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코람데오)♠

'목사교'는 변하지 않는다(펌)

비타민님 2017. 6. 16. 20:22



출처 http://churchpurificationmovement.org/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4048


제목의 글 포스팅은 시비곡절이 많은 글 이기도합니다.

세상 공동체 교회이니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고

이 분의 글을 읽으면 수긍이 되는 점도 부인을 못합니다..

읽고 판단하는건 자신이지만,주 예수가 누구인가?..또 사랑에 대해 기도하세요.

또 목사들도 가정이 있고 세상에 사니 돈은 필요합니다.

들보와 티를 구분못하는 공동체,알곡과 가라지를 구별못하는 신도기 있담니다.

 

목사교라고 하면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사실상 장로나 집사는 허울뿐이고

목사가 주도하는 교회라는 데에 대해 큰 이견이 없다고 본다.

개교회의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장을 대부분 담임목사가 홀로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영구 집권이다. 교단 정치도 장로나 집사는 들러리고 목사들이 주도한다.

 

교회가 목사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위 말하는 '삯꾼 목사'들 때문이다.

그들은 속이는 자다. 교회를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이들의 도의는 위선이고 이들의 정의는 탐욕이다.

 

그럼에도 교회의 개혁과 회복은 쉽지 않다.

삯꾼 목사와 그의 제자인 맹신도들이 연합하여 동거하면 가히 천하무적이다.

그 둘이 작심하고 악을 행하면 누구도 막기 힘들다.

이단이 따로 없다. 교회법도 무효하고 사회법도 무기력하다.

교단에 고발해도 소용없고 법정에 고소해도 다시 나온다.

 

자신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교회 돈을 마구 가져다 쓴다.

결국 많은 경우 개혁적 성도만 지쳐서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난다.

그러니 바른 말이 사라진 교회에서 삯꾼들은 더욱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이다.

 

더구나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만일 약간의 변화라도 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하나님의 은혜다.

그나마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려는 노력이 인간의 죄성을 다소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에선 그걸 흔히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교회에서 가장 잘 안 변하는 족속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삯꾼 목사들이다.

이들은 손에 성경을 들고 사기치는 자들이다.

바리새인이 안 변하고 중세 종교 귀족들이 잘 안 변한 것처럼 삯꾼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 쉽게 변할 인품이었다면 애초에 삯꾼이 되지도 않았을 거다.

 

근자에 나는 자비량 목회를 확대하자고 주장한 바가 있다.

자비량 사역은 삯꾼을 척결하는 가장 좋은 대안 중에 하나다.

구태여 자기 돈을 들여가며 열심히 사역할 삯꾼은 없기 때문이다.

근데 사방에서 "목사를 거저 부려먹으려고 한다"며 성토한다.

 

하지만 참으로 이상하다. 목사는 왜 자비량 사역을 하면 안 되는가.

성경엔 사실 영구직 유급 사역이 거의 없다.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조차 24개의 성읍에 주어진 초장에서 평생 농업에 종사했다.

각 반차에 따라 극히 제한된 숫자만이 매년 2번 정도 제사를 담당했다.

그래서 어떤 레위인은 일생 동안 기껏 해야 단지 한두 주 정도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대교의 스승인 랍비들도 생업에 종사하며 사역했다.

예수님 당시의 유명한 랍비 힐렐(Hillel)은 목재 절단사였고 샴마이(Shammai)는 목수였다.

사도바울을 가르친 가말리엘(Gamaliel)도 힐렐의 제자다.

그러니 당시 유대 전통에 따라 랍비 가말리엘과 랍비 예수의 제자였던 사도바울이

자비량 사역을 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초기 교회의 자비량 사역 전통을 유급 사역으로 변질시킨 주범은 중세 교회다.

그들은 교회의 직분을 제사장적 '사제직'으로 직업화하여 교권과 이권을 동시에 찬탈했다.

그 결과 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부패했었는지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가나안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밖으로 '안 나가'는 성도다.

그런데 삯꾼 목사의 교회당엔 예수가 없다.

성경은 설교를 멋지게 펼치기 위한 포장용일 뿐이고 인간의 잡술이 난무한다.

그러니 가나안 성도는 교회를 떠난 게 아니라 교회당을 떠난 거다.

 

나는 교회의 내부 개혁을 적극 지지한다.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개혁이다.

그러나 그게 도저히 안 될 경우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목사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인간 역사에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변화한 삯꾼은 거의 없다.

부패한 중세 교회도 무려 천 년이나 변치 않고 버텼다.

 1세기 예수와 제자들이 바리새인의 유대교를 떠나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의 로마교를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은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꿈꾸어야 할 때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2:22)."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