용, 협력과 협동, 상생하는 미래 비전을 효율적으로 실행하는데

덕이 필수불가(必修不可缺)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덕이란. 사람들의 칭찬할 만한 특별한 성질을 가지며

보편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만들어 나갈 뿐만이 아니라

탁월한 지도력과 고품격의 덕행(德行)으로써

삶의 질()을 풍부하게 만들고 다양함을 유지하면서

통일성(統一性)을 이루어가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고품격의 지식’,

플라톤(Platon)은 ‘영감 깊은 신령한 상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사람의 성품의 상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행동하는 인간 능력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참고;성경 신약전서의 성령의 열매

 

덕스러운 사람은 덕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덕은 사람다운 좋은 습관이며

사람으로서 가치를 함양하는 실천인 것입니다.

덕을 가진 사람들은 규칙과 법을 따를 뿐만 아니라

규칙들과 법보다

그 정신과 그 가치와 그 의미의 내용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와 규칙을 함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도, 그 규칙도 우리의 복된 삶을 사는 법과

길을 보여주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복된 삶은 하나의 전체로서

목표와 규칙들을 합한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복된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목표와 규칙 등을 따라야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함께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야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며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복된 삶을 위해 규칙을 따라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행동으로 올 곧게 이끄는 힘이 덕인 것입니다.

덕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에게 탁월한 힘을 공급해주며

용기, 바름, 성실, 근면, 정직의 품성으로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행위자의 정직한 힘을 공급해주며,

성실함으로 노력하게 하는 성품을 함양케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덕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덕은 의무적인 판단보다도 덕성의 판단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덕성의 판단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옳은 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인격의 도덕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

, 행위자의 내적 특질이나

성향이나 성품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의 덕성적 판단은

실천하는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 대한 관심을 우선시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덕은 의무로써 행동하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사랑, 자비, 섬김, 관용, 배려, 충성과 같은 감정에서 비롯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소중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덕은 행위보다 행위자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행위보다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고,

행위보다 행위자가 우선되어야 하며,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자의 감정과 품성을 소중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행위의 판단보다 덕성적 판단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물의 소중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복된 삶을 더 소중하게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덕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의 질서(ordo amoris)

주어진 삶의 자리에 아름답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말 것을 사랑하는 일이 없고,

사랑하여야 할 것은 사랑하지 못하게 하지 않으며,

덜 사랑해야 할 것과 더 사랑해야 할 것,

그리고 동등하게 사랑해야 할 것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질서 있는 사랑이라는 뜻의 카리타스(Caritas)

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德은 Caritas이고 博愛이며 이웃사랑

덕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삶에 실천적으로 요소를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덕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예지의 사전적 의미

1. 앞을 내다보는 의미의 예지

2.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지혜롭고 밝은 마음

이론적으로는 내다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앞날의 일을

미리 지각'하는 초감각적인 지각을 가리킨다.

'예견'이라고도 한다.

 

인간의 행복은 예지와 덕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먼저 가정하고,

여기에 제기한 순서에 따라 문제를 다루어나가려고 한다.

우선 예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예지의 모든 작용을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의 선한 생활,

인류의 행복에 관련된 것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예지란 올바른 오성을 가르킨다.

즉 선과 악을 엄격히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분명히 가리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물의 가치를 토대로 한 판단력이며,

결코 일반 여론에 따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힘의 조화가 무엇인지 알고, 결단을 내리는 힘을 소유한 것을 말한다.

 

예지는 우리의 언동을 주시하고 자연의 영위에 대해 명상하며,

우리로 하여금 행운과 불운의 지배를 받지 않고 초연하게 한다.

예지는 크고 넒어 이를 움직이려면 광대무변한 장소를 필요로 한다.

예지는 하늘과 땅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도 초월하며,

과도적인 것과 영구적인 것을 함께 포함한다.

 

예지는 그때그때의 모든 상태를 검토한다.

“현재는 어떠한가. 언제부터 시작하여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마찬가지로 그 마음도 검토한다.

 

“어디서 온 무엇인가, 언제부터 시작하여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어느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하지는않는가.

그리고 일정한 형태로만 봉사하는가,

아니면 그 마음은 우리에게서 떠나 방황하는가.

우리와 떨어져 있다면 어디에 있으며 어떤 행동을 하는가.

마음은 자유를 얻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자신을 의식하는가”

 

이것이 곧 완전한 마음의 실체이며, 인간의 완전한 상태다.

자연이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지점에 인간을 가져간 상태다.

이것이 철학이 아니다. 예지와 철학의 차이는 욕심과 돈의 차이와 같다.

하나는 원하는 것이고 하나는 원하는 대상,

즉 하나는 효과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다.

 

박애博愛 Caritas, 그리고 이웃 사랑

()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고 포용성 있는 마음이나 품성을 말하며,

밝고 올바르며 사람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품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는 자신의 의지를 확실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인격적 능력과 선한 행위를 실행할 수 있는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은 덕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해와 관용, 협력과 협동, 상생하는 미래 비전을 효율적으로 실행하는데

덕이 필수불가(必修不可缺)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덕이란. 사람들의 칭찬할 만한 특별한 성질을 가지며

보편적이며 도덕적인 삶을 만들어 나갈 뿐만이 아니라

탁월한 지도력과 고품격의 덕행(德行)으로써

삶의 질()을 풍부하게 만들고 다양함을 유지하면서

통일성(統一性)을 이루어가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고품격의 지식’,

플라톤(Platon)은 ‘영감 깊은 신령한 상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사람의 성품의 상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행동하는 인간 능력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참고;성경 신약전서의 성령의 열매

 

덕스러운 사람은 덕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덕은 사람다운 좋은 습관이며

사람으로서 가치를 함양하는 실천인 것입니다.

덕을 가진 사람들은 규칙과 법을 따를 뿐만 아니라

규칙들과 법보다

그 정신과 그 가치와 그 의미의 내용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와 규칙을 함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표도, 그 규칙도 우리의 복된 삶을 사는 법과

길을 보여주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복된 삶은 하나의 전체로서

목표와 규칙들을 합한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복된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목표와 규칙 등을 따라야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함께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야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며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복된 삶을 위해 규칙을 따라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행동으로 올 곧게 이끄는 힘이 덕인 것입니다.

덕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에게 탁월한 힘을 공급해주며

용기, 바름, 성실, 근면, 정직의 품성으로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행위자의 정직한 힘을 공급해주며,

성실함으로 노력하게 하는 성품을 함양케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덕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덕은 의무적인 판단보다도 덕성의 판단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덕성의 판단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옳은 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인격의 도덕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

, 행위자의 내적 특질이나

성향이나 성품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의 덕성적 판단은

실천하는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 대한 관심을 우선시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덕은 의무로써 행동하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사랑, 자비, 섬김, 관용, 배려, 충성과 같은 감정에서 비롯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소중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덕은 행위보다 행위자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행위보다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고,

행위보다 행위자가 우선되어야 하며,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자의 감정과 품성을 소중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행위의 판단보다 덕성적 판단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물의 소중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복된 삶을 더 소중하게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덕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의 질서(ordo amoris)

주어진 삶의 자리에 아름답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말 것을 사랑하는 일이 없고,

사랑하여야 할 것은 사랑하지 못하게 하지 않으며,

덜 사랑해야 할 것과 더 사랑해야 할 것,

그리고 동등하게 사랑해야 할 것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질서 있는 사랑이라는 뜻의 카리타스(Caritas)

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德은 Caritas이고 博愛이며 이웃사랑

덕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삶에 실천적으로 요소를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덕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