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님 이야기♠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비타민님 2018. 2. 9. 21:57

열심히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때로는 인생길에서 흙탕물 엉덩이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일이 있다.

어느 누가 흙탕 속에서 허우적 거리길 좋아하겠는가?


부모님이 사시던 집이 비어서 힘들게 사는 한인 동포에게 세를 주었고

사람은 다른 한인에게 부모님집을 매도했을 때에,

많은 한인 조폭이 나를 위협할 때에 한인 동포 아무도 나를 돕지 않았다.

 

2년이 지나 인사성 밝은 지나는 한인이 세집을 찾는다며

이웃에 있는 한인 교회 목사를 사돈으로 소개해서

거져 주다싶이 집을 세를 주었는데,목사나 이놈은 나쁜 놈이었다.

결국 시비가 생기자 목사와 이놈 패걸이는 나의 이웃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화가 현지인 이웃이 이들을 쫗아낸다.

뻔번하고 파렴치한 목사놈?이다..

 

8 후에 우연히 만난 다른 한인에게 거져 주다싶이 집을 주었을 때에

사람은 사기를 치고 잠적하고 자의 마누라는 볼리비아 여인으로

세돈은 커녕,부모님 집을 마약 파는 소굴로 만들고  나를 죽인다고 위협을 했다.

 

필자를 도와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절망의 순간일 때에

평소에 고픈 폐지줍는 사람들에게 요기할 잔돈을 자주 주었는데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고 자청을 하고

마약 마피아인 볼리비아 여인에게 집을 비우게 한다.

 

어제 있엇던 일이다.

왼편 옆집에 정신병자놈 아들과 알츠하이머 늙은이가 사는데

부자지간에 폭력이 오가고 경찰이 오는 일도 보는데….

미친 아들 놈이 집앞 보도에 20년이상 키운 감귤 나무를 짜른 것이다.

건너편 용달하는 사무실에 운전수들이 보면서도 알리질 않는다.

오늘 아침에 이들 운전수에게 인사를 하고

앞으로 불편한 일을 도와 달라는 정중한 부탁을 했다..

양심을 쓰레기 통에 버린자들에게 부탁이니..경고 차원이다.

4 새벽에 집에 강도가 들어왔으나 내가 잡았고

이들은 이를 보면서도 침묵을 용달업소 주인이다.

용달 업소 주인도 형사범으로 티비 언론을 자이다.

지금 사는 사방이 위험한 불발탄 이웃들이다.

다행이 오른편 옆집 이웃 하나는 마음이 바른 정의의 사람들이고

나를 지켜주고 도와주는 유일한 이웃이다.

이 세상이 험하고 나는 약하기만 하나 거룩한 주의 보살핌이

이웃이나 가난한 사람의 손을 빌어 나를 어려움에서 구한다.

거룩한 성전에 계시는 성스런 묵사님들이나 장노님들이 아니다.

또 법치주의 민주 경찰은 더욱 더 아닌 것이다..

불신이 만연한 혼탁한 현실인 아르헨티나에 사는 노인의 푸념이기도 하다.

 

다음 글은 이차대전 당시의 독일 목사가 시이다.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

마르틴 니묄러(1892-1984) 목사가 것으로 추정되는 시다.

나치가 특정 집단을 하나씩 차례로 지목해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차지할 ,

저항하지 않고 침묵한 독일 지식인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상호의존성과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전세계적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마르틴 니묄러는 1892년에 독일 립슈타트에서 태어난

독일의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였다.

니묄러는 반공주의자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히틀러의 등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국가의 우월성을 종교처럼 주장하자,

니묄러는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반대하는 독일 성직자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니묄러와는 달리 독일의 성직자들은 나치의 위협에 굴복했다.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니묄러를 매우 싫어하여 그를 체포했으며,

결국에는 작센하우젠과 다하우 강제 수용소 등에 감금했다.

니묄러는 연합군에 의해 1945년에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났다.

그는 독일에서 성직자로서, 2 세계 대전 이후

독일 국민들을 참회와 화해를 이끄는 대변자로서 활동했다.

그의 시는 알려져 있고 자주 인용되며,

흔히 특정의 조장된 두려움과 함께 시작되어,

이윽고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집단적인 적의를 띰으로써 나타나는

정치적 무관심의 위험성을 묘사하는 인기가 있는 본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