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로
추앙을
받고
또
그는
백작
신분의
귀족으로
경건한
그리스도
인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부터
성욕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고 하며,
그
영향으로
노년에는
성적인
욕망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작품이 <크로이체르
소나타(1890)>
와 <악마(1889)>이다.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톨스토이는
섹스를
비정상적이고
불결한
행위로
비판하고,
인간이
성욕에서
해방되지
않는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상낙원은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크로이체르
소나타>와
<악마>는
둘
다
자신의
성욕을
절제하지
못한
주인공의
파멸로
끝난다.
둘
다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톨스토이
역시
젊은
시절
아내
소피아와
결혼식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마차
안에서
강간한
적이
있었고
결혼
후에는
하녀들이나
농부들과의
관계를
즐겼다.
섹스에
대한
그의
비판은
과거의
방탕했던
생활에
대한
고해성사이다. 한편
톨스토이는
사회
운동가들의
구명을
위한
자금
모금을
위해
장편소설
연재도
시작했는데
이
소설이
바로
톨스토이의
마지막
걸작인
<부활>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수위높은
비판
때문에
톨스토이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파문
당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톨스토이와
부인
소피아와의
갈등은
점점
격해져만
갔고
결국
대판
부부싸움을
벌인
이후
나이
80이
넘어가는
늘그막에
농민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딸을
데리고
가출을
시도하였으나,
기차역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터넷의
어던
기록에선
비참하게
겨울
날씨
역에서
동사했다고
나온
바
있었는데,
그건
아니고
역장
숙직실로
옮겨져
눕혀진
상태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사람들은
왜......그랫을까?." 하여간에
엄청나게
건강했고
70세에도
젊은이와
다름없는
근력을
지녔다고
한다. 그
자신의
뒷이야기를
보면 아내
소피아와의
사이에서
13명의
아이들을
두었고
그
중
다섯은
어린
시절에
죽었다. 하지만
사실
톨스토이에겐
또다른
아이가
있었다.
자신의
하녀였던
아크시니야
바지키나가
낳은
사생아
아들이었지만,
어쨌든
자식은
자식이었다.
티모페란
이름의
이
아이는
마구간
지기,
산지기로
평생을
살았다.
이
사실은
톨스토이가
부부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한다며
자신의
옛
여자관계를
비롯한
자신의
15년
간의
과거를
적은
일기를
아내에게
보여줘서
아내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도박으로
수많은
재산을
날렸고
온갖
여자들;집시,
창녀,
어머니
친구들의
농노들과
관계한
사실은
물론
사생아까지
있다는
사실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톨스토이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안나
카레니나
속
레빈이란
인물에
투영한다.
레빈이란
인물
역시
자신의
더럽고
방탕한
과거와
무신앙을
고백한
일기장을
키티에게
건내고
용서받는다. 이런
독특한
남편
때문에
소피아는
대단히
힘든
삶을
이어가야
했다.
유모도
없이
혼자서
13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물론
톨스토이의
글을
일일이
읽고
필체를
교정하는
작업을
맡아야
했다.
게다가
노년에
겨우
대문호의
아내로서
편안하게
사는가
했더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갑자기
남편이
모든
재산을
버리고
뛰쳐나가려
하니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또한
톨스토이가
지나치게
대문호로
추앙받은
나머지
소피아는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페처럼 '위대한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악처'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의
목가적
정신이
담긴
소설
작품들이나
소설책
표지나
속표지에서
볼
수
있는
수염이
성성한
푸근한
할아버지와도
같은
인상과는
달리,
청장년기는
매우
개인주의적이며
강한
성욕으로
유명했다.
그의
부인은
결혼
초기
10여
년간
임신
상태가
아닌
기간이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그의
정신적
사상과
행동간의
괴리는
러시아
문학에서
한 인간으로서
톨스토이를
관심있게
보는
주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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