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탈무드의 악과 죄-오늘의 명상

비타민님 2017. 5. 31. 19:53

지난 주말에 기쁜 일에 끼어든 나의 아픈 상처의 흉터를 건드리는 일이다.

노인의 흉터는 다시 터지면 잘 아물지가 않는 아픔을 동반한다.

Gemeinschaft운명 공동체가 나에게 준 피할수 없는 운명적인 상처이기도 하다.

세상은 正反合(정반합)의 뒤섞임이다.


사랑의 열매인 나의 아이들아! 지혜롭길 바란다.

사람으로 태어낳다는 일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사람답게 산다는 일은 성공한 삶이라기 보다는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위한 일이란

 ‘공부 열심히 해라,성현들의 책을 많이 읽어라, 성실을 다해 행동하라’

 

모든 인생의 가치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라’고 것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성공한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든 있다.

크거나 작거나, 많고 적거나, 초라하거나 화려한 것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 사회, 가정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부르는 일에 있다.

어떤 일을 하며 어디에서 살든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고 찾은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그게 바로 가치 있는 사람의 삶이란 생각이다.

 

내가 보고 느끼며 살아온 세상에는 올바른 일만 하는 사람은 없다.

과정에는 반드시 악한 일도 때로는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탈무드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악의 충동은 처음에는 매우 달콤하다. 그러나 그것이 끝났을 때는 매우 쓰다.

 

인간 내부에 있는 악에 대한 충동은 열세 살부터 차츰 선에 대한 충동보다 커진다.

 

죄악은 태아 때부터 인간의 마음에 싹터,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차츰 강해진다.

 

악에 대한 충동은 구리와 같아서 속에 있을 때는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 수가 있다.

 

인간에게 악에 대한 충동이 없다면,

집도 짓지 않고, 아내도 얻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악에 대한 충동에 사로잡히거든 그것을 쫓아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하라.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

언젠가 CNN 창업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아버지 험담을 하는걸 보았다.

이유는 합당하지만 많은 재벌의 오만함을 느꼈고

분의 아버지에 대한 측은감을 아버님과 비교하며 가지기도 했다.

 

죄는 처음에는 여자처럼 나약하지만 날이 갈수록 남자처럼 강해진다.

 

죄는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가냘프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잡아매는 밧줄처럼 강해진다.

 

죄는 처음에는 나그네이다. 그러나 내버려두면 주인을 내쫓고 주인이 된다.

 

죄는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가냘프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잡아매는 밧줄처럼 강해진다.

질병이나 거짓말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젊은 시절의 질병과 거짓말은 처음에는 손님처럼 같이 잠깐 머물다 가나

나이 들어 얻은 질병과 거짓말은 좀처럼 몸에서 떠나질 않는다.

주인을 몰아낸 나그네가 마음과 몸의 주인이 것이다.

 

어떤 배가 항해 도중 거센 비바람과 심한 폭풍우 때문에 항로를 잃고 말았다.

 

아침이 되자 바다는 다시 잠잠해지고, 배는 아름다운 포구가 있는 어느 곁에 닿아 있었다.

배는 포구에 닻을 내리고 잠깐 쉬기로 했다.

섬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고,

맛있는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이 신선한 녹음을 드리우고,

온갖 새들이 다정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다섯 무리로 나뉘었다.

 

첫째 무리는,

자기들이 섬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순풍이 불어 배가 떠나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리 섬이 아름다울지라도 빨리 자기들의 목적지로 가고 싶다고 하면서,

아예 상륙조차 하지 않고서 배에 남아 있었다.

 

둘째 무리는,

서둘러 섬으로 올라가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녹음 짙은 나무 그늘 밑에서 맛이 기막힌 열매를 따먹고 원기를 되찾자마자 배로 돌아왔다.

 

셋째 무리도, 섬에 올라갔다.

그러나 섬에서 너무 오랫동안 지체를 하여 배가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허둥지둥 돌아오느라고 소지품을 잃기도 했고 안의 명당 자리를 놓치기도 했다.

 

넷째 무리는,

순풍이 불어 선원들이 닻을 걷어올리는 것을 보았지만, 돛을 달려면 아직 시간이 있고,

선장이 자기들을 남겨 두고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등의 이유를 붙여, 그대로 섬에 있었다.

그러다가 막상 배가 포구를 떠나가자 허둥지둥 헤엄을 쳐서 가까스로 배에 올라갔다.

그래서 바위나 뱃전에 부딪친 상처는 항해가 끝날 때까지도 아물지 않았다.

 

다섯째 무리는,

너무 먹고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되어, 배가 출항을 알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래서 숲속의 맹수들에게 잡아 먹히기도 하고, 독이 있는 열매를 먹어 병이 들기도 하여,

마침내는 모두거 죽고 말았다.

 

우리들의 경우는 어느 무리에 속하겠는가? 잠시 생각하기 바란다.

 

이야기에 나오는 배는 인생에 있어서의 선행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섬은 쾌락을 상징하고 있다.

 

첫째 무리는, 인생에서 쾌락을 전적으로 외면했다.

둘째 무리는, 쾌락을 조금 맛보았지만,

배를 타고 목적지에 닿아야 한다는 의무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무리이다.

 

셋째 무리는, 쾌락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 돌아오기는 했지만 역시 고생을 했고,

넷째 무리는, 결국 선행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너무 늦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빠지기 쉬운 것은 다섯째 무리이다.

일생 동안 허영을 위해서 살거나, 장래의 일을 망각하거나

달콤한 과일 속에는 독이 들어 있다는 진리를 잊고 그것을 먹기도 하는 것이다. 탈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