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님 이야기♠

임도 보고 뽕도 따고-잡돌이와 잡순이

비타민님 2018. 9. 25. 18:34


모든 일을 서두르며 성급하며,

일의 과정 보다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버릇을

이 나라의 썩은 정치에서 보고 있는데,

70년간 외채를 끌어다가 부정 축재와 축제를 하고

지금 또다시 국제 통화 기금에서 단기 차관을 받길 원한다.

국가의 재정 적자가 난 근본 원인은 절대 고치지 않고

부익부ㅡ 빈익빈이 가중되는 현실이다.

임도 보고 뽕도 땋으면 부산물인 새끼도 책임을 져야하는데..

정권을 잡으면 국고를 훔치고,나몰라 모르세일관이다.

한국의 고전 서설인 춘향전의 일부 대사와 흡사한 꼴이다.

춘향전을 연애 소설로 착각을 하는데,그렇지 않다.

순정 연애 소설의 스토리는 없고,

첫눈에 반해서 꼬드끼기로 춘향이와 정사를 한다는 스토리

70년대 방석집 스토리는 춘향전의 후배판인가 한다

이도령이 남원 광한루에서 산책하다가

그네를 뛰고 있는 춘향이를 보고 연정이 싹튼다.

"춘향전"이 연애소설이려면 첫머리에서 싹튼 이연정이

'-정사'로 결실하는 대목은 집장촌 선배 스토리이다.

적어도"춘향전"의 후반부에 연애 스토리는 있어야 한다.

그러해야만 이 '', 곧 연애가 개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데 "춘향전"은 오입 스토리의 해피엔드판?이다.

이는 '-연애'를 가능한 단축하고

가급적 배제하려는 방향으로 꾸려지고 곧장 섹스로 이어진다.

 

광한루에서 책방으로 돌아온 이도령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의 그 작은 과정마저도 못 기다려

방자를 데리고 애를 태운다.

 

해가 어찌 되었느냐. 해 아직 멀었소. 애고 얘 날 죽인다.

채질 급히 해달라고 희화(요임금님 때

천문을 관장했던 벼슬아치들)에게 부탁할까.

해 어찌 되었느냐.

해 아직 멀었소. 애고 얘 날 죽인다.

활로 쏴 달라고 유궁(고대 하의 나라 이름)

(활을 잘 쏘아 왕위에 오른 사람)에게 찾아갈까.

이제 당신도 염치 없이 해말은

속에 두고 밥재촉하듯 어찌 되었느냐. 아직 멀었소. 어찌 되었느냐.

아직 멀었소. 허허 흉한 일이로다.

그렇게 더디 가면 과부(옛날 해그림자를 쫓았으나 미치지

못하고 죽은 사람)는 고사하고 앉은뱅이도 따라가겠다.

 

이렇게 해지는 '과정'마저도 못 기다려 초조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통인, 방자 등불 들려 앞세우고

춘향집으로 직행을 한다.

춘향이 거처하는 별당으로 들어가,

'사랑 사랑이야 무수히 이룬 후에 옷 벗기기'로 든다.

 

곧 춘향이를 처음 본 그날 밤에 '-정사'를 얻고 만다.

'-연애'가 개입됐다면 그토록 희화와 예까지 동원하면서까지

초조하게 단축시키려 들었던 한나절에 불과하다.

 

그렇게 '-섹스'를 초반부에서 얻어버린 "춘향전 "

어디까지나 수절 소설이지 연애소설이라기에는 구성상 허점이 많다.

이처럼 우리 고전소설에서 연애요소가 증발된 데는

연애가 과정에서 요소로서 결과의식에 배치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결과주의와 동반하는 버릇과 병이 있다.

 

매사에 서두는 버릇

형식갖추기를 좋아하는 버릇

기다리지 못하는 버릇

매사에 표변하는 버릇

신용을 지키지 못하는 버릇

눈앞만 보는 버릇

본심을 숨기는 버릇

 

파당병

추종병

동조병

성차별병

서열병

하향거부병

나도밤나무병등등..이 있다

 

오늘은 나도밤나무병을 소개한다.

 

 

 '나도밤나무'라는 색다른 이름의 나무가 있다.

키가 훤칠하며 10미터쯤 자라는 데다 노란 꽃이며 붉은 열매가 고와

관상수로 심어지는 큰키나무다.

한데 잎이 밤나무잎과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나도밤나무가 된 것이다.

