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자린고비이야기 고사(야담)

비타민님 2016. 7. 1. 08:03


자린고비

충주 금왕읍에

살았다고 해서일명 '충주 자린고비'. 본래 실존인물인

조륵(1649~1714)이 모델이다.

자린고비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그가 평생 동안 구두쇠짓을 해서 모은 돈으로 가뭄에

시달리던 1만 호의 백성들을 구하자

 그 지역 주민들이 감동하여 조륵 사후에

 '자인고비(慈仁考碑, 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을 위한 비석이라는 의미)'라

 이름의 비를 세운 데에서 와전되어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또다른 설로는,

 위 글에도 소개되어있듯이 부모 제사 때 쓰는 지방을

한 번 쓰고 태워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고비(考妣 - 부모)를

절여 놓고 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절인 고비'가 음운변화를 거쳐

자린고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잘은 꼽재기'가 변해서 자린고비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잘은'은 말 그대로

'잘다(작다)'는 뜻이고 '꼽재기'는 '아주 보잘것없고 작은 사물'을 일컫는

말로 아니꼬울만큼 잘고 인색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재령 꼽재기', '달래 꼽재기', '이천 천지 곱재기',

'달랑 꼽재기' 등이 있었다.

구두쇠가 조륵 한명만은 아니었을테니

여러 사람의 일화와 별명이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통합되어 자린고비로

 변했다고보는 쪽이 옳을 것이다.

 

그야말로 지독한 구두쇠인지라

 식사 때는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놓은 후 밥 한 술에 굴비 한번 쳐다보기라는

 괴이한 식사법을 애용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심지어 아들이

 굴비를 두번 쳐다보자 굴비가 짜지도 않느냐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고…

한 때는 큰 아들이

 굴비를 두 번 쳐다보자 작은 아들이 '형이 두 번 쳐다 봤어요'라고 말하니까

 자린고비가 '놔둬라, 오늘 형 생일이잖니'라고 말했다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또 한 일화로는

뒷마당에 있는 된장독의 뚜껑을 열어 놓았더니 파리가

그 위에 살짝 앉았다가 날아가는데

그 파리 다리에 묻은

된장을 보고 아까워서 수십 리를 날아가는 파리를 쫓아가서

된장을 빨아먹고 놓아 주었다고 한다.

김삼이 그린 만화에는

 파리를 놓아주기 전에 다시는 우리집 장독에 얼씬도

말라고 엄포를 놓는데,

이후 자린고비 집의

 장독에는 파리가 한 마리도 꼬이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자린고비의근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를 보다못한 동네사람들이

 자린고비를 놀려주기 위해 집에다가 새우젓을 몰래 가져다놨는데 자린고비는

 "집에 밥도둑을 들이다니 집안 망하게 할 일 있느냐"하고 바로 집어던졌다고...

 위의 굴비 이야기도

생선장수가 굴비 한마리를 그냥 담 너머로 몰래 던져주었는데,

어디서 밥도둑을 함부로 넘겨주냐면서 다시 던져버리자,

 공짜로 주는 것이니

그냥 받으라고 다시 던져주고 나서야 겨우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는김에

자린고비 '일가'에 있었던 일을 소개하면, 

정상인 며느리가 자린고비 시어머니에게 깨이며 살고있었다.

하루는 고기장수가 오자

며느리는 고기를 한참 주물럭대다가 그 손 씻은 물로 고깃국을 끓였다.

 이 때 시어머니는

"아가, 오늘은 고깃국 맛이 진하구나"라는 말했는데,

아마도 절대미각의 소유자인 듯 하다.

 이 때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칭찬을 받을 줄 알았으나 

시어머니의 테크닉에는 한 수 밑이었다.

시어머니는

그 손을 우물에다 씻었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평생 고깃국을 먹었을 거라고 말한다.

 

때로

 이 며느리는 자린고비보다 한 수 위의 구두쇠로 등장하기도 한다.

모든 음식을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내놓는데 

간장만은 종지 한 가득 내놓는 모습에 자린고비가 한 마디 하자,

그렇게 해야 보기만 해도 짜서 오히려 덜 먹게 되고, 

 또한 숟가락으로 종지를 긁어 종지가 닳는 일이 없다는

대답을 해서 오히려 자린고비가 놀라며 칭찬했다고.

하지만 간장 다 먹으면 위험커니?... 

또 한 번은 며느리가 떡을 해오자 자린고비는 온갖 욕을 다하는데

 여기서 며느리는

떡을 하면 부피도 늘고 오히려 단맛이 있어 반찬이 필요없다는 말을 하여

그날부터 자린고비네는 매일 떡을 해먹었다는 말도 있다.

 

언젠가는

이 자린고비와 옆집, 혹은 다른 지방에 사는 또다른 구두쇠가

경쟁에 붙었는데, 여름에 부채 부치는 방법에 대해서였다.

옆집 구두쇠는

한번에 한 살만 펼쳐(쥘부채 형태) 부쳐 다 떨어질 때까지

쓴다고 자랑했으나,

본가 자린고비는

부채를 촥 펼쳐놓고 얼굴을 흔드는 방법을 쓴다고 해서 

옆집은 글먹은 벙어리?.

어째 더 더울 거 같다.

 또한 그날 밤에

구두쇠와 자린고비가 함께 잠을 자는데 문풍지에 뚫린 구멍으로

외풍이 들어와 잠을 잘 수 없어서

구두쇠는

가지고 있던 종이조각에 저녁 먹고 남은 밥풀을 붙여

문풍지를 때워놓고 간신히 잠이 들었다.

 구두쇠가 집으로 돌아갈 때

종이조각은 자기 것이라고 떼어가겠다고 하자 

자린고비는 밥풀은 우리집 것이라고 하며

밥풀을 박박 긁어내고 종이만 들려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현재는

 쓸데없는 것에 눈을 뒤집고 절약정신을 외치는 괴짜들을

비꼴 때 쓰는 말이 되었으며,

전시성

예산절감 정책을 추진하는 공무원들을 비꼴 때도 쓰인다.

 

그러나

오직 부정적인 묘사만 있는 놀부와 달리 

이쪽은 민담에서 긍정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날 홍수로 인해 다들 먹을 양식이 없자 

 흔쾌히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물을 배푸는 선행을 하고,

 이를 우연히 지나가던 암행어사

(박문수라고도 하지만 조륵은 박문수가 겨우 24살 때 사망했으니 아니다.)가

 보고 그의 선행에 크게 감동하여 포상을 하려고 하자

 오히려 화를 내면서

그렇게 쓸데없이 돈을 쓸 바에는 차라리 그 포상할 돈으로 제방 등을

튼튼히 만들라고 하며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의 표상일지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어느날 솔개가 병아리 한 마리를 물어가자

"지금까지 내가 거지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단 한번도 무엇인가를 허투로 잃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잃는 것이 생겼으니 나의 재복도 다하였구나." 라고 하면서 

전재산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서 임종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에 이야기중,

 된장(또는 간장)독에 앉은 파리를 쫓은 건 또다른 구두쇠인

이천의 천지곱재기란 인물의 얘기라고 한다.

그 또한 자린고비 못지 않은 구두쇠였다고...

장독에 앉은

 파리 다리에 묻은 된장이 아까워서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가지고 '파리'를 붙잡아 ​ 그 다리를 씻으려고 쫓아가다가 

용인땅 어느 개울가에서 그만 파리를 놓쳐 버렸는데

이 놈의 파리가

이리 갔나 저리 갔나 하고 어정거렸다고 해서 

이곳 지명을

'어정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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