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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사자는 설원의 곰이 이해가 안 되고,
설원의 곰은 밀림의 사자가 이해가 안 된다.
설원의 지배자라도 살아가기란 만만찮고,
밀림의 지배자라도 살아가기란 녹록찮다.
우산장수는 소금장수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금장수는 우산장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용자는 “노동이 신성하다.”고
얼버무리나,
노동자는 “노동이 고단하다.”고
중얼거린다.
강자는 소득분배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약자는 소득분배가 “불평등하다.”고
여긴다.
고달프다 해도 근면하면 미래가 보장되나,
편안하다 해도 나태하면 미래가 암담하다.
환락을 즐기다 목숨을 잃는 것은 불행하나,
노역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억울하다.
"야생 생태계의 원리로 본 정글의 법칙"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세상은 돌아가고,
자연도태의 법칙에 의해 세상은 움직인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생명은 유지되고,
자연도태의 법칙에 의해 생명은 보존된다.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강자는 승리자이나,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약자는 패배자이다.
자연도태의 법칙에서 강자는 성공자이나,
자연도태의 법칙에서 약자는 실패자이다.
자연도태가 사라지면 공멸이 불가피하고,
적자생존이 사라지면 공멸이 불가피하다.
자연도태는 냉엄하나 공존만은 숭고하고,
적자생존은 비정하나 공영만은 숭고하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생명은 유지되고,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생명은 보존된다.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고,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문제점 제기
지난 주에 저개발국인 가난한 나라에서 혁명한 카스트로가 먼길을 간다 장례식 핑게로 일주일을 논다..
직속 꼬봉국인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경제 파탄을 한다.
많은 좌익 사회주의 정권이 남미를
석권하면 거지국가가 된다.
현지 우리 한인에게는 아주 불편한 정권이 있었다….
중남미에서
가장 많은 범죄자를 배출한 정권이 차베스
정권이고
이 나라도 깜보라 조폭의 혈통을 갖인
정권으로
날이 갈수록 사회 불안정에 편승한 강도와
도둑이 늘고 있었는데 선거에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나 참패를 당한다
글을 계속한다.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강자란 약탈자이고,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강자란 정복자이다.
약탈자란 남의 목숨을 빼앗고도 태연하고,
정복자란 남의 재물을 빼앗고도 태연하다.
약자란 목숨을 담보하고도 조아려야 하고,
약자란 재물을 담보하고도 조아려야 한다.
약육강식의 법칙이란 냉엄하기 짝이 없고,
약육강식의 법칙이란 비정하기 짝이 없다.
약육강식의 논리라면 강자는 선인 셈이나,
약육강식의 논리라면 약자는 악인 셈이다.
약육강식의 도박판이 무사할 리 만무하고,
약육강식의 난장판이 무사할 리 만무하다.
동물들의 하루살이가 무탈할 리 만무하고,
인간들의 하루살이가 무탈할 리 만무하다.
속인들의 인생살이가 조용할 리 만무하고,
속물들의 인생살이가 조용할 리 만무하다.
생명체가 있는 한 아귀다툼은 불가피하고,
생명력이 있는 한 이전투구는 불가피하다.
야수가 판치는 밀림의 생존이란 만만찮고,
속물이 판치는 세속의 생존이란 만만찮다.
*泥田鬪狗(이전투구)는
개가 진흙 수렁에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뜻한다.
본디 싸우는 모습은
보기가 좋지 않다.
특히 개가,
그것도 진흙 속에서 뒤엉켜 싸운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는가.
그것은 추악한 싸움일 뿐이다.
포식자는 남의 영역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정복자는 남의 영토에 들어가 약탈을 한다.
포식자는 남의 목숨을 빼앗고도 태연하고,
정복자는 남의 재물을 빼앗고도 태연하다.
강자의 생존에는 약자의 비애가 담겨있고,
약자의 수난에는 강자의 약탈이 자리한다.
모진 생존경쟁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고,
거친 생존투쟁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열악한 생존환경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고,
험난한 생존여건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생명체의 탄생은 축복의 서막일 수도 있고,
생명체의 탄생은 환난의 서막일 수도 있다.
소수가 도태된다 해도 대다수는 유지되고,
소수가 희생된다 해도 대다수는 존속된다.
약탈본능으로 동물은 남의 먹이를 탐하고,
약탈본능으로 동물은 남의 암컷을 탐한다.
생존본능으로 동물의 공격은 불가피하고,
생존본능으로 동물의 방어는 불가피하다.
동물은 살아가는 대가로 온갖 고난을 겪지만,
식물은 성장하는 대가로 갖은 수난을 겪는다.
동물은 식물의 영향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식물은 동물의 영향으로 종족을 보존한다.
동물은 자리를 이동하며 생명을 유지하나,
식물은 자리를 보존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동물은 상대를 공격하며 생명을 유지하나,
식물은 상대를 활용하며 생명을 유지한다.
포식자는 강한 완력이 장점으로 작용하나,
사냥감은 빠른 주력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포식자가 사냥감을 보면 기대감이 앞서나,
사냥감이 포식자를 보면 공포감이 앞선다.
사냥을 하려면 네 발 달린 짐승이 유리하나,
도구를 쓰려면 두 손 가진 인간이 유리하다.
생명체는 이해관계에 민감하기 마련이며,
생명체는 이해타산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야생동물은 먹이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고,
세속 인간은 이권이 있는 곳으로 몰려든다.
야생동물은 무기를 지닌 인간을 두려워하나,
사육동물은 먹이를 주는 인간을 두려워한다.
똑같은 물일지라도 벌이 먹으면 꿀이 되나,
똑같은 물일지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행여 사냥감이 넘쳐나면 포식자도 넘쳐나고,
행여 사냥감이 줄어들면 포식자도 줄어든다.
포식자는 사냥감을 잡아야 목숨을 부지하나,
사냥감은 포식자를 피해야 목숨을 부지한다.
사냥의 제물이 돼 희생되는 사냥감이 불행한가.
사냥을 하지 못해 굶어죽는 포식자가 불행한가.
이런 이율배반적 논리구조는 부지기수이다.
쫓고 쫓기는 것이 동물 생태계의 속성이고,
잡고 잡히는 것이 동물 생태계의 속성이다.
물고 물리는 것이 동물 생태계의 속성이고,
먹고 먹히는 것이 동물 생태계의 속성이다.
오늘은 어느 시간에 비극이 생길지 모르고,
내일은 어느 곳에서 비극이 생길지 모른다.
내일의 비극을 모른 채 자못 여유만만하고,
미래의 재앙을 모른 채 자못 무사태평하다.
오늘은 누가 비운의 제물이 될지도 모르고,
내일은 누가 비극의 주역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누가 희생의 제물이 될지도 모르고,
내일은 누가 변고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어느 한 놈이 죽으면 어느 한 놈이 건재하나,
어느 한 놈이 건재하면 어느 한 놈이 죽는다.
쫓기는 자의 죽음은 일면 쫓는 자의 삶이며.
쫓기는 자의 삶이란 일면 쫓는 자의 죽음이다.
쫓기는 약한 동물도 살아가기는 고달프고,
뒤좇는 강한 동물도 살아가기는 고달프다.
약한 자가 강한 자보다 더 오래 살기도 하고,
없는 자가 있는 자보다 더 오래 살기도 한다.
열거식 논리를 이만 줄임니다…비타민의
모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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