그 나무가 밤나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이 그 나무로 하여금 밤나무이게 하고 싶었기에

주어진 이름이다.

 

 나도밤나무뿐 아니라

우리 한국의 초목 이름에는 '나도...'하는 동조성 이름이

한 유형을 이루고 있다.

나도냉이, 나도바람꽃, 나도생강, 나도송이풀, 나도박달,

나도미꾸리... 나도... 그것에 동조하여

그 후광 속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심성이

초목 이름에 투영된 것일 게다.

'나는 아닌 밤나무'라고 우겨대어

밤나무보다 키도 크고 제목도 좋고 꽃도 곱고 열매도 아름답다고

개성을 내세우지 못한 것일까.

남과 다른 내나름의 이질성을 배척하고

남과 같은 남나름의 동질성에 가치를 부여해 온

오랜 농경정착 생활의 유산이기도 할 것이다.

 

또 오랜 사대주의도 나도밤나무병의 명인이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초에 명나라 사신이 와서 수어를 먹어 보고 맛이 좋았던지

이 고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통사가 '수어'라고 말하자

수어로 오인하고 물 속에 사는 고기가 모두 수어인데

하필 이 고기만을 수어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것이 연유가 되어 아무리 무식할망정

천사(명나라 사신)가 수어라고 한 바에야

그 고기는 수어가 돼야 한다는 사대논리로 수어가

'나도수어'가 돼버린 것이다.

 

선생님이 '알았습니까.' 하고 물으면

알지 못하면서도 '알았습니다.'라고 남들에 동조하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의리가 돼 있고,

식당에 가서 웃사람이 설렁탕을 선택하면 나도, 나도...

설렁탕에 동조하고,

술자리에 가서 웃사람이 웃옷을 벗으면

나도, 나도... 동조하여 벗는다.

 

회의나 세미나에서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나도밤나무병의 소치다.

나는 아닌 밤나무로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자칫 그것이 심하면 이단시되고 소외당한다.

그래서 한국에 있어 회의는

반대 의견이나 소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아니라

동조하게끔 변질시키는 과정이라 해도 대과가 없다.

그래서 회의장 안에서 하는 회의는 형식적이고

회의장 밖에서 변질시키는 공작이 진짜 회의다.

그렇게 동조시켜 놓고서 만장일치! 짝짝 하고 끝난다.

 

유태인들의 모임에서는 그것이 국회든 종교 회의든 반상회든간에

'회원 전원 일치의 결의는 무효'라는 원칙이 작동하고 있다.

재판정에서도 배심관들의 유죄표가 무죄표보다 1표가 많았을 경우

그 판결은 무효가 되어 무죄가 된다.

2표 차가 나야 비로소 유죄 판결이 난다.

소수 의견을 이토록 존중한다.

이스라엘 국회에서도 전원 일치의 결의는 무효다.

 

이런 일이 있었다.

카터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 국회에서 연설을 했을 때

짓궂기로 소문난 코헨 여사가 말끝마다 물고 늘어져

국빈을 당황하게 했던 것 같다.

 

이에 의장 직권으로

코헨 의원의 퇴장을 만장일치로 가결, 퇴장을 명했다.

이에 그녀는 '만장일치의 결의는 무효'라고 버티고 앉아 있었다 한다.

정말 코헨 의원을 퇴장시키고 싶었으면

누군가 사꾸라 표를 던져 퇴장 의안에 반대했어야 했던 것이다.

소수의견과 반대의견을 존중하는 문화적 배경 없이는

이 같은 제도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의 발명 제1호는 전기투표기록기였다.

일일이 투표함까지 걸어나아가 투표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의석에서 버튼만 누르면 찬반의 수가 나타나는 그런 편리한 기계다.

이걸 쓰면

소수 의견이 박탈당하고 다수 의견이 횡포를 부리기 때문이다.'라고.

이것은 '나는 아닌 밤나무'의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려는 민주주의 정신의 구현이다.

표결만이 전부라면 다수파의 승리는 자명하고

토론은 의식에 불과하며 졸고 있어도 된다.

민주적인 의논이란 다수파가 소수파의 비판에 시련받는 과정이요,

그 소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여야나 노사가 나도밤나무가 되어 일률적이고

강경일변도로 나간다면 하나마나의 협상이 되고 말 것이다.

양편에서 각기 '나는 아닌 밤나무'의 의견에 비판받고 또 수렴하여

협상 테이블에 퍼스트 카드, 세컨드 카드, 서드 카드...

들고 나와야만이 협상